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고단했던 시절을 함께 하기도 했던 기차

by 희야 ㅡ 박상희

오전 9시 51분 기차를 타기 위해 좀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지난밤 영등포역에서 기차 탈선 사고가 있었다는 인터넷 기사를 얼핏 보았기 때문이다. 일단 버스를 타고 기차역 앞에 내렸다. 역내에 들어서니 적지 않은 인파에 고성이 오가고, 역무원들은 밀려드는 민원인들을 안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 이럴 수가

설마 했던 일이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내가 타야 할 목적지를 통과하는 기차는 언제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 천안행 급행 전동열차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오빠가 지나는 길이라 천안역에서 만나 함께 갈 수 있었다. 늦지 않게 도착하여 의사 선생님과 약속했던 시간에 면담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오전일정을 마치고 오후에 돌아오는 기차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했다. 그런데 너무 기차시간에 맞추려고 서둘러서인지, 예상했던 시간보다 빨리 모든 일들을 마무리하였다. 어쩔 수 없이 오래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역에 도착하니 내가 예매한 기차 시간보다 빠른 입석표가 있었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그래 가다가 자리가 나겠지" 싶어 입석표를 역무원에게서 받아보니, 지연되어도 보상하지 않는다는 쪽지와 함께 입석표가 내 손에 쥐어졌다.


어쨌든 기차는 별일 없이 가을이 떠난 텅 빈 들판에서 이름 모를 새들이 떨어진 낱알로 허기를 채우는 들녘을 스쳐간다, 파란 하늘 흰구름에 무거운 마음을 올려놓으며 내 슬픔을 위로하는 동안 천안까지 정해진 시간에 도착했다. 일부 승객들이 내리고 1시간을 서서 온 아픈 다리를 끌고 빈자리에 앉으니 살 것 같다.


이제 30분만 가면 된다. 빨리 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열차사고로 인하여 지연되니 급하신 분은 전동열차로 갈아타라는 것이다. 기차로 30분이면 갈 텐데 전동열차로 가면 50분에서 1시간, 이제 겨우 자리에 앉아 쉬려는데 난 일어날 수 없었다.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복잡한 머릿속을 따라 헤매는 동안에도 안내방송은 되풀이되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정규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나는 방직회사에서 3교대 근무를 하며 회사에서 설립한 부설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고2 때 사촌여동생이 오고, 고3이 되자 사촌남동생과 공고에 진학하게 된 바로 아래 남동생까지 오게 되면서 자취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게 물어본 적도 내가 동의한 적도 없지만 그렇게 남동생 학비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입학금부터 시작해 분기마다 학비를 내며 생활하다 보니, 월급날이 가까워지면 수중에 남은 돈이 없어 끼니 걱정을 해야 했다. 어쩌다 가장도 아닌 내가 일하며 공부하기도 벅찬데, 너무 빨리 가난과 삶의 고단함을 느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남동생 도시락까지 챙기며 어찌 살았는지, 우리 부모님은 남동생을 내게 맡겨놓고 어떻게 그리 무심하셨을까?


우리 집보다 형편이 좀 더 나았던 사촌동생이 집에 가서 부족한 돈을 가져다 쓰는 것이 내심 부러웠다. 나도 집에 가서 생활비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렵게 마지막 남은 왕복 기차 삵을 들고 집에 갔지만, 생활비가 없다는 그 말을 차마 꺼내보지도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빈곤한 살림에 줄 돈이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밤샘 일을 하고 힘들게 갔음에도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만원인 완행열차 안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기차는 그렇게 어린 내 인생에 고달픈 시간들을 함께하기도 하였다.




내 상념이야 어찌 되었든 시간은 흐르는데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기차, 급기야 역무원께 도대체 30분 후면 간다더니 어떻게 된 거냐고 따져 묻게 되었다.

죄송하다는 멘트만 있을 뿐...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흘러 2시간 10분을 정차한 후에야 천안역을 떠날 수 있었다.


열차가 출발하니 복잡한 심경이다. 순간 화가 나서 코레일 홈피를 찾아 오늘 일에 대해 구구절절이 쓰다,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쓰던 글을 지웠다,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리며 역무원께도 따지지 말걸 후회했다. 그분 잘못이 아닐 텐데 얼마나 하루 종일 시달리셨을까, 아침에 어르신들 고함에 정신없던 역무원들 모습이 아른거렸다.


나의 불찰 때문인 것을, 아침 일찍 사고에 대해 잘 찾아보고 처음부터 전동열차를 탔으면 될 일이었다. 돌아올 때도 조금만 시간 내어 열차 사고 수습에 대해 잘 알아보고 다른 길을 찾아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천안에서도 바로 전철을 타고 왔더라면 별일 없었을 텐데 누굴 탓한단 말인가.




언제나 밥에 진심인 남편에게 저녁도 챙기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늦는다는 문자를 보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 길을 따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고생했다며 내가 해놓고 간 반찬들이지만, 정갈하게 차려놓은 밥상에 눈물이 날 뻔했다. 37년 만에 처음 받아보는 밥상이다.

참 긴 하루였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배운다 하였던가. 순간순간 배워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아진다. 젊을 때는 교과서, 책 등이었다면 그 후론 삶 속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많이 부끄럽고 부족하지만 쓰고 배우면서 성장하는 내가 되고 싶다. 엄마와의 이별은 헤아릴 수 없이 슬픈 일이지만 그냥 담담히 써 내려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