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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May 18. 2024

눈으로 배운 시어머니의 손맛

오징어찌개, 명란찌개, 동태찌개

오늘도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합니다. 메인메뉴인 찌개를 끓이며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어머니께서 하시던 모습을요. 정식으로 이래라저래라 하신 적은 없었음에도 늘 하던 대로 양념을 넣습니다. 레시피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때그때 양에 따라 적당히 넣고, 있는 식재료들을 활용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어요. 이 모든 근원에는 시어머니의 소리 없는 가르침이 있었다는 것을요. 친정에서는 중학교를 마치고 외지로 나왔으니, 결혼 후 40여 년의 세월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결혼 후 밥 하는 것부터 반찬은 물론이요. 국과 찌개를 끓이고 각종 요리를 어머니께서 하시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배웠습니다. 그동안 써 온 글들을 다시 읽어보며 알게 되었지요. 어느 대목에 늘 쓰여있는 글. "시어머니께서 하시던 대로"


맞아요. 그랬어요.

그럼에도 나 혼자 하다 보니 하는 줄 알았어요. 시어머니께서 뚝딱 내시는 모습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보고 배웠으면서 미처 그 부분까지 생각지 못했어요. 왜 이 당연한 일마저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요. 어머니께서는 이 무척 빠르셨어요. 순식간에 다듬고 썰어 금세 보글보글 끓여 한상을 차려내곤 하셨지요. 그럼에도 느리고 칼질도 못하던 며느리를  칭찬해 주시곤 하셨지요. "ㅇㅇ에미는 손끝 야무져서 금방도 잘 차려낸다" 하시면서요.


98세가 되신 시어머니께서는 7년째 요양원에 계십니다. 결혼과 동시에 환갑 전인 시어머니, 어린 시동생들과 한집에서 살게 되었지요. 식구는 어느 때는 여섯이 되고 어느 때는 일곱이 되기도 했습니다. 군에 다녀오기도 하고, 조카가 와서 보태기도 하고, 불안정한 결혼생활로 봇다리 싸들고 자주 드나드는 동갑내기 시누이도 있었지요. 그 많은 식구들의 식사를 위해 매일 시장을 다녀야 했습니다. 무엇을 사야 온 식구가 잘 먹을 수 있을까. 지갑은 얇아도 어떻게 하면 끼니를 모자람 없이 채워줄  있을까. 늘 고민을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시장을 한가득 봐오면 옆에서 다듬고 썰어드리기 바쁘게 대충대충 무쳐내고, 볶아내고 순식간에 끓여내시는 것 같아맛은 그만이었습니다. 같이 김치를 담그고, 반찬을 만들고, 몇십 년을 그렇게 살아왔지요. 그럼에도 그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더라고요. 이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앞으로 모르고 살았을지도요. "정짓간에서 워 내는 글꽃"은 어쩌면 어머니께 드리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머니께서 정신이 맑으시던 시절에 자주 끓여주시던 찌개를 준비했습니다. 먼저 오징어찌개를 만들 건데요. 이 오징어찌개는 결혼을 앞두고 시어머니께서 집으로 초대해 주셨던 날 처음으로 끓여주신 음식입니다. 어찌나 맛있던지 혼자 반냄비는 먹었던 것 같아요. 퇴근하고 들려 따스한 방에서 저녁까지 배부르게 먹었으니 잠이 쏟아졌겠지요. 그런 저를 자고 가라고 한사코 잡으셔서 결혼도 전에 시어머니와 한방에서 어머니께서 내어주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자고 왔다 아닙니까. 생각해 보면 철이 없었다 싶어 웃음이 나곤 합니다. 그래도 그날밤 미동도 없이 곱게 자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들었다 하시더군요.


오징어 2마리를 안쪽에 칼집을 넣어 한입크기로 먹기 좋게 잘라주고, 양파 1개와 무 한쪽, 호박도 나박나박 썰어줍니다. 적당한 찌개냄비에 준비한 오징어와 마늘 1스푼, 고춧가루 1스푼, 간장 1스푼, 멸치액젓 1스푼, 양파를 넣고, 식용유 1스푼 둘러 들들 볶다 무까지 넣어 볶아줍니다. 어느 정도 숨이 죽었다 싶어 쌀뜨물 600ml를 붓고 끓여주었어요. 20분 정도 끓이면 국물이 진해지면서 맛있어지고 있어요. 지금 바로 호박도 넣어 주고, 후추도 톡톡, 대파 대신 실파가 있어 넣었습니다. 한소끔  끓여주맛있는 오징어찌개 완성입니다.


어머니께서는 가끔 두부도 넣어 주셨는데 오늘은 이대로 먹을 거예요. 약간 매콤하니 오징어와 야채 맛이 푹 우러나서 말랑 쫀득하니 그때 그 맛입니다. 한 대접 덜어주었더니 더 드시네요. 내편도 나처럼 어머니 생각이 났나 봐요. 어머니께서도 참 좋아하셨거든요. 이 찌개 한 대접진지그릇을 싹 비우시고는 맛있게 잘 먹었다고 몇 번이고 말씀하셨지요. 당신이 가르쳐주신 건데도요. 당신께 배운 건데도요.




짭조름한 명란을 인터넷으로 구매했습니다. 좋아하는 건 알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가격이 배이상으로 오르다 보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어요. 배송된 명란은 값이 좀 저렴해서인지 먹던 것처럼 사이즈가 크지는 않지만 싱싱하니 괜찮아 보였어요. 바로 소분하여 냉동시켜 주고 한번 먹을 양을 양념하여 작은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였습니다. 일명 내 맘대로 명란찌개 되시겠습니다. 그럼 조리과정을 따라가 볼까요.


맨 먼저 작은 사이즈의 뚝배기 바닥에 양파 반 개를 채 썰어 깔아줍니다. 사이즈가 작은 명란 5개를 너무 풀어지지 않도록 한두 번 정도만 잘라 양파 위에 올려줍니다. 양념을 만들어 볼게요. 쪽파 반 줌을 1~2cm 길이로 썰어주고 마늘 5알을 채 썰거나 대충 다져줍니다. 여기에 고춧가루 반 스푼과 들기름 반 스푼. 맛술 1스푼, 후추 솔솔 뿌려준 후 물 3분의 2컵을 명란양념 위에 뿌려줍니다. 간단하지요. 명란이 짭조름하여 따로 간을 할 필요는 없고요. 오히려 짜다 싶으면 양파를 더 썰어 넣어주면 훨씬 맛있습니다.


이제 끓여줘야겠지요. 중 약불에서 5분 정도만 지나도 보글보글 먹음직스럽게 완성이 됩니다. 좀 더 명란이 컸더라면 통으로 많이 남았을 텐데 많이 부서져 있지만 오히려 밥 위에 올려서 쓱쓱 비벼먹으면 훨씬 더 맛있답니다. 틀니를 하셔서 질긴 음식을 못 드시기에 가끔 해드리면 입맛이 돈다며 잘 드셨지요. 집을 떠나시기 전까지 이 찌개를 해드리면 소식을 하시는 어머니셨지만  남김없이 다 드시곤 하셨답니다.




예전에는 만만한 것이 동태찌개였어요. 그만큼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시장입구 단골생선가게 아주머니께서 탁탁 쳐서 잘라주신 동태를 가져와 보글보글 끓여주면 왜 그렇게 맛있던지요. 요즘은 자주 먹는 편은 아니지만  예전을 생각하며 한 번 끓여보려 합니다. 우선 동태를 사는 것부터 쉽지가 않네요. 좌판에 싱싱하게 깔려있는 튼실한 동태 한 마리를 사 오고 싶었는데 결국 마트 냉동실에 토막 져 있는 동태 한 봉지(1kg)를 사 왔습니다.


적당히 녹은 동태를 완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겉에 비늘도 꼼꼼히 밀어내고 지느러미들도 모두 잘라내고 안에 내장과 검은 얇은 막, 뼈 쪽 핏기까지 모두 정리해 주어야 비린내가 나지 않아요. 어찌나 열심히 씻었는지 실리콘 장갑이 구멍이 났어요. 역시 냉동 봉지라서 그런지 알은 꼴랑 두 조각에 대가리도 실하지 못하여 뺐더니 양이 확 줄었어요.  씻은 동태는 양념을 준비하는 동안 간이 배도록 소금을 반스푼만 뿌려줍니다. 그러면 끓여도 덜 부서지고 약간 간도 배서 맛있겠지요.


재료를 준비해 볼까요. 무를 나박나박 썰어주시고 양파와 대파도 썰어주세요. 냉동실에 있던 바지락과 국물용 꽃게다리, 새우와 쑥갓 한 줌도 준비했습니다. 이제 양념장을 만들 건데요. 고춧가루 1스푼, 고추장 반스푼, 양조간장 1스푼, 멸치액젓 1스푼, 소금 반스푼, 맛술 1스푼, 다진 마늘 1스푼, 생강을 조금 넣어 만들어 주세요. 적당한 냄비에 물을 5컵(1000미리)을 끓여주며 다시마 2조각과 바지락과 꽃게다리를 넣어 국물을 내고 건져냈습니다. 냉동이라 국물만 내고 아웃시켰어요. 이제 먼저 넣고 한소끔 끓이다가 동태와 양파를 넣어 끓여줍니다.


어느 정도 익으면 양념장을 넣고 끓여줄 건데요. 이때 양념장을 넣으며 물 100미리 추가했어요. 그릇에 묻은 양념이 아까워서요.ㅎ 이어 간이 배도록 푹 끓이며 새우와 대파도 넣고 후추를 뿌리고 간을 보시면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파릇한 쑥갓을 올려 부르르 끓여주시면 완성입니다. 간이 적당해서 더 이상 간은 하지 않았지만 각자의 입맛에 맞게 조절하시면 되겠지요. 동태는 번거롭더라도 농수산시장이든 어디든 가셔서 싱싱한 것을 사시길 권합니다. 급한 나머지 집 앞 작은 마트에서 샀던 봉지동태는 좀 그랬어요. 다행히 국물에 정성을 쏟았더니 맛있게는 먹었지만 동태살의 싱싱한 맛이 덜해서 아쉬웠거든요. 한 번 먹고 남은 찌개는 다음날 두부를 넣어 끓여서 더 맛있게 먹었답니다.




이번에는 찌개를 만들며 몇 번이고 울컥했어요. 이제 7년이란 시간이 지났으니 괜찮아질 도 한데 함께 해온 세월이 훨씬 더 많다 보니 쉽지가 않네요. 오히려 더 애잔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자식처럼 보듬어 드리며 우리 그렇게 살아가자고 하지를 않나 혼자 어쩌지 못하고 생각만 많은 시간들입니다. 결혼 후 어려웠던 순간들마다 참 많이 의지하고 서로 위해주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연세 드시며 제게는 마음이 무거워지고 감당해야만 하는 몫으로만 새겨지며 나도 모르게 함께 했던 지난날들을 덮어버렸습니다.


요즘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내게 해주신 것들이 얼마나 더 많았는지를요. 지금도 제 눈가에는 죄송함의 눈물이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늦은 때란 없으니 이제라도 마음 다잡고 온마음을 다해 잘해보자 다짐을 해봅니다. 어버이날도 찾아뵙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시렸지만 이렇게라도 얼굴 보며 어머니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추억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며 위안을 삼습니다. 비록 함께 하진 못해도 뵙고 싶으면 달려갈 수 있고, 만지고, 말을 할 수 있으니 더 큰 욕심은 갖지 않으려고요. 그 시간이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마음만이라도 혼자 외롭지 않으시도록 어머니와의 기억들로 채우려고요. 그간 함께 해온 세월들이 더욱더 좋은 기억들로 남겨질 수 있도록 오래도록 예쁘게 돌아보는 시간들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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