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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26. 2023

사연 많은 조상묘

산소로 소풍 갑니다

이맘때면 4형제의 카톡방은 유난히 부산스럽다. 가을의 풍성함을 조상님께 한상 가득 올려드리기 전에 산소를 말끔히 다듬어 드리기 위해서다.  며칠 전부터 메뉴를 정하고 장을 보고 20여 명이 먹어야 하니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해야 한다. 벌초기계도 여러 대 필요해 미리 꺼내어 작동을 확인하며 점검해 주어야 다. 주말이라 차가 밀리기 전에 새벽같이 일어나 짐을 챙겨 서둘러 출발했다. 여름내 산이슬을 먹으며 수풀은 무성해졌고, 나무들은 늘어져 주인 없는 산소처럼 마음을 아프게 다.

 

남자들은 풀을 베어 길을 내고 여자들은 먹거리를 모두 꺼내어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은 늘 김밥과 수제비다. 김밥은 전날 미리 주문한 24시 김밥집에서 찾아오고, 수제비반죽도 전날 해놓은 것을 들고 왔다. 서둘러 육수를 끓여 작은 손까지 매달려 제각각에 모양들로 떼어 넣은 수제비가 맛있게 완성이 되었다. 그사이 산신께 술 한잔 올리고, 산소마다 인사를 올리고, 커다란 그늘막도 치고, 돗자리도 펼쳐 놓았다. 온 식구가 빙 둘러앉아 뜨끈한 수제비를 후후 불어가며 준비한 반찬들과 맛나게 아침을 먹었다.


산소로 가을소풍을 왔다. 산소로 소풍을 간다 하면 모두 이해를 못 한다. 물론 모기떼가 극성이고 벌에 쏘여 중간에 병원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이제 고기도 구워야 하니 가족 소풍이 맞다.  덩치 좋은 아이들은 아빠들을 따라서 기계도 메고, 베어진 풀들을 모아 밖으로 나르기도 다. 너나없이 놀이처럼 뛰어다니며 가을하늘아래 맴맴도는 작은 고추잠자리 떼를 쫓아다니며 신이 났다. 중간중간 물과 간식들을 먹지만 땀은 비 오듯 쏟아진다. 이제 3분의 2 정도는 한 것 같다 싶으면 점심으로 숯불통을 가져와 불을 피우고 소풍의 꽃인 고기를 굽는다. 방금 한 밥에 고기한쌈이면 세상 부러운 것이 없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나머지 부분도 다 끝내고 나면 3시 정도가 다. 차가 밀리기 전에 서둘러 출발해 보지만 이미 도로는 밀려든 차량들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모기떼에 물리고 기계 멘 자리는 시뻘겋게 까지고 허리는 욱신거리고 해가 갈수록 버거워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해 산소 앞을 나시던 분이 벌초대행을 해주면 어떻겠느냐고 먼저 제안을 하셨다. 냉큼 받아들였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매년 감사하게도 그분께서 해주시고 계신다. 물론 비용은 첫해보다 매년 올라 배가 되어버렸지만 어쩔 수가 없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비용이야 형제들이 십시일반으로 하면 되지만 문제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구닥다리 옛날이야기 같지만 효부셨던 시아버지께서 당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그 당시  값비싼 돌관을 준비하시고, 나머지 두 형제분이 작은 터를 마련하여 모셨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재개발로 터를 옮겨야 했고, 많은 액수의 보상도 받았다. 둘째 시작은 아버지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으니 막내 시작은 아버지께서 이곳으로 모신 것이다. 물론 보상비는 혼자 다 챙기셨다. 사시던 집과 여기저기 토지들도 아버님 명의로 되어 있었지만 은근슬쩍 모두 당신 앞으로 돌려 처리가 되고 말았다.


결국 시아버지 재산으로 막대한 부를 챙기셨지만 그도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쓰러지셨고 7년 이리는 긴 시간을 매월 나오던 건물세는 만져보지도 못하고 거금을 헌납하듯 병원만 좋은 일만 시키시다 돌아가셨다. 그래도 그사이 집안에 어르신인지라 주 찾아뵙곤 했었다. 더 안 좋아지시기 전에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었다. 가시고 나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산소명의를 공동명의로 해주시면 어떨까 하고. 벌써 자식들과 이야기가 끝났는지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굳이 종종산에 모셔진 당신 부모님 묘까지 이장해 오시고 두 분 형님까지 모신 천평이 넘는 터에 우리 대대손손 쓰라 하시더니 돈 앞에선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나 다. 정승판사묘 부럽지 않게 잘해 놓았으면 뭐 하나. 아니나 다를까. 돌아가시고 얼마 후 사촌시동생은 우리 보고 그 땅을 비우든 사란다. 이런 경우를 보신 적이 있으실지. 같이 벌초하며 우리 다음에 여유되면 산소 새로 정비해서 예쁘게 꾸며보자 했던 말들은 모두 헛말이었나. 우리가 이장 안 하면 그만이겠지만 본인조부모님도 모셔져 있는 산소인데 재산 앞에선 도리 같은 것은 없는 것인지.




그때부터 곁님은 걱정에 터널을 걷기 시작했다. 집안의 어른이 되었고 장손이니  버티며 사촌들과 척을 지고 살 것인지, 어떻게든 해결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다. 결국 산소이장 문제는 차후로 미루고 먼저 종종산에 자비를 들여 납골묘를 만들기로 했다. 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니께서 안 좋으셨기 때문에 서둘러 여름  장마 전에 공사를 마쳤지만 이 또한 문제가 되고 말았다. 이미 종종에서 정해주신 터에 공사를 했는데도 말끔하게 처음 세운 납골묘가 부러웠는지 종종 한집안의 괜한 트집으로 며칠을 잠도 못 자고 시달려야 했다.


어찌나 말도 거칠고 막무가내인지 아~ 이 집 안 사람들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종종 실수이니 이동 비용을 종종이 부담하며 세워진 납골묘를 옮겨야 했다. 이 문제로 얼마나 고민하고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애썼는지 며칠 만에 주르륵 몸이 축나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넓은 종종산이 있으니 처음부터 그리로 모셨다면 않아도 될 일을 당신 체면 내세우시느라,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라며 비석 줄줄이 세우시고  따로 산소를 만들어 놓는 바람에 결론적으로 우리만 마음고생, 몸고생하고 말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산소문제다. 시어머니께서 가시면 납골묘로 모시겠지만 나머지 분들 이장문제는 요원하기만 하다. 분명 우리 대에서 해결해 놓고 갈 문제이지만 조용하게 넘어가긴 쉽지 않을 듯싶다. 명절이 다가온다. 올해부터 추석은 산소에서 간소하게 지내기로 했기에 모두 산소에 갈 예정이다. 언제까지 그곳에서 인사를 드리게 될지 모르기에 벌써 마음이 착잡해져 다. 몸이 불편한 동생이라고 그저 베풀기만 하셨던 시아버지께서는 작금에 사태를 어찌 보실는지. 


틈날 때마다 서 잡초를 뽑고 두런두런 지난 이야기들을 하며, 술 한잔씩 올려드리곤 했는데 이 아쉬운 마음을 어찌할까. 아이들이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에 합격하고, 취직이 되었을 때마다 산소 앞에서 이 모든 것은 보살펴주신 조상님 은덕이라고 감사한 마음을 놓고 곤 했는데 죄송한 마음이 다. 언제까지 벌초를 해드리고 소풍처럼 모두 모여 인사를 드리게 될는지. 새집으로 가시기 전까지는 자주 찾아뵙고 살펴드려야겠다.

<현재 산소와 새로 조성한 납골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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