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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y 02. 2024

회 복

괜찮아질 거야

 기능성 소화불량으로 소화제를 달고 살지만, 언제나 씩씩한 척 아침이면 일어나 신선한 샐러드와 건강한 우유로 아침을 차리고, 글쓰기 삶을 선택했으니 틈만 나면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아플 때마다 생명줄처럼 쥐고 있던 체중계의 마지막 숫자가 무너질 때면, 괜한 설움에 숫자를 외면하는 날들이 길어지기도 다. 그래도 씩씩하다. 조금만 나아지면 괜찮아질 거야. 설령 그리 되지 못하고 자꾸만 주저앉아도 늘 다독인다. 이번만 잘 넘기면 또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요즘은 한의원에 가곤 다. 갈 때마다 다부진 체격에 인상 좋으신 내 맘대로 찜한 멋진 주치의 내과선생님과의 의리를 저버린 것 같아 끔은 마음에 걸리지만, 세상 사는 게 꼭 내 맘처럼 안되니 어찌하오리까. 옆에서 제발 한의원에 가서 보약이라도 지어먹으라며 보채는 통에 계속 거절수가 없었다. 언제나 친절로 살펴주시던 내과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은 잠시 접어두고 미루며 버티던 한방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쫄보라서 생각해 본 적 없던 부황을 뜨고, 온몸이 뜨끔뜨끔 전율이 느껴질 만큼 몸서리 쳐지는 전기침까지 맞으며 편히 살아보겠다는 일념하나로 내 몸에 또 한 가지 고통을 추가했. 불편함을 안고 살아온 날들 이건만 십여 년이 다 되다 보니 그냥 나의 일상이려니 다. '언젠간 나아지겠지'  수없이 품어온 소망이 가득 담긴 짧기만 한 문장은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수많은 밤들이 지났어도 그저 반복일 뿐이. 그렇게 소화불량과 나의 육신은 하나가 된 듯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어느 때는 좀 덜하고 어느 때는 불편하여 잠 못 이루고 뭐가 그리 애틋하여 그러는지.


 불편함이 친구가 되고 한 몸이 되어버리니 이제 바라는 것도 크지 않다. "우리가 무슨 걱정이 있겠나, 당신만 안 아프면...." 미안한 마음이 절정에 달하지만 낸들 그리하고 싶답디까. 다 같이 먹어도 혼자만 장염이 되어 고생하고 그 여파로 온몸이 후 달리고 나면 입술이 부르트고 가관이 아니다. 그렇게 한바탕씩 곤욕을 치러 내고 나면 당연히 부실해진 몸의 무게는 더 날아갈 듯하고 잘록한 허리는 땅굴을 파고 들어갈 지경이다. 누가 날씬한 것이 예쁘다 했나. 적당히 통통하고 건강함이 넘쳐나는 분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무슨 행운인지 4월부터는 기능성 소화불량도 한약조제 시에 실비가 적용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래 세상은 꼭 안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야. 생각지 못한 깜짝 선물처럼, 다 나아 버린 것처럼 봄꽃 같은 미소가 한가득 피어난다. 좋은 소식도 들었겠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한의원을 드나들며 한방치료를 받으며 친절하신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조언대로 한수저라도 더 먹어보려고 애써본다. 천만다행인 것은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언제든지 해 먹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축복인가. 맵고 짜고 거칠고 단단하고 자극적이고 느끼한 음식들을 빼고 나면 먹을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먹고살겠다고 어떻게든 찾아내어 삶고 끓여서 내 밥상에 올린다.


 누구보다 맛있게 홀짝거리며 먹을 때마다 불편함이 있었기에 이 순간이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단 한순간도 그렇지 못하다면 어찌 살겠나. 사람 목숨이 어디 그리 쉬이 꺼지던가. 살아있는 동안 짜증스럽게 나만 왜 이리 아플까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가끔은 친절한 내과선생님도 만나러 가고, 걱정해 주시는 한의사도 만나러 가고 그렇게 사는 거지. 물론 안 아픈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아픈데도 혼자 끙끙거리며 참고만 살려한다면 더 큰 병이 되고 그러면 누군가에게 짐이 될 수 있으니 양방이든 한방이든 치료를 받으며 약도 잘 먹고 씩씩하게 운동도 하고 그때그때 편안하게 살아가야 한다. 소중한 몸의 주인은 나이고 돌볼 사람도 나뿐이니 사랑으로 보살피자.




 꽃은 누구에게나 핀다" 어느 책 제목처럼 꽃은 피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봄은 왔다. 하지만 진정 내 몸의 봄은 멀기만 하다. 한의원에 다니며 조금은 나아지나 싶었는데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나의 몸은  그렇게 아픔을 쉬지 못했다. 목은 찢어질 듯이 아프고 맞아본 적은 없지만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몸이 늘어지고 두 번째 감염임에도 열이 안 난다는 것 말고는 아픔의 강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부담스럽기만 한 코로나19 치료제인 팍스로비드를 5일 동안이나 꼬박 챙겨 먹었지만 목안은 여전히 저녁노을이 진 것처럼 붉게 타오르고, 객담은 줄어들지 않아 컹컹거리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일주일 만에 또다시 이비인후과에 다녀와야 했다. 꽃가루가 흩뿌려대는 4월의 봄날 월요일 오전이라서인지 주차장은 만차이고 병원 안은 호흡기환자들로 넘쳐났다. 이비인후과가 나의 주무대(?)는 아니지만 어졌던 몸은 어느 정도 완화되기는 했어도 아픔이라는 것이 이번에도 쉬이 놓아주지를 않는다. 작년 여름에 처음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 때도 결국에는 폐렴까지 되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고생을 했었다. 더구나 그때는 대학병원에서 위내시경으로 선종을 제거하고 회복되는 과정이었기에 그 후유증은 어마무시했다. 아무리 위보호제와 함께 약을 먹어도 그 독한 약들은 위장을 더 여리게 했고 따끔거리는 목과 객담은 줄어들지 않고 내 몸을 괴롭혔다.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정말 잘 이겨낼 거라 생각했지만 기어이 다시 이비인후과에 가서 약을 받아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 멀리서 모녀인듯한 사람이 내 옆을 지나쳐 간다. 한 손엔 강아지 줄을 잡고 한 손은 딸인듯한 50대는 되어 보이는 여인의 손을 잡고 가는 어머니. 모자를 썼지만 튀어나온 앞머리가 희끗희끗하니 조금은 굽은 어깨가 세월을 말해준다. 곁을 스치는 중에도 그녀의 딸인 듯한 여인의 부자연스러운 몸짓에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중얼거림은 내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저 두 여인의 인생은 어떤 것일까. 저 두 사람에게 회복이라는 단어는 허락될 수 있을까. 한참을 서서 그렇게 그 두 사람이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별수 없이 염증을 완화시켜 주고, 비타민이 추가된 링거까지 맞고 돌아오는 길이 사뭇 시리다. 아픔이 길어지는 시간이 너무 괴롭다. 나아지려면 약을 먹어야 하고 항생제가 들어간 을 먹다 보면 위장에 무리가 오고 애써 치료해 온 위장이 또 탈이 나서 내과치료를 받아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곤 한다. 그 과정에서 늘 수반되는 것은 그 고통을 의연히 감내하지 못하고 회복되었던 몸무게가 끝없이 추락하고 만다는 것이.


 그래도 시간은 내편이고 사랑으로 지켜온 내 몸은 나의 작은 바람마저 저버리진 않았다. 회복이라는 단어가 이리도 다정스러웠나. 몇 번의 병원행이 있었지만 무사히 아픔의 터널을 지나 벚꽃이 만발한 4월의 뜰앞에 서 있다. 그 두 모녀의 삶이 내내 걸렸지만 그 두 사람 앞에도 또 다른 행복이 있기를 소망하면서...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 늘 편안하고 즐거운 일들로만 꾸며지는 인생은 드물다. 몇이 모이면 암환자 한 사람쯤은 있었고, 큰 수술을 하지 않은 사람은 몇 없다. 그렇게 아픔을 이겨내고 치료하고 회복하면서 살아내는 것이 오늘날의 인생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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