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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Oct 26. 2023

들판의 결실

올해도 수고하셨습니다

파란 하 아래 가을햇살이 담뿍 내려앉은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들녘에 콤바인 한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낯에 고요를 허물어 버린다. 콤바인에 베어진 벼포기에서 부지런히 알을 떨구어 내고 뒤편으로 잘게 부서져 내리는 볏짚들이 젖은 논바닥을 뒤덮는. 올해는 풍년이다. 자루마다 가득가득 담기는 벼를 바라보며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장마길어지거나, 가뭄이 지속되면 행여 심어진 농작물에 피해가 갈세라 졸이던 마음은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 버리고 절로 웃음이 다.


포기포기 베어질 때마다 살짜기 불어오는 바람에 파릇한 풀냄새가 들녘 가득 퍼져나가며 추수에 기쁨을 만끽해 본다. 두어 바퀴 돌며 훑어낸 알이 기계에 가득 차면 기다란 대롱을 따라 수매자루에 가득가득 담길 때마다 내 마음속에도 금은보화가 넘쳐난다. 작년에는 작황도 좋지 않은데 쌀값마저 좋지 않아 수확을 해놓고도 몹시나 섭섭한 한  였었다. 다행히 올해는 큰 태풍도 겪지 않고 쌀값도 안정세로 마음껏 기쁜 하루를 즐겼다.



전문 농사꾼도 아니고 얼마 되지 않는 농사채지만 봄이면 모내기가 끝난 파릇한 논바닥을 바라보며 올해도 잘 자라서 좋은 결실을 맺어보자며 결의를 다지곤 다. 여름의 긴장마와 가뭄을 이겨내고 잘 자라주는 벼들이 신통스럽기만 하고 조금만 더 힘내자며 알알이 영글어갈 가을을 그려보기도 하고. 그래서일까. 이렇게 씩씩하게 자라서 누런 벼이삭이 낟알을 가득 달고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가을의 결실과 마주하니 올곧은 자연의 섭리 앞에서 마음도 겸손해진다.


그래봐야 얼마 되지 않기에 한 시간도 안되어 콤바인 가동은 끝나버리고 새참시간이 되었다. 오늘의 새참은 족발과 순대, 서늘해진 아침결이라 따끈한 어묵탕도 준비했다. 물론 소주와 막걸리도 있고 혹여 지나가시는 동네분이라도 계실까 싶어 보온병에 따끈한 커피와 음료, 간식거리로 꽈배기도 준비했지만 대부분 추수가 끝난 터라  오가는 이가 없어 아쉬운 마음뿐이다.


몇 해 전만 해도 콤바인 소리가 나면 여기저기서 지나시던 동네분들이 오셔서 소주도 한잔하시고, 커피와 과일, 음료도 드시며, 올해는 농사가 잘 되었다며 함께 기뻐해 주시곤 하셨었다. 비록 외지인이라 겪은 설움도 많았지만 어찌어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설핏 새겨진 모습에 반가워해 주시곤 하셨는데 이제 농촌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한다. 집에서 푸짐하게 새참과 점심을 만들어 내오던 것들이 근처 중국집 배달음식으로 변해버려 오는 사람도 없으니 다음에는 많이 준비하지 말라 하셨다.


어쩌겠나. 남은 음식은 동네분과 드시겠다 하여 싸드리고, 미곡종합처리장(RPC)으로 출발했다. 일반방앗간으로 가기도 하지만  우리는 전량 수매를 하기에 RPC에 도착하여 기다리니 전광판에 이름이 뜨고 실려간 벼자루들이 들려 아래 어딘가로 쏟아져 사라졌다. 모든 과정이 전자시스템으로 운영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수분율과 가마니수, 키로수까지 계산된 종이쪽지 한 장으로 한 해 농사과정이 끝이 났다. 수매가 몰리기라도 하면 몇 시간씩 기다리기도 하지만 오늘은 금방 끝나버려 홀가분하게 종이 한 장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있으면 자동으로 계산된 수매금액이 연결된 통장으로 입금이 되면 완전 끝이지만 올해는 아직도 수매가격이 정해지지 않아 일부만 먼저 입금이 된 후에 가격이 결정되면 나머지 금액도 입금된다 한다. 한 해 농사가 전부인 농부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농사채가 적지 않은 남동생 같은 경우도 작년에 쌀값하락에 작황까지 안 좋아 많은 금액이 줄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부디 좋은 가격으로 형성되어 애써 농사지으신 농부들이 다 함께 웃을 수 있는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올해도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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