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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r 02. 2024

아이와 함께 먹는 반찬 3종세트(2)

음식은 추억입니다

어느새 2월도 훌쩍 떠나버리고, 싱그러운 연둣빛이 흐를 것만 같은 3월을 포근히 안아봅다. 그렇다고 너마저 싹을 피울 일은 아니건만 얼마 전에 사다 놓은 제주 햇감자가 뾰족뾰족 싹을 내밀었어요. 농부가 아닌 다음에야 독성이 있는 감자싹이 반가울 수없겠지만, 감자만 보면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감자떡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야말로 더위가 한껏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태어났으니 해줄 것도 해먹기도 쉽지 않은 때였지요. 그나마 흔했던 감자를 푹 쪄서 돌절구에 쿵더쿵 쿵더쿵 빻아주면 찐득하니 인절미 속살처럼 보들보들해진 감자를 고소한 노란 콩고물에 묻혀주시면 얼마나 맛있던지요. 먹을 것도 귀하고 어려웠던 시절, 생일일지라도 미역국을 먹어본 기억은 없지만 땀 흘리며 해주셨을 그 감자떡이 지나고 보니 어머니의 사랑이었음을 이 부족한 딸은 떠나신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그 사랑을 가슴에 담으며 언제 한번 해 먹어 봐야지 하면서 냉동실에 콩고물까지 준비해 두었건만 손주들 반찬, 식구들 반찬을 만들다 보니 나만의 추억인지라 선뜻 해지지가 않네요.


에고 감자볶음 한 가지 하려다 오늘은 너무 멀리 다녀왔는데 올라온 싹이 더 자라기 전에 얼른 감자볶음과 애호박볶음, 청경채버섯볶음을 해보도록 할게요. 올라온 싹을 딱히 키울 재간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제거해 줘야겠지요. 감자의 싹에 독성이 있다는 것은 다 알고 계시겠지만 햇빛을 받아 초록색으로 변한 감자에도 독성이 생기고, 오래된 감자도 반드시 껍질을 두껍게 깊이 벗겨내고 드셔야 한답니다. 다행히 싹이 작아서 감자 5개를 말끔히 잘 벗겨 채 썰어 주었어요. 채 썬 감자는 전분기를 제거하기 위해 두어 번 씻어 소금 1스푼 넣어 절여주고 함께 넣어줄 당근과 양파도 조금씩 채 썰고 마늘도 준비했어요. 맨 먼저 식용유를 1스푼 두른 프라이팬에 마늘과 양파를 볶아줍니다. 마늘향이 퍼지면 절여진 감자를 다시 한번 씻어서 프라이팬에 투하합니다. 좀 물기가 있어도 괜찮아요. 식용유를 많이 넣는 걸 안 좋아해서 적당한 물과 함께 섞어주며 중불에서 감자를 익히듯이 서서히 볶아줄 거예요. 감자를 절여주는 것은 그냥 볶아주면 햇감자라서 부서지거나 아예 죽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20분 정도 절여주면 좋은데 시간이 없어서 10분만 절였어요.


거의 볶아질 즈음에 당근도 넣고 볶다 맛간장 2스푼과 들기름을 한 스푼 두르고 볶아주면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겠지요. 그 냄새에 훈이가 달려와서 간을 봐주고는 엄지 척을 하며 '오늘은 감자볶음 많이'를 외치고 가네요. 마지막으로 냉동실에 조금 남은 쪽파와 참께를 콩콩 빻아 넣으면 마무리가 되는데 오늘은 맛간장을 2스푼이나 넣었더니 조금 노란색 감자볶음이 되었어요. 맛은 좋지만 비주얼로는 부족하여 다음엔 하던 대로 간장과 소금 반반씩 넣어야겠어요. 여기서 맛간장이라 했지만 식품유형에는 양조간장으로 표기되어 있는 간장(세미* 부엌 ㅡ제품과 관련 없음)인데 원재료명에 사과, 배농축과즙과 양파진액, 다시마농축액 등이 있어 짜지 않고 맛간장맛이 나는 간장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간장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자세히 올려볼게요.




애호박값이 언제나 떨어지려나요. 아직도 초록빛 몸값을 자랑하고 있지만 먹어야지 어쩌겠어요. 두 개를 사 와서 비닐을 제거하고 씻어서 3등분 해주었어요. 속의 물렁한 식감은 윤이가 싫어라 하니 겉 부분만 미니 채칼로 조심스럽게 채를 쳐줍니다. 칼로 썰어도 좋겠지만 어떻게 하면 요리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고,  맛있어 보이고, 예쁘게 할 수 있을까 요령을 피우다 보니 어쩌다 발견한 채칼을 구매하여 활용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단축되고 굵기도 일정하지만 손 다칠까 봐 무서워서 사용할 때마다 신경을 집중하곤 합니다. 호박 2개를 모두 썰어도 속을 빼고 나면 별로 양이 많지도 않네요. 채 썬 호박은 소금 3분의 2스푼을 넣어 15분 정도 절여줍니다. 채가 가늘어서 금방 절여졌는데 약간 굵게 썰었을 때 더 식감도 좋고 맛있게 느껴졌어요. 채칼이 없으시면 돌려 깎기 하거나 겉 부분만 돌아가며 썰어서 채 썰어주면 되겠지요. 큰 채칼로도 해보았는데 재주가 없어서인지 실패했어요.


그 사이에 함께 들어갈 재료로 당근 반 개와 작은 양파 반 개를 채 썰고, 마늘 반스푼을 준비했습니다. 이제 시작해 볼까요.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마늘과 양파를 넣고 볶아주다가 당근도 같이 볶아줍니다. 살짝 불을 줄이고 중간에 한번 뒤집어 준 호박을 꼭 짜서 넣어준 후 다시 불을 올리고 볶아주다 들기름을 한 스푼 넣어 살살 5분 이내로 볶아 소금으로 간을 맞춥니다. 채 썰어 절인 애호박은 금방 익기 때문에 오래 볶아주면 부서지거나 씹는 식감이 적어지니 빠른 시간 안에 볶아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깨소금 콩콩 빻아 뿌려주면 완성입니다.




마지막으로 청경채버섯볶음을 해볼게요. 요즘 시금치가 비싸기도 하지만 마침 로컬푸드에서 청경채 한 봉지(400g, 2,000원)와  느타리버섯 한 팩(200g, 1,950원)이 저렴하여 데려왔습니다. 함께 들어가는 재료로는 당근, 양파, 햄 한 줌씩을 채 썰어 준비했습니다. 햄은 명절에 꼬치 전 120개를 하고도 남아서 살짝 데쳐 건져 놓았습니다. 그래도 또 남아서 부대찌개를 해 먹어야 할 듯싶어요. 햄(원재료명 및 함량에 국내산, 고기함량이 많은 것을 사용함)을 데치기 전에 버섯과 청경채도 살짝 데쳐 꼭 짜서 물기를 빼주면 재료준비 끝. 식용유를 한 스푼 두르고 마늘반스푼과 채 썬 양파를 넣어 달달 볶아줍니다. 이어 당근과 버섯, 햄을 넣고 볶아주다, 소금 1, 굴소스 2를 넣어 간을 맞춘 후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먹기 좋게 찢어놓은 청경채를 넣어 간이 배도록 뒤집은 후에 들기름과 고소한 통깨, 후추로 마무리해 줍니다.


이제 방학도 며칠남지 않았습니다. 겨울방학 2개월을 어찌 보냈는지 금방 지나가버린 듯하지만 그 사이에 손자들의 키는 훌쩍 자라고 몸무게도 늘었습니다. 열심히 태권도를 다니고 줄넘기와 공놀이, 달리기를 추가로 했어도, 집밥을 삼시세끼 먹인 탓인지 통통해진 뽀얀 얼굴을 보니 흐뭇하기만 합니다. 일일이 해 먹이느라 힘들 때도 있었지만 맛있게 먹어줄 때마다 어찌나 고맙고 예쁘던지요. 다음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 할머니가 해주셨던 그 반찬이 맛있었다고 기억해 주려나요. 어느 날엔가는 그 반찬이 먹고 싶다며 그리워해 줄까요. 그런 생각을 할 때면 고단함은 어디 가고 나도 모르게 웃고 있습니다. 음식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 누군가에게 언젠가는 추억의 음식으로 기억되도록 한두 가지쯤은 내 손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반찬이 있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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