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김장도 이별준비 중에 하나가 되었다.

by 희야 ㅡ 박상희

내가 계획했던 일정은 아니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언니의견에 따랐다. 새벽밥을 먹고 달리고 달려 김장재료들이 산처럼 쌓여있는 시골 비닐하우스에 도착했다. 날씨도 적당하고 김장하기 딱 좋은 날이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온 힘을 다해 비비고 속을 넣었다. 하다 보니 언니가 흡족할 만큼 넉넉한 양의 김치 통들이 가득가득 채워졌다.


진짜 힘들게 준비해야 할 것들은 지금부터다. 언니네 김장이야 며칠 전부터 준비해 놓아서 비비고 속만 넣었지만, 비닐하우스 한편에 따놓은 배추들을 다듬고 절여서 가져가는 일이 걱정이다. 형부 도움으로 빠르게 진행이 되었지만 익숙지 않은 시골에서 준비하는 일들이 쉬울 리가 없었다. 파를 뽑고 다듬고 쑥갓, 시금치, 아욱 등 차가 미어질 정도로 가득 싣고 오는데 이제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까마득하기만 했다.




일단 모든 짐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남편도 힘들었겠지만 소금만 뿌려온 배추를 한 번만 뒤집어 달란 부탁을 한 후 잠들어 버렸다. 하지만 김장이란 숙제를 두고 그리 오래 단잠에 빠질 순 없었나 보다,


새벽 4시에 잠이 깨어 잘 절여진 배추를 씻어 물기를 빼주었다. 미리 준비해 둔 육수와 찹쌀풀 등 각종 김장 속 재료들을 모두 꺼내 씻고 썰고 버무려 무슨 정신에 했는지 모르겠다. 아들, 딸까지 달려들어 도와준 덕분에 무사히 김장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끝이 안 보인다. 시골에서 가져온 야채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여기저기 대충 넣어 3대의 냉장고들이 터져 나갈 거 같다. 더 시들기 전에 그에 맞는 자리와 전한 이름들을 지어주어야 한다.


3일째, 매운 것을 못 먹는 나와 귀여운 우리 보물들, 세 꼬맹이들이 겨우내 맛있게 먹을 배추백김치를 담가야 한다. 또다시 배추를 절이고 육수를 끓였다. 각종 고명들을 준비해 삼삼하고 맛깔스럽게 양념을 만들어 한통을 채워놓으니 힘들어도 뿌듯했다


4일째, 가장 중요한 동치미를 담가야 한다. 싱싱한 무를 더 이상 방치해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각종 레시피를 참고로 하여 무를 절이고,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와 간을 맞추고, 오신채 등등 좋다는 재료들을 아낌없이 넣어 온 정성을 다해 "희야표" 동치미를 마무리하였다.


5일째, 쪽파가 파김치 하기에 적당한 크기인데 안 가져가면 남을 주거나 뽑아 버려야 한단다. 남편이 좋아하는 파김치인데 가져와야 했다. 이건 내 체력으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입안이 헐고 목이 아려왔다. 그렇다고 멈출 순 없었다. 쪽파를 액젓에 살짝 절여서 당근도 곱게 채 썰었다. 맛난 육수까지 넣어 새빨간 고춧가루와 초록빛 쪽파가 짝을 만나니, 먹음직스러운 파김치라는 온전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장장 오일 간의 2022년 김장은 끝이 났다. 어떻게든 이번만은 이겨내 보려고 비타민과 진통제를 먹으며 버티었건만, 나의 힘겨운 시간은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온몸이 쑤시고 아프고....

3번의 코로나 검사에 링거투혼까지 했건만 지독한 몸살로 10여 일을 고생했다.




매년 올해부터 절임배추를 조금만 사서 간단하게 해야지 했었다. 하지만 직접 키운 배추를 여동생에게 주고 싶어 하는 언니 마음을 잘 알기에 난 또 배추를 가져오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언니 김장이 끝난 후에 천천히 조금만 가져와서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 달리 갑작스러운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된 엄마로 인해 언니 마음이 급해졌다. 결국 네가 힘들어도 시골에 와서 김장을 해주고 빨리 가져가란다. 그래서 모든 일들이 정신없이 진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무리하면서까지 언니 의견에 무조건 따르는 건 언니는 나에게 엄마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배움을 이어가지 못했다. 부모님이 농사일을 하시는 동안 어린 나이부터 집안 살림을 책임지며 우리들의 엄마가 되어 주었다. 가끔 짧은 배움에 속상한 마음을 비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마냥 미안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언니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주는 것뿐이다.


어려서는 친정 위해 일하고, 결혼 후엔 3남매 키우느라 허리 펼 새 없이 농사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온 언니다. 그런데 살만하니 두 번의 허리디스크 수술을 해야 했다. 더구나 목까지 디스크가 와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언니가 언제나 건강하고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며칠 전 기차를 타고 내려갔던 것은, 엄마를 치료하고 계시는 의사 선생님과 면담이 있어서였다. CT를 찍어본 결과 폐렴과 암이 엄마 몸속에 퍼져 있다는 소견이다. 연로하신 엄마의 완전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고, 우린 엄마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단다. 김장도 그중에 하나가 되었다. 김장중에도 매일매일 중환자실에 전화로 엄마 상태를 확인하며 종종거려야 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급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엄마의 남은 시간들을 온전히 함께 하고 싶어 서두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