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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r 06. 2024

다시 그리는 그림

비어버린 원

내가 그리지 않은, 이미 그려져 있는 원 안에 들어가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었다. 나를 중심으로, 내가 소속되고 싶고 내가 소속시키고 싶은 사람들을 포함한 원을 그려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나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게요- 전아론.
우리는 우리의 원을 그려요. p.252.


비어버린 원


10대 초반어린 날들이었다. 세 아이의 집담장은 이어져 있었고 우리 집은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에 낡은 고무신, 남루한 옷차림, 가난을 이고 살았지만 우린 늘 명랑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걸핏하면 나를 외롭게 했고,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나를 슬프게 다. 은희와 나는 서로를 이기기 위해 땅거미가 지도록 공기를 하고, 사방치기를 했다. 그런 우리 사이를 교묘(?)한 방법으로 갈라놓는 것은 이사를 온 복순이였다. 


이유도 모른 채 난 몇 날 며칠을 외톨이가 되었지만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옥이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럼에도 난 그 아이들이 그려놓은 그 원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영문도 모른 채 따돌림을 당하고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는 누명을 쓰기도 했다. 억울했지만 견뎌야 했고, 그 아이들보다 똑똑하기 위해 노력했고, 다행히 더 많은 친구들이 내 친구가 되어주었다. 지금은 비어버린 원이 되었지만 그 시절에는 그 원이 무척이나 부러웠고 들어가고 싶은 원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리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 원안에서 깔깔거리며 노는 두 아이가 늘 부러웠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 세상에 없다. 그녀들이 그려놓은 원안에서 그녀들만의 방식으로 살다가 너무 일찍 세상을 등져버렸다. 좀 더 정직하게 살았더라면 그런 너희들 일지라도 기꺼이 안아주었을 텐데 따뜻한 밥 한 끼로 불편한 걸음을 채워주었던 그날이 아쉽기만 하다. 그때는 이미 내가 소속되고 싶고 내가 소속시키고 싶은 사람들을 포함한 원을 마음껏 그리고 있었기에 그런 그녀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온 그녀들이 요청한 대로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그려놓은 그 원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허망하게 떠날 줄은 몰랐다. 분리된 공간을 드나든다는 소문마저 무성했지만 병을 얻어 영영 떠나버렸다는 소식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을 때는 너무 마음이 아팠, 부디 저 세상에서 만큼은 정직한 원을 그려가기를 기도할게.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살아왔으니 난 그 친구들이 진심으로 더 잘 살아가기를 늘 바랐었다. 하지만 십여 명이 넘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공장을 전전하거나 변변하지 못했고, 결혼생활 또한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이혼과 재혼을 거듭하거나 결국에는 혼자가 되어 옛집으로 돌아와 있다는 소식을 듣곤 했었다. 가난하여 배우지 못한 것도 서러운 너무 일찍 이승을 떠나버린 친구들이 늘어만 갔다. 난 그런 그녀들이 애처롭고 가슴 아팠지만 성인이 된 후 그녀들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오직 내가 그린 나의 원 안에서 나의 행복을 찾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므로 시골에 갈 때마다 어쩌다 그녀들의 소식을 전해 들을 뿐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떠나시니 그 소식들 마저도 이제는 들을 길이 없다. 그래도 가끔은 그리워지는 그녀들, 남아있는 그녀들 만이라도 그녀들의 원 안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본다.



다시 그리는 그림


발행하지 못할 글일지라도 정성 들여 쓰곤 다. 아주 오래 묵혀두었던 어쩌면 화석이 되어가던 그날들을 꺼내어 샅샅이 분해하며, 내 안의 응어리들을 하나씩 지워나가곤 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가벼워지고, 미안함이 덜어지고 용서하게 되고 이해하기도 한다.  그 누구의 개입 없이 온전히 나 자신과의 만남으로 소통하며, 게워내고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날들의 아픔을 조금은 성숙해진 어른스러움으로 따스이 안아주면서.


그녀들은 어린 티를 벗기도 전에 가난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공장으로 떠났고, 나 역시 가난했지만 배움을 이어가기 위해 공장으로 떠났다. 그런 내가 그녀들의 구심점이 되어 그녀들을 보살펴 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돌아볼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야 했으니까. 이제 멈춰 서서 주위를 살피고 지나온 길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고 세월이 알려준다. 이제 천천히 가도 된다고. 그렇게 수많은 날들 속에 무수히 쌓인 삶의 궤적들은 차곡차곡 무심히 쌓였을 뿐 때로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적도 많았다. 언젠가는 다시 펼쳐져 나를 보아줄 날이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수많은 나날들. 그런 그날들을 꺼내어 가끔은 다시 색칠을 하며 그림을 그리곤 다. 이제 따스한 온기가득 채워진 그림을 고이 접어 가슴 한편에 드리워도 기약 없이 기다리지도 외롭지도 않을 것이다. 그날들은 이미 글꽃으로 활짝 피워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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