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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Feb 24. 2024

아들을 위한 반찬 3종세트

엄마는 늘 아들을 믿는단다

어느덧 몇 송이 되지도 않는 천리향이 활짝 피어 그 향기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말없이 흘러 결혼한 아들도 8개월간 마와의 동거(?)를 마치고, 아내와 딸이 있는 양양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다섯 살이 되었지만 천사를 낳고 며느리에 이어 아들이 육아휴직을 2년 습니다. 아들이 이직을 하면서 다니던 직장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았는며느리가 있는 양양으로 다시 발령받아 가기까지 시일이 걸려 어쩔 수 없이 주말부부로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되었요. 그런 아들을 위해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점심도시락을 싸주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아들은 학교 다닐 때도 급식은 마다하고 엄마도시락을 원해서 싸주곤 했었거든요.


가물가물 하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동서들이 미리 와서 며칠씩 자고 가던 때였을 거예요.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아들이 다음날 아침은 본인이 차리겠다며 아무도 일찍 일어나지 말 것을 부탁했지요. 전날의 피곤함으로 마음 편히 단잠을 자다 깨워서 주방으로 가보니 냉장고에 있던 음식들을 먹음직스럽게 식탁 위에 가득 차려 놓았습니다. 거기에 만들어 두었던 돈가스를 어떻게 찾아내었는지 노릇노릇하게 잘도 튀겨서 접시에 예쁘게 세팅해 놓은 것이 어찌나 먹음직스럽던지요. 우리 모두 감동하며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문인지 고3 수능을 보고서는 넌지시 제게 뜬금없이 조리학과를 가고 싶다 하더군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요즘처럼 셰프가 뜨는 직업도 아니었고, 크게 인기학과도 아니었기에 애써 수능점수가 아까웠어요. 더구나 여린 살갗이라 그릇 몇 개만 닦아도 주부습진이 생긴다 하는데 마냥 오케이를 할 수가 없었지요.


결국 아쉽지만 아들이 성인이 되면 요리는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밥벌이가 될 수 있는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당연 결혼과 동시에 주방은 아들 차지가 되었고, 천사가 태어나자 이유식부터 각종 반찬들을 직접 만들어 먹이곤 했습니다. 몇 개월간은 엄마밥을 먹었으니 이제 양양에 가면 다시 그 일을 해야겠지요. 매일 엄마가 해주는 반찬이 맛있다며 싹싹 비우니, 가끔은 힘들어도 언제 또 아들과 살아보겠나 싶어 뭘 해주면 더 맛있게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했던 시간들도 있었네요. 이제 그 시간들마저도 모두 지나버리고 돌아간다 하니 아쉬운 마음에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몇 가지 해서 보내려고 합니다.


가을에 언니가 겨우내 두고 먹으라며 무를 한 포대 주어서 뭇국도 끓여 먹고, 무조림도 해 먹었는데 아들이 무생채를 좋아해서 이번에 해보려고 합니다. 가을무는 두꺼운 비닐포대에 담아서 바람이 들지 않도록 꼭꼭 묶어서 스티로폼박스에 담아두었더니 아직도 먹을만하네요. 명절에 무나물도 해 먹었는데 맛이 있었어요. 무는 깨끗이 닦아 껍질을 벗겨 채 썰어서 설탕에 절였습니다. 아무래도 가을무라 씁쓸할까 싶어 살짝 절여 꼭 짜내고 양념을 해줍니다. 고춧가루, 쪽파, 마늘, 올리고당, 식초를 넣어 살살 뒤적이다 액젓과 소금, 들기름을 넣어 간을 맞추고 통깨를 콩콩 찧어 넣고  무쳐주면 겁나 맛있겠지요.


두 번째로 아들이 어린아이처럼 아직도 좋아하는 소시지야채볶음을 했어요. 소시지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썰어주고 양파와 당근도 썰어서 기름 두른 팬에 볶아줍니다. 적당히 볶아지면 소시지도 넣어 볶다가 불을 줄이고, 양조간장, 올리고당, 케첩을 넣어 간을 해줍니다. 케첩보다는 성인이니 고추장을 조금 넣어서 해주었더니 엄마 저는 예전에 해주던 케첩이 더 좋다 하여 이번엔 케첩을 듬뿍 넣었어요. 마지막으로 후추와 통깨를 넣어주면 완성입니다.


마지막으로 들, 며느리까지 좋아하는 마늘종 무침입니다. 마늘종은 어머니께서 하늘나라에 가시기 전에 집 앞에 있는 마늘밭에서 뽑아다 주신 것으로 소금, 간장, 설탕, 식초를 넣어 너무 짜지 않게 담가 놓았던 것입니다. 아직도 여기저기 친정어머니의 흔적으로 순간순간 눈가가 붉어지곤 하네요. 얼마 남지 않은 마늘종을 건져 고추장 1과 고춧가루 1, 올리고당 반술, 들기름 1, 통깨를 넣어 조물조물해 주면 별다른 양념을 넣지 않아도 훌륭한 밑반찬이 됩니다. 이제 집에 가면 아들도 몇 끼 정도는 가져간 반찬들을 먹으며 새로운 일터에서 잘 적응해 나가겠지요.




얼마 전에 이야기를 나누다 아들이 고3시절에 누나에게만 신경 쓰고 본인에게는 덜한 듯이 말을 하더군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니 오히려 어려웠던 시절 아들을 끌어안고 의지하며 살았는데 왜 그렇게 느끼도록 했을까 싶었지요. 아직도 카*창에는 '내 희망'으로 저장되어 있는데 아들이 그리 기억한다면 엄마인 내 책임이겠지요. 다만 그 시절 딸이 독서실에서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오는데 여자아이라 그냥 두고 잘 수가 없어 마중 나가곤 했었지요. 아들은 그래도 남자인지라 별걱정 없이 믿곤 했었는데 그것이 섭섭했을까요. 더구나 딸은 같은 여자로서 엄마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더 신경 썼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들에 대한 사랑이 덜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아들이 알까요.


많이 늦었지만  참에 어디선가 보았던 박완서 작가님의 글로 엄마의 마음을 아들에게 대신 전해보려 합니다.

"아들아, 혹시 엄마가 딴 엄마들보다 자식 걱정을 덜한다고 생각하고 섭섭해한 적은 없니? 그랬다면 그건 오해다, 너. 엄만 널 사랑해. 딴 엄마들이 고3아들한테 해주는 대로 엄마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잘 안 됐던 건 관심이 덜해서도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너를 믿었기 때문이야."

이 글을 써 놓고 한참 후에 며느리가  남편 도시락 싸주시느라 고생하셨다며 선물을 건네주었습니다. '내 아들 도시락인데 무슨 수고겠니' 하면서 펼쳐보니 봄처럼 화사한 스카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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