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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Jan 29. 2024

할머니의 방학분투기

숨찬 하루일과들

천사가 유치원 방학으로 며칠 다녀갔습니다. 주차장에서 자동차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면서도 어찌나 아쉽던지요. 좀 더 놀아주고 챙겨줄 것을. 하지만 표가 나지 않는 집안일과 끼니 준비하기도 버거운 터라  이상의 여력이 없었습니다. 윤이와 훈이도 방학이라 딸이 아침을 챙겨놓고 가면, 사위가 먹이고 씻기고 입혀서 출근길에 아파트 입구에 내려놓고 가면 알아서 올라옵니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우리는 그때 아침을 먹고 있지요. 부지런히 아침식사를 마무리하고 방학과제인 복습 문제집 풀기와  읽기를 합니다.


깔끔했던 집안은 필기도구와 문제집, 책들로 난장판이고, 세 꼬맹이들의 목소리까지 엉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충 치워두고는 공과 줄넘기를 들고 지하에 있는 다목적실로 내려갑니다. 방학과제로 운동 중에 줄넘기를 선택했기에 매일 이는 150개, 이는 200개를 해야 합니다. 아직 줄넘기를 할 줄 모르는 천사는 어쩔 수 없이 나와 공놀이를 해야 합니다. 태권도에서 배운지라 여러 가지 형태의 줄넘기를 하면서도 아직 둘 다 2단 뛰기를 못한다네요. 아직 할 수 있으려나 망설이다 두꺼운 점퍼를 입은 채 뛰었지요. 2단 뛰기를 넘긴 순간 쿵!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지만 골반뼈 나가는 줄 알았네요. 다음날 또 해 보아도 예전처럼 연속으로 2단 뛰기가 안되네요. 괜스레 욕심내다 다칠까 싶어 다음으로 미루고, 천사와 공놀이를 하느라 기운을  빼서인지 점심준비를 하려는데 손발이 후들후들 떨려옵니다. 다음날은 탁구채를 들고 갔지요. 할아버지의 지도아래 윤이가 처음 잡아본 라켓으로 탁구공을 쳐보려 하지만 제대로 될 리 가요. 뒤에서 공 주워다 주는 것이 더 힘이 들더군요. '이제 나는 운동하러 못 가요.' 운동 같이 가면 기운 없어 점심밥도 준비하지 못하겠다고 두 손 들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훈이를 영어학원에 실어다 주고 이제 딸 집으로 갑니다. 대충 집안정리를 하다 레벨이 달라 시간이 다른 윤이를 영어학원에 보내고 저녁준비를 합니다. 부지런히 세 꼬맹이들의 저녁을 먹인 후 6시가 되면 태권도를 보내고 문단속을 한 후에야 천사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옵니다. 쓰고 있는 저도 숨차네요. ㅎ 그제사 우리 식구들 저녁을 해서 먹고 치워야만 하루일과가 끝납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천사는 다시 양양으로 떠나고 방학중에 꼭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손자들은 소원대로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3박 4일간의 휴식이 주어졌네요. 이제 겨우 한주 지났으니 2월 말까지 어찌 보내게 될는지요.




조용한 집안에 덩그러니 앉아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복닥거리며 웃던 어제가 좋았고 그제가 좋았습니다. 언제까지고 손자들이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도 않을 터이고, 굵직한 목소리로 데면데면 방문 닫을 날도 오겠지요. 그걸 생각하면 벌써 섭섭해지려 합니다. 문제집 한 권을 두고도 토론을 벌이는 우리들인데요. 하루에 한 페이지만 아니 두 페이지만 하겠다 티격태격하다가 명쾌하게 묻습니다. '일곱 페이지 할래 다섯 페이지 할래?' 두 녀석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내 다섯 페이지요. ㅎㅎ  할머니의 완승입니다.


아직 순수한 우리 강아지들. 어느새  할머니 손안에 들어와 웃는 날들이 더 많아지고, 작은 일이라도 강요가 아닌 스스로 선택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그것이 할머니의 잔머리에서 비롯되었지만 알면서도 받아주는 손자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이제 돌아오면 또 무슨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맛있는 것을 해줄까 벌써부터 마음이 바빠집니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방학 또 어떤 일들이 저를 웃게 할는지요. 어차피 함께 해야 할 시간들이라면 꼬맹이들에게 행복하고 좋은 기억들로 채워주고 싶습니다.


2024년 1월 초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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