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서울에서 낯설고 물선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남들은 아이들 교육을 위해 서울로 서울로 가는 판국에 중3, 중1이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를 했지요. 늘결혼당시 중2였던 막내시동생만 결혼시키면 내 할 일은 다 했으니 미련 없이서울을 떠나자고약속했었거든요. 그 준비로 한 푼 두 푼 억척스럽게 모아 허름한 주택에서 꿈에 그리던 아파트도 분양받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야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매일 몇 시간씩을 출퇴근하며 고생했을 가장의 고충을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었답니다.
맏이로서의 책임도 다했고, 공부야 어디를 가든 본인이 열심히 하면 원하는 대학도 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만을 가지고 이사를 했습니다. 남편은 직장이 가까워져서 편해졌고, 더 이상 새벽밥을 안 해도 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지요. 더구나 힘들게 다니던 직장도 정리하고 왔기에 새 아파트에서 더 이상 종종거리며 바쁘게 살지 않아도 되기에 잠시지만 팔 자 좋은 사모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가까이에 사는 그 친구들 어머니들과 자연스럽게 교류를 하며 격의 없이 서로의 집을 오가곤 했지요.
어느 날 그중에 입담이 좋으신 한분이 요리강좌가 있다며 집으로 초대를 해서 별생각 없이 갔는데 냄비를 판매하는 자리였습니다. 아뿔싸 그런 자리인 줄 알았으면 가지 않았을 텐데. 그 냄비에 어찌나 요리를 맛있게 해서 계속 주시는지 그냥 올 수가 없었답니다. 겨우 빚 없이 아파트 마련해서 왔는데 그 값비싼 냄비를 산다 할 수도 없고 눈치를 보는데 어떻게든 팔아야 하는지 10개월 할부로 주겠다며 사정하니 공짜음식 먹고 마음 약해진 이 사람 들고 올 수밖에요. 그렇게 생전 처음 값나가는 스텐냄비가 할부로 우리 집에 입성하게 되었답니다. 그때 배운 요리를 오늘 그 스텐냄비에 해 보려고 합니다.
지난주에 했던 콩나물볶음에 이어 그 스텐냄비에 콩나물이 들어가는 다른 반찬 필요 없는 진짜 요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몇 년 전까지도 가끔씩 해 먹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해본 적이 없어 기억을 더듬어 생각나는 양념들 모두 넣고 콩나물 해물찜을 만들 건데요. 집에 있는 재료에 오만디만 사 와서 간단하게 해 볼게요. 지난번에 오징어국을 끓여 먹고 남은 오징어 한 마리와 오만디(미더덕이 없어 오만디로 대체했어요), 냉동실에 있던 새우 몇 마리와 전복 5마리, 말린 홍합에 미나리 한 줌을 준비했어요. 다듬은 오동통한 찜용 콩나물 300g(일반콩나물도 무방)과 채썬양파 반개, 마늘 2스푼, 대파도 필요하겠지요. 마지막으로 감자전분이 필요합니다.
이 요리는 바닥이 두꺼운 스텐냄비로 뚜껑을 닫은 채 할 거예요. 맨 밑에 콩나물을 다듬고 씻어서 깔고 그 위에 먹기 좋게 썰은 오징어와 다듬어 씻은 새우, 전복등 해산물을 모두 올리고 양파, 대파와 미나리를 7~8cm 길이로 잘라 올려줍니다. 이제 양념장을 만들어 볼게요. 양조간장 2스푼, 멸치액젓 1스푼, 꽃소금 반스푼, 간 마늘 2스푼, 생강 한 꼬집, 맛술 1스푼, 고춧가루 2스푼, 올리고당 1스푼을 섞어 위에 뿌려준 후 뚜껑을 닫고 불을 켭니다. 고춧가루는 맵찔이라 항상 적게 넣으니 취향 따라 가감해 주세요. 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10분 정도 후에 불을 줄이고 뚜껑을 열어 섞어주며 간을 봅니다. 간이 적당하다면 전분 1스푼 반을 넣어주면 야채와 해산물에서 나온 물기도 줄어들고 참기름과 후추, 통깨로 마무리하면 근사한 콩나물해물찜요리가금세 완성이됩니다.
계란이 두 판에 팔천 원대, 거의 한판값이네요. 사야지요. 한판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한판은 살랑살랑 씻어 물 조금 넣고 식초도 한 스푼 넣어 삶아줍니다. 10분 정도 삶다 불을 줄이고 5분 정도 더 삶아준 후에 5분 정도 뜸 들였다가 꺼내어 찬물샤워 해줍니다. 뾰족하지 않은 부분을 톡톡 두드려 까주니 스르륵 잘 벗겨집니다. 깨끗이 씻어 냄비사이즈에 맞게 26개를 담아 양조간장과 재래간장을 넣고 설탕 3스푼, 물도 2컵을 붓고 조림에 들어갑니다. 10분 정도 더 조려주다 양파 1개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다시마도 한 장 넣어 줍니다. 10분 정도 후 다시마는 꺼내고 양파는 조리다 보면 물러져 없어져 버리니 그대로 두셔도 괜찮고 꺼내셔도 됩니다. 다시 10분을 더 졸이다 간을 맞춰주는데 올리고당만 추가해 5분 더 끓여주니 색도 적당하고 계란조림이 맛있게 완성되었습니다. 드실 때는 반으로 잘라서 쪽파가 있음 쫑쫑 썰어 올려주시고 통깨도 솔솔 뿌린 후 조림간장을 떠서 위에 뿌려드시면 더 맛있겠지요.
골뱅이무침하면 왠지 허름한 주점에 앉아 찌그러진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잔을 앞에 두고 푸짐하게 소면과 함께 한 젓가락 감아올려 입안 가득 넣어야 제맛일 것 같지 않나요. 하지만 모임에 나갔다가 추가로 시킨 골뱅이무침은 재미없어 보이겠지만 술이 아닌 물 잔 앞에 놓인 방금 무친 양념이 싸라 있는 먹음직스러운 한 그릇이었습니다. 술을 못하기에 먼저 골뱅이 한 점을 야채에 올려 먹어보았어요. 새콤 달콤 매콤한맛이 그만입니다. 나 혼자만 먹기에는 왠지 미안하더라고요. 골뱅이 3 통과 필요한 야채들을 사들고 집에 왔습니다.
자연산 골뱅이 1통을 따서 먹기 좋게 잘라주었어요. 오이 반 개와 깻잎 10장. 양파 4분의 1, 당근, 파, 미나리 한 줌도 썰어서 준비했습니다. 이제 양념을 시작해 볼게요. 고춧가루 1스푼 반, 설탕 1스푼. 소금 반스푼, 식초 1스푼 반, 골뱅이국물 2스푼을 섞어 골뱅이와 야채들을 몽땅 버무려 줍니다(취향에 따라 양념을 가감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참기름과 통깨를 넣어 골고루 버무려주면 완성입니다. 소면도 한 줌 삶아서 접시에 나란히 올려 먹기 전에 바로 비벼서 드시면 새콤 달콤 매콤 정말 끝내줍니다.
이렇게 세 가지 반찬을 하면서 또 이십여 년 전의 기억들을 소환하며 잠시 미소 지어 보네요. 늘 시어머니께 배운 찌개와 국만 끓여 먹다가 해물찜이라니 신세계였지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외식은 일 년에 한두 번 기념일에 동네 경양식집 말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결혼할 때는 그릇세트만 사들고 왔기에 어머니께서 쓰시던 허름한 냄비들 뿐이었지요. 그러하니 그 묵직한 냄비를 한동안 잘 써먹었는데 이제 아이들도 결혼해서 떠나고 둘이 되니 쓸 일이 많지 않아 저 구석에 모셔져 있었지요.
물론 나의 희망대로 아이들 모두 서울로 대학을 갔고 맏이인 딸은 간호학을 전공하여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공무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아들도 졸업 후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며느리가 공사에 있어 어쩔 수 없이 거리문제로 이직에 성공하여 잘 살고 있고요. 세상일은 참 모르지요. 물론 그 과정에서 어려운 일들도 수없이 많았지만 잘 이겨내 준 아이들에게 항상 고마워요. 돌아보면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공부한다고 늘 바빴던 엄마, 그 이유로 아이들에게 소홀하지는 않았을까 왜 이제야 더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지요.
지난 세월이야 이제 되돌릴 순 없으니 어느 때라도 오면 반가이 맞아주며 맛있는 밥도 해주고, 좋아하는 반찬도 만들어서 싸주곤 합니다. 물론 가까이에 사는 딸은 엄마덕에 호강(?)을 하는 중이지 만요. 그래서 손자들을 위해 반찬을 하고 돌봐주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아요. 어쩌면 그때의 미안함을 지금에서야 갚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냄비하나로 많은 생각들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보았네요. 많은 어머니들도 같은 마음이시려나요.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은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을까요.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더없이 사랑스러운 것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