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과하게 마셨다. 마시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그녀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그 무엇이 위로가 될까 싶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급기야는 속엣말을 줄줄이 뱉어내며 울먹였다. 더 이상 남편에게 아들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고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떠나고 싶단다. 떠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이미 벌어진 일이고 지나간 일들이니 엄마가 되어 가족들에게 험한 모습 보이는 짓은 아니라며 다독여 보지만 끝내눈물까지펑펑 쏟으며 울부짖는다.
언니!
내가 갔다는 소식 듣게 될 거야.
더 이상 살 가치가 없어.
어떻게 내가 그렇게 당할 수가 있어.
내가 그렇게 바보 멍청이인 거야.
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
나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내게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쉼표도 없이 쏟아내는 자책에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고,난 그저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세상에는 예상치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곤 해. 단지 그게 너여서 너무 안타까워. 하지만 너만이 겪는 일도 아니고, 어쩌다 운이 나빠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렴, 노름을 하고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오직 더 잘해보겠다는 마음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절대로 나를 하찮게 생각하지는 마라. 세상에 내가 없으면 무엇이 의미가 있겠니. 네가 그렇게 험한 꼴로 가버리면 너의 남편이 자식들이 마음 아파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하니. 네 말대로 든든한 남편과 두 아들에 시골에 땅도 있고, 집도 있고, 평생 먹고 살 연금도 준비되어 있는데 앞으로 마음 다잡고 살면 되지. 더구나 네가 능력 있겠다 또 벌면 되지 않겠니.
집 앞에 당도하여 마지막으로 '세상에 나보다 소중한 것은 없어, 내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 알았지!' 이런 말들이 그녀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나 싶지만 더 이상 말할 시간도 없이 내려주고 와야 했다.장성한 큰아들이 결혼을 하고 싶다며 집을 준비하려는데 얼마를 도와주실 수 있는지 물어왔단다, 엄마로서 더 보태주고 싶은 마음은 커져만 가는 데있는 돈은 부족하고,때마침 주식을 하다가 꼬임에 빠져 매스컴에서나 들었던 그 상황이 되어버린 거였다.
주식이래 봐야오래전에 재미 삼아 사둔 대형주몇 주와가끔 공모주를 사는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주식에 대해선 잘 모르는 주린이라서 저리 큰돈을 맥없이 날려버리다니 세상이 다 무서워진다. 결국은 욕심 때문이었다. 어서 큰돈을 마련하여 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엄마의 욕심이 초래한 사고였다. 하필날도 춥고 마음까지 시려지는 23년 겨울의 끝자락에서마음까지 헐벗게 된 그녀의 가슴을 어찌다 채워줄 수 있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무엇인가 잃은 슬픔으로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이가 있다면 왜 나만 그래야 하느냐고 세상을 향해 원망을 쏟아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누구나 힘든 시절이 있었고, 다만 그 시간을 꿋꿋이 견뎌왔을 뿐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어디선가 수없이 들어온 말이겠지만 온 세상이 무너질 듯이 막막했던 순간이었음에도 지나고 보면 어떻게든 지나쳐 왔고 살아냈었다. 그것이 설령 한 번 두 번 연이어 커다란 불행으로 닥쳐왔을지라도 결국엔 어떤 방법으로든 그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다. 그 순간엔 죽을 것 같이 힘들더라도 나 자신을 믿고 힘차게 달려보자.
불공평한 세상 같지만 악착같이 살아내다 보면 내가 주인이 되는 시간은 반듯이 돌아온다. 나약하게 자신을 탓하고 세상이 뭐 이러냐고 타박해 봐야 시간낭비일 뿐 돌아오는 것은 한숨과 눈물뿐이다. 부디 나를 소중히 여긴다면 혼자 괴로움 속에서 허덕이지 말고, 가족들과 마음을 함께하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현명하게 그 난관을 벗어나기를 바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을 때 아름다워진다.
나 혼자 살겠다고 외쳐봐야 당신은이미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이기에혼자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뼛속을 파고드는 엄동설한에 외로움마저 더해진다면 서러워질 것이다. 따뜻하게 안아줄 가족, 지인, 동료들과 함께하며 그들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고 그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