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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24. 2023

그 가을을 담아봅니다

벼타작을 하던 날

가을인가 봅니다. 황금들녘에는 봄부터 부지런히 물을 빨아들이며 자라고 또자라서 여름 햇살에 진초록으로 몸을 불리더니, 가을밤 이슬에 노릇노릇 해져가는 벼이삭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추수 때가 되면 오늘은 벼를 털어야 하니 모두 집에 일찍 오라는 특명이 내려집니다. 지금이야 콤바인이 알아서 척척 해주지만 그 시절에는 모든 과정이 사람에 손이 가야만 했기에, 학교가 끝나자마자 달려와 고사리 같은 손이라도 보태야 했습니다. 며칠 전에 벼를 일일이 으로 베어 두었다가 어느 정도 말려지면 낱알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한 줌씩 탈곡기에 올려 일일이 털어주어야 했습니다.


벼이삭에서 낱알을 털어내는 수동식 탈곡기 소리는 발로 밟을 때마다 돌아가며 가룽가룽 소리를 내어 아이들은 쉽게 가룽가룽이라 했었지요. 동생들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볏단을 조금씩 나누어 오빠와 아버지께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 어이구, 잘한다! 잘한다!"  하며 연신 추임새를 넣어주시면, 우리들은 더 신이 나서 누가 누가 더 잘하나 내기하듯 부지런히 손을 놀리곤 했지요. 그래서인지 그런 일들이 힘든 것인지도 몰랐고 재미있 놀이인 줄 알았습니다. 그날 하루만큼은 아버지 엄마 얼굴에서 유난히 웃음꽃이 활짝  피었고, 우리들도 덩달아서 시시덕거리며 즐거운 타작날이었습니다. 물론 그날은 고단함에 누가 떼 메고 가도 모를 정도로 곯아떨어져 자야 했고요.




가진 재산이래 봐야 겨우 논 몇 마지기가 전부이고 밭 한떼기 없이 모두 남에 땅에 농사지었으니 남는 것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딸린 식구가 일 년을 먹고살아야 하니 가을녁이면 추수가 끝난 논바닥을 샅샅이 훑으며 벼이삭이라도 주워야 했습니다. 달려드는 새떼들과 먹이다툼을 하듯이 친구들과 놀이 삼아 논바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서로 먼저 줍겠다고 달리기 경주를 했습니다. 논도 적당히 마르고 폭신하니 그렇게 좋은 놀이터가 없었지요. 부모님들께서는 손에 쥐어진 것이 얼마 되지 않아 근심걱정이 많으셨겠지만 그런 것을 알리가 없었던 우리들은 그런 가을날이 좋기만 했지요. 


하늘가에 원을 그리며 날아가는 빨간 고추잠자리 떼를 따라가다 엎어지기도 하고 덜 마른 논두렁에 빠져 엉망이 되어도 까르르까르르 철없는 아이들에 웃음소리로 가을하늘을 물들이곤 했습니다. 없다고 마음마저 가난하진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너나없이 어렵게 살았기에 흉이 되지 않았고, 이웃들에 경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울타리래야 얼기설기 나뭇가지로 둘러놓았을 뿐 언제든지 손을 뻗어 김치 한보시기, 뒤뜰에 매달린 붉게 물들어가는 대추 몇 알을 따서 건네기도 합니다. 가을날의 풍요로운 결실만큼이나 마음도 넉넉했던 그 시절, 가을햇살에 익을 대로 익어가는 기다란 수수대가 한껏 목례를 하고, 과실들이 단내를 풍기며 입안 가득 침이 고이게 했지요.


커다란 무가 허옇게 속살을 보이면 힘껏 뽑아 올려 작은 손으로 쭉쭉 밀어 껍질을 까서 한입 베어 물면 어찌나 달던지요. 신작로 길가에는 소담스럽게 핀 코스모스꽃들이 형형색색으로 피어나 학교 가는 길이 즐겁기만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이웃집 언니들이 커다란 코스모스 화관을 만들어 씌워주면 어느 나라 공주 부럽지 않았지요. 그렇게 어린 날에 가을은 없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한없이 풍요로웠고, 아름다운 추억들이 되어 미소 짓게 합니다. 아~ 그 가을이 또 왔어요. 모든 이들에게도 곱고 예쁜 가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탈곡기와 벼이삭이 궁금한 훈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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