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 가득 채워진 한정식, 누구의 수고로움이든 남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먹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한 사람의 솜씨로 끼니를 채웠으니 가끔은 푸짐하게 차린 새로운 음식이 생각날 때면 찾는 곳입니다. 늦은 점심에 대기까지 걸려 2시가 넘어서야 음식과 마주하니 허겁지겁 먹을 수밖에요. 정신없이 먹다 보니 생각이 나더군요. 여전히 제 배 채우고서야 떠올리니 부족한 딸이기만 합니다. 진분홍빛 철쭉꽃이 아파트 정원을 가득 채우던 날 친정어머니께서 딸이 사는 아파트를 생전에 딱 한번 오셨더랬지요.
시어머니 모시고 칠 남매 맏며느리로 애쓴다며 어머니까지 보태실 수 없으셨는지 그저 잘 사나 보다 하시며 발걸음을 안 하셨더랬지요. 세월이 흐르고 연로해지신 탓에 큰 병원에 가시기 위해 어머니께서 오셨던 꽃 같은 봄날.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고 싶었던 둘째 딸은 정갈한 한정식집에서 주름진 어머니와오붓하게 밥상을 마주했었지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도 있느냐며 어찌나 행복한 모습으로 잘 드시던지요. 왜 진작 한번 사드리지 못했을까요. 딸의 수저 젓가락은 허공에서 맴돌 뿐 붉어진 눈가를 들킬세라 차마 입에 넣지 못했던 지난날이 스쳐갑니다.
생각해 보면 친정어머니와 함께 산 세월이래야 중학교 졸업 때까지 고작 16년에 불과합니다. 그보다 두 배나 넘는 세월을 함께 한 시어머니에비하면 그리 특별한 추억도 없을 듯싶건만 가시고 나니 왜 이리 죄송하고 애틋한 마음뿐인지요. 언제나 날이 밝기도 전에 들판으로 일하러나가시면일곱 살 위인 언니가 우리를 보살펴 주었고, 겨우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내 힘으로 고등학교를 다녀보겠다고 너무 일찍 집을 떠나야 했었지요. 밥이라곤 해본 적 없던 그 어린것이 밥 해 먹으랴 일하랴 배우랴 동생들까지책임지며 동분서주할 때도 마음 한번 써 주신적이 없었던 어머니. 내게는 오직 서운하고 야속한 분이셨지요. 단 한 번만이라도 고생한다 하시며 고단했을여식 손에 반찬이라도 들려보네 주셨더라면 그렇게 섭섭해하진 않았을 터인데. 하지만 막상 아물지 않는 병으로 가신다 하니 왜 그리 마음이 아프던지요. 어떠한 이유도 변명도 필요 없이 오직 나를 낳아 젖을 물려 키워주신 어머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너무나 짧은 기간 어머니의 병간호로 시골집을 오가고 병원을 드나들고 먼 곳으로 보내드리기까지 어머니에 관한 글을 쓰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지요. 갈 때마다 당신은 야위어지고 앙상해져 가건만 언제나 어찌 그리 실하지 못하느냐며 어여 한수저라도 더 먹으라며 딸내미 앞으로 밀어주시던 어머니의 주름진 손길. 오늘따라 참 많이도 그립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시골에 내려갈 때마다 새벽부터나가셔서 다 자라지도 않은 인삼과 배추, 무 등 계절마다 가꾸신 농작물을 트렁크가 미어지도록 실어주시곤 하셨지요.또 참나무를 베어다가 종균을 접종하여 배양이 되면 갓이 거북이 등처럼 하얗게 갈라지며 꽃처럼 피어난 먹음직스러운 표고버섯을 한광주리씩 따서 말려주시곤 하셨습니다. 지금은 다시 받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이여식에 대한 사랑과 어머니의 따스했던 그 손길, 어머니 첫 기일이 다가오니 유난히 더생각나고뵙고 싶은 날들입니다.
매년 명절이 되면 말린 표고버섯선물세트가 들어오곤 합니다. 딱히 무엇을 해 먹을까 생각해 보아도 육수를 내거나 찌개에 넣어 먹는 정도인데요. 오늘은 예전에 해 먹었던기억을 살려 표고버섯볶음을 해보려 합니다. 생표고버섯과는 다른 맛이지만 그래도 먹어야지 마냥 묵혀둘 수는 없잖아요. 혹시 댁에도 있으시다면 해보시면 어떨까요. 사실은 사위가 좋아해서 만들곤 합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이미 채 썰어서 말린 표고버섯이기에 전날저녁에 물에 푹 담가주시면 됩니다(생표고버섯의 경우에는 채 썰어 같은 양념으로 볶아주시되 올리고당 양을 줄이고 오래 졸이지 않아도 되겠지요).
아침에 꺼내보면 통통하게 잘 불려진 버섯을 보게 됩니다. 오랜 시간불려줘야만 충분하게 불려지니 꼭 염두에 두시면 좋을 듯싶어요. 단시간 불렸더니 딱딱해서 먹을 수가 없더라고요. 불린 버섯을 깨끗이 씻어 채반에 받쳐두고 양파와 대파를 어슷 썰어 기름에 볶아줍니다. 여기에 양조간장과 맛술, 올리고당, 굴소스 한 스푼을 넣은 후 씻은 표고버섯을 짜지 않고 그대로 넣어 볶아줍니다. 간이 쏙 배도록 졸이듯이 충분히 볶아준 후 당근과 쪽파를 넣고 볶다가 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 참기름과 깨소금, 후추로 마무리했습니다(말린 표고는 약간 씁쓸한 맛이 있어 간을 조금 세게 해야 제맛이 났어요).맛있어 보이시나요. 달콤 짭짤 맛있습니다.
이번에는 무엇으로 부쳐도 맛있다는전으로어머니께서 호박전 다음으로 좋아하셨던 김치야채전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도 지나고 가을에 담근 김장김치가 제대로 푸우욱 익어 김치찜을 해도 맛있고, 김치볶음, 김치찌개를 해도 새콤하니 맛이 있네요. 먼저 맛있게 잘 익은 배추김치 소를 모두 털어내고 송송 썰어줍니다. 같이 들어갈 재료는 양파, 당근, 깻잎,부추를 먹기 좋게 잘게 썰어주었습니다. 오징어도 손질하여 조금 넣어야 맛있겠지요. 없으시면 패스해도 되지만 혹시 냉동새우나 마른 새우라도 있으시다면 송송송 썰어서 넣어주시면 훨씬 더 감칠맛이 납니다. 정해진 재료는 없으니 냉장고에 남아 있는 재료들을 적절히 활용하시면 좋겠지요.
음식이란 것이 그래요. 꼭 정해진 레시피보다는 당장 집에 있는, 가족들이 좋아하는 식재료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내 입맛에 맞게 하는 것이 최고지 싶어요.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반반 섞은 후 약간 질다 싶게 반죽을 만들어 줍니다. 반죽에 모든 재료를 넣어주고 소금 한 꼬집과 후추를 넣어 주었습니다. 계란은 넣었더니 전이 좀 질척거리고 바삭한 맛이 떨어져 넣지 않았어요. 팬에 식용유를 넉넉하게 두르고 반죽을 골고루 펴주면 지글지글 바삭하게 구워져 겁나 맛있습니다. 김치와 오징어가 씹히고 야채가 어우러져 따끈할 때 호호 불며 먹으면 맛있겠지요.
마지막으로 어머니께서 생전에 가장 좋아하셨던 애호박야채전을 해보려고합니다. 시골집 앞에는 두동의 비닐하우스가 있었습니다. 한동은 여기저기 부서지고 구멍이 숭숭 났지만 매년 호박씨를 심지 않아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싹이 나고 늦가을까지 호박이 열리는 하우스이고, 또 한동은 어머니께서 마지막까지 고수하셨던 고추밭이었지요. 두 동 다 진작부터 없애려 하였지만 아픈 어머니의 실낱같은 희망들이 자라던 곳이기에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봄이면 앞뜰에 수없이 심어놓은 부추가 파릇파릇 자라고, 동글동글 예쁜 호박이 열리면 방문보호사님이 없는 틈을 타 어떻게든 기고 굴러서라도 가셔서 기어이 따다가 호박전을 해 드셨지요. 나중에는 육신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아 결국 자식들이 돌아가며 어머니의 식사를 챙겨드려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께 더 맛있는 호박전을 해드리려 애를 쓰곤 했었지요. 오늘 그때를 떠올리며 어머니께서 맛있게 드시던 그 애호박야채전을 해보려고 합니다.
벌써 하기도 전에 목이 메이지만 그리움만 꾹꾹 눌러 담으며 시작해 볼게요. 애호박을 곱게 채 썰어 소금 한 꼬집 넣어 절여줍니다. 양파와 당근도 썰고 부추와 깻잎도 먹기 좋게 썰어둡니다. 마지막으로 마른 새우를 거칠게 갈아 준비했습니다. 야채들만 하면 밍숭밍숭하기에 마른 새우를 조금 갈아 넣었더니 어머니께서 어찌 이리 맛있느냐며 몇 쪽이나 드셨더랬지요. 당연하지요. 어머니께서는 야채들만 넣어서 해 드셨으니 딸이 해드린 전이 어찌 안 맛있을 수가 있겠어요. 역시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반반씩 섞어 물을 적당히 넣으니 부침하기딱 좋은 반죽이 되었네요.
준비해 둔 야채들을 모두 반죽그릇에 넣고 골고루 섞어 식용유 두른 팬에 먹기 좋게 작은 크기로 얇게 펴서 노릇하게 부쳐냅니다. 이때반죽이 되직하면 물을 좀 더 넣으시거나 묽다 싶으면 부침가루를 더 넣으면 되겠지요. 굳이 양념간장을 하지 않아도 이미 호박에도 간을 한지라 적당하니 맛이 있습니다. 이번 어머니의 첫 기일에도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셨던 애호박야채전은 꼭 올려드리려고 합니다. 물론개운하다며즐겨드시던 달달한 믹스커피도 함께요.
오늘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이 여식은 글로나마 어머니를 만나곤 합니다. 진즉에 더 많이 해드릴 것을 못내 아쉬워하면서요. 부디 그곳에서 만큼은 아픔의 흔적들마저 모두 내려놓으시고 편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