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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y 25. 2024

반찬 만들며 추억여행 갑니다

올방개묵, 묵은지볶음,  머위대나물볶음

가는 곳마다 예쁜 꽃들이 만개하고 푸르른 잎들은 그늘을 만들어 줄 만큼 넓어졌습니다. 하늘은 시리도록 맑고 햇살도 따사로운 주말에 도시락을 싸들고 손자들과 소풍을 다녀왔어요. 있는 재료들로 김밥을 싸고, 햄버거도 사고, 꼬맹이들이 좋아하는 치킨까지 주문하여 바리바리 싸들고 가까운 수목원에 갔습니다. 간식에 음료수, 과일, 물까지 준비했으 줄줄이 손에 들고 멀리까지 갈 수가 없었어요. 입구 쪽에 있는 아름드리나무들이 만들어낸 그늘진 데크에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았습니다. 이미 주문해서 기다리고 받고 하는 사이에 배가 고파졌으니 꿀맛이 따로 없었지요.


왕복 2시간 거리 국민학교를 걸어서 다니던 시절, 소풍도 한나절이나 걸어서 갔습니다. 용봉사 사찰이나 수덕사가 단골장소였는데 도시락은 어머니께서 싸주신 우렁김밥이었지요. 어려웠던 시절 속재료도 변변치 않았던지 논에서 잡은 우렁살을 바짝 조려서 그 시절엔 귀했던 김에 돌돌 말아주시면 한나절이 지나도 맛이 변하지도 않고 쫀득쫀득 맛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모내기가 시작되었지만 한 달쯤 후면 파릇파릇한 모들 사이로 우렁이들도 나들이를 나오겠지요. 어른들의 지혜는 대단했어요. 어찌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요. 이번에는 한정식 단골반찬 중에서 올방개묵과 묵은지볶음, 머위대나물볶음을 하면서 추억의 산책도 함께 해보겠습니다.




올방개 묵가루를 1컵 준비했습니다. 올뱅개 묵가루는 마트에도 있지만 사찰 앞이나 관광지입구 나물 파는 곳에 가면 구할 수 있어요.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수덕사에 들렸다가 1 봉지 사들고 왔습니다. 부모님이 계실 적에는 가끔씩 수덕사 앞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곤 했어요. 더덕산채정식을 주문하면 온갖 반찬들이 한상 가득 차려져 나오고 부드러운 반찬들을 어머니 밥 위에 올려드리며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식사가 끝나면 수덕사를 돌며 소화시킨다고 아버지 어머니 팔짱을 끼고 걸었었는데 그때가 그립네요.


묵을 만들 건데요. 올방개묵가루 종이컵 한 컵이 계량컵으로도 1컵이 나오네요. 묵을 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한꺼번에 묵가루와 물을 넣고 서서히 저어가며 끓이는 방법과 두 번째는 물 2컵에 묵가루를 풀어놓고, 물 3컵이 냄비에서 끓으면 풀어놓은 묵가루 물을 넣어 끓여주는 방식입니다. 김치 할 때 들어가는 밀가루풀을 쑤는 방법과 같은 거예요. 다만 더 찐덕하게 끓이는 거죠.


시간이 단축되는 두 번째로 할 건데요. 대신에 합체되는 순간에 바로 몽글몽글 뭉쳐지기 때문에 실리콘 주걱으로 재빠르게 풀어주며 바닥에 들러붙지 않도록 부지런히 저어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바닥에서 탈 수도 있으니 중간불에서 저어주며 농도를 확인합니다. 계속 주르륵~도 아니고 그렇다고 뭉텅이로 흘러서도 안되고 흐르는 속도가 주르륵 뚝뚝 늘어지면 농도가 맞는 거예요. 참 글로 설명하려니 쉽지 않네요. 중간에 너무 되직해물을 반컵씩 2번이나 추가했어요.  6컵 기억해 주세요.


이제 농도가 맞는다 싶으면 꽃소금 반스푼과 식용유 반스푼을 넣어 저어주다 불을 고 1~2분 뚜껑 닫고 뜸 들여 주세요. 시간은 총 10분 내외정도 걸린 것 같은데 급해서 시간도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네요. 바로 담아줄 건데요. 씻어서 물기가 남아있는 유리통에 후루룩 부어주고 실리콘주걱으로 싹싹 훑어 내려가며 담아주면 끝입니다. 물기가 좀 있어야 그릇에 달라붙지 않고 묵이 굳어도 잘 떨어져요. 계절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서너 시간 후 굳어져서 탱글탱글하니 간도 맞고 비주얼도 괜찮네요. 묵 쑤기가 어려우시다면 가끔 마트에서 사다 드셔도 괜찮아요. 다들 바쁘게 열심히 사느라 힘들잖아요. 저도 어느 때는 묽게 쑤어지고, 되게도 쑤어지고 그래요. 중요한 것은 쑤어가며 물양을 추가하더라도 미리 묽게 잡지 않으시면 잘할 수 있어요 


이제 묵을 쑤었으니 맛있게 해서 먹어야겠지요. 먹기 좋게 썰어 양념간장에 찍어먹거나  위에 올려서 먹기도 하지만 오늘은 김가루를 올려 무쳐먹었어요. 탱글탱글 잘 굳은 묵을 채 썰어 주고 그 위에 김가루를 올리고 소금 아주 조금, 참기름과 깨소금을 올려주면 끝입니다. 드실 때 바로 섞어서 드시면 보들보들하니 참 맛있어요. 다음날 손자들이 참기름과 깨소금만 들어간 양념간장에 콕콕 찍어먹으며 맛있다고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니 세상이 온통 아름답게만 보였답니다.




봄이 지날 무렵 도시락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면 어머니께서 싸주시던 묵은지볶음이 생각나네요. 재작년 가을에 담근 묵은지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봄김치를 이것저것 많이 담갔더니 2대의 김치냉장고가 비좁기만 합니다. 더 두었다가는 군내가 날 수도 있어 한정식집에서 먹었던 말랑하니 감칠맛이 나던 김치찜인지 볶음인지를 제식대로 해볼게요. 묵은지 2쪽의 양념을 모두 털어내고 깨끗이 씻어주었어요. 대가리는 잘라내고 반을 자른 뒤 손으로 먹기 좋게 쭉쭉 찢어서 냄비에 넣고 거의 자작할 정도로 물을 넉넉하게 부어줍니다. 여기에 올리브유 2스푼, 멸치액젓 1스푼, 간장 1스푼, 양파 2개를 반씩 잘라 넣고, 마늘도 2스푼, 육수팩 하나를 넣고 중불로 30분 이상 끓여줍니다.


물이 거의 졸아들었을 때 양파와 육수팩은 건져내고 간을 보니 뭔가 부족하여 올리고당 1스푼과 들기름 2스푼. 들깻가루 2스푼을 넣고 잠시 끓여준 후 통깨로 마무리했어요. 마지막 간을 보면서 각자 입맛에 맞게 소금이나 설탕으로 조절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요. 액젓과 육수팩을 넣었는데 좀 더 맛있게 하려면 처음부터 육수를 내서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볶아서 먹던 것보다 시간이 걸렸지만 뭉근하게 졸여서인지 양념맛이 듬뿍 배어 훨씬 맛있었습니다. 김장김치가 있다면 한 번쯤 해 먹는 것도 좋을 듯싶어요.




지금은 새로 지어져 흔적도 없지만 친정 초가집 장독대가 있는 꽤 넓은 뒤란에는 계절 따라 채송화, 봉숭아, 백합, 수국이 소담스럽게 피어나곤 했습니다. 또 그 옆으로 조금 언덕진 담장아래에 해년마다 머위대가 쑥쑥 자라나곤 했지요. 철없던 시절 넓은 잎을 따서 들고 다니며 우산놀이를 하곤 했었는데 이리 귀한 식재료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어쨌든 결혼하고 시어머니께서 해주시던 머위대나물볶음을 해볼게요.


연하디 연한 머위대 600g을 삶기 좋게 적당히 잘라 끓는 물에 천일염 1스푼을 넣고 5분간만 삶아줍니다. 파릇하게 잘 삶아진 머위대는 겉껍질을 벗겨내고 5~6cm 길이로 잘라 반을 갈라줍니다. 그래야 양념 간도 잘 배이고 먹기도 좋겠지요. 먼저 팬에 식용유를 1스푼 두르고 다진  마늘과 양파를 볶아줍니다. 이어서 반을 갈라서 씻어놓은 머위대를 넣고 볶아주다 간장 4스푼과 올리고당 1스푼을 넣어 간이 배도록 볶아주다 간장색으로 잘 배어들면 들기름 1스푼과 고춧가루 1스푼을 넣어 골고루 볶아줍니다. 맛을 보면서 간을 맞춰주는데 약간 싱거워 소금 1꼬집 더 넣고 썰어놓은 파와 깨소금을 넣고 마무리했습니다. 대부분 들깨가루를 넣어서 하는데 이렇게 고춧가루를 넣어서 해도 매콤 아삭하니 맛이 있어요. 머위대가 질겨지기 전에 꼭 해서 드셔보세요.




여름이 되면 강으로 바다로 휴가를 갔습니다. 언제나 트렁크가 미어지도록 온갖 것들을 한가득 싣고 달려가곤 했지요. 늘 4형제가족 모두를 위해 텐트에 식탁까지 들고 다녔습니다. 인원이 많다 보니 사 먹을 엄두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매끼를 해 먹어야 했지요. 그래도 무엇을 해서 먹어도 맛있고 불편해도 그러려니 하며 땡볕에도 불평 없이 다녀오곤 했는데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이제는 그마저도 추억이 되어갑니다. 아이들 기억 속에는 어찌 남겨졌을지 몰라도 휴가인지 고행길인지 다녀오고 나면 더 녹초가 되었던 것 같아요. 요즘 캠핑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이제 깨끗하고 시원한 리조트에서 우리 식구들만 오붓하게 밥을 먹고 쾌적한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지금이 참 좋습니다.


소나무밭 아래서 부쳐먹던 고소한 해물파전, 한솥단지 가득 끓여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씨에 온몸에서 육수가락 왕창 뽑으며 먹던 얼큰한 부대찌개, 있는 재료들 다 때려 넣고 둘둘 말아서 먹던 김밥, 미리 준비해 간 육수재료에 수제비반죽을 얇게 펴서 떼어 넣고 푹 끓여 동서들과 땀 삐질삐질 흘리며 먹던 수제비, 지나고 나니 이 모두가 아련한 추억이 되어갑니다. 이제 더 이상 매운 연기로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고기를 굽지 않아도 됩니다. 시원한 식당에서 주문하면 다 구워주고, 쾌적한 환경에서 느긋하게 담소하며 먹어도 되는 것을 왜 그랬을까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래도 후회하진 않아요. 그때가 있어서 지금의 편안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니까요. 힘들었던 시간들이었지만 결국은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남겨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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