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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Aug 07. 2024

작품이 되는 내 삶이 되기를...

2박 3일간의 식도락 여행(7.29~31)

대학병원에 예약을 하고 아무 말 없이 차에 타고 출발했다. 어차피 늦어졌는데 점심이나 먹고 떠나기로 했다. 서로 이렇다 할  한마디 없이 일주일 전에 이 자리에서 먹었던 갈비탕 한 그릇을 비웠다. 지금 이 순간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냥, 사는 거지.  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더없이 아름답고 한가롭기만 하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두둥실 아니 병원 사진에서 보았던 내 폐 속의 염증인지 뭔지 모를 것들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 저렇게 날아다니다 다 없어져 버렸으면.


7월 초에 폐시티를 포함한 건강검진을 했다. 3주일 후 날아든 결과지에는 온갖 기능들이 성치 못하다는 숫자들로 가득했다. 그중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폐렴판정. 부리나케 대학병원에 가보려 했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의료사태로 인해 빠른 예약이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조카가 있는 중소형병원에 연락하니 일사천리로 예약을 해주었다. 일주일간 약을 먹어보고 결과를 보자는 의사의 지시대로 한 끼도 빼지 않고 열심히 먹었다. 그럼에도 엑스레이상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소견이다.


1년 전에 코로나로 인해 폐렴판정을 받고 찍은 사진들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우여곡절 끝에 호흡기내시경이 가능한 대학병원으로 급하게 연계예약이 되었다. 며칠 만에 중병환자가 된 것 같지만 크게 이럴 다할 기분도 느낄 새 없이 폐 속의 뭔지 모를 것들을 끌어안고 여름휴가로 예약된 무주숙소를 향해 달려온 것이다. 인생은 이렇게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하는가 보다. 한 번뿐인 인생 후회 없이 잘 살아내고 싶었다. 눈감는 날까지 잠시 머무는 소풍 같은 이 길이 종국에는 하나의 작품처럼 멋진 삶이 되도록 그렇게 그려내고 싶었다. 지나친 욕심이었을까. 그래도 지금 당장은 살아있으니 하루하루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며 후회 없는 이 되도록 휴가마음껏 즐겨보기로 했다.




덕유산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다. 숙소의 객실은 만실이라지만 더위 탓인지 가족단위의 몇 팀들이 있을 뿐 텅 빈 곤돌라만 바람에 흔들리며 오르내렸다. 중턱에 이르렀을까 냉한 기운이 더해지며 정상에 오르자 한기마저 느껴졌다. 운무가 눈앞에서 흩어지며 찬기운이 온몸을 감싸는데 이것이 바로 피서지 싶었다. 여름엔 덕유산이다. 땀은커녕 서늘해져 가는 늦가을 날씨처럼 스산함마저 느껴지는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가파란 계단길이 있기는 하지만 곳곳에 고운 꽃들이 맞아주고 운무가 흐르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풍경들로 힘에 겨울 시간이 없다. 정상인 향적봉(1514)까지는 왕복 30여분이면 충분하다.


덕유산 아래의 전경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흐르는 운무에 따라 멋진 그림들을 그려내는 산봉우리의 자태에 넋이 빠져 하마터면 5시 30분 하행선 마지막 곤돌라를 놓칠 뻔했다. 늦어도 4시 전에는 곤돌라매표소에 도착하여 발권을 해야만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서 향적봉을 다녀오면서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시간이 임박하여 정신없이 올라가느라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곤돌라탑승장 입구의 해바라기와 황하코스모스밭에서 한여름임을 실감했다.




커튼을 밀어내자 구름에 걸린 산이 통째로 달려든다. 객실은 리모델링을 했는지 에어컨도 신형에 깔끔하고 호텔 부럽지 않다. 늦은 크인에도 불구하고 풍경 좋은 객실을 배정해 준 직원이 이리 고마울 수가. 어차피 벌어진 일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지. 완전히 떨쳐낼 수 없는 불안감을 잠재우 시는 돌아올 수 없는 오늘을 따라 구름같이 흘러가 보기로 했다. 애써 어찌해 본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의 여정 속에서  훗날 아름다웠던 그 순간들을 떠올리며 살며시 미소 지을 수 있는 하늘빛 같은 그림을 그려야지. 아직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얼른 씻고 식을 먹으러 가기 위해 준비해 온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샌들을 신고 카펫이 깔려있는 2층으로 올라가자 고풍스러운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은 한식으로 차돌된장찌개와 남편이 좋아하는 고등어를 주문했다. 특별한 찬은 없지만 정갈하게 차려진 반찬들이 하나같이 간도 적당하고 맛이 있었다. 마침 그 시간에 밖에서는 요즘 많이 뜨고 있는 마술공연이 한창이라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특별한 시간을 함께 했다. 물론 손을 번쩍 들고 카드게임 참여도 했다.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내 마음대로 즐기는 이것이 휴가이지 않을까. 밤이 깊어질수록 더 서늘해져 숙소로 돌아와 에어컨을 끄고 잤다. 딸이 준 카드로 숙소비도 결제하고 조식도 결제했다. 하지만 어제저녁이 무색하게 아침은 예상을 빗나갔다. 아주 근사한 조식을 바란 것도 아니고 신선한 샐러드와 따끈한 수프를 기대했는데 빵과 계란푸라이등뿐이었다. 더구나 남편이 시킨 소고기해장국에서는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 나와서 질겁을 했다. 이래저래 숙소와 장소는 훌륭했지만 조식으로 인해 아쉬움이 컸다.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고 무주에 왔으니  무주구천동계곡을 가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계곡에는 피서객이 많지 않다. 넓은 무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발 담글 장소를 물색했다. 대부분 상가들 앞의 나무그늘에는 어김없이 상인들의 돗자리들이 펼쳐져 있고, 주차도 식사를 하는 사람에 한해 가능한 이 시스템에 또 혼자 발끈해졌다. 엄연히 개인소유가 아님에도 이건 무슨 경우일까?  정비된 맑은 계곡과 담당자들이 나와 안전을 위해 애쓰는 것에 비해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이었다. 시원한 나무 그늘을 피서객들에게 모두 돌려주고 자유롭게 음식을 주문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그나마 계곡아래에서는 마음대로 발을 담그고 즐길 수 있어 다행이라 해야겠다. 그것마저 내 구역이라고 막았다면 안 좋은 기억으로만 남을 뻔했다. 잠시 발을 담그고 놀 수 있을 정도는 되었지만 물이 너무 차가워 아이들 몇이 놀고 있었지만 물속으로 몸을 담그기에는 무리다. 11시가 넘어서야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고 물도 따스해졌는지 본격적인 물놀이로 계곡이 부산해졌다. 그만큼 공기도 신선하고 시원하고 여름휴가지로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길거리에서 삶은 옥수수도 사 먹고 가져간 복숭아도 먹고 산책도 하다 들어올 때 찜해둔 국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사장님 말씀이 올해 처음으로 이렇게 피서객이 없다 하셨다. 휴가를 와도 먹을 것을 근처 마트에서 사다 먹고 숙소에서 쉬는지 밖을 잘 나오지 않는다 한다.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많이들 어려운 것 같다고 하셨다. 또한 타지에 와서 년째 장사 중인데 기존 상인들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셨다.




이번 여행은 잔여객실이 남아있는 곳을 예약하다 보니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병원진료문제도 그렇고 뚜렷한 계획 없이 떠나다 보니 준비도 허술하기만 했다. 결국 스틱도 배낭도 챙겨 오지 못해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고 하동의 숙소로 떠났지만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 되었다. 가파른 언덕길에 자리 잡은 숙소는 엔틱 그 자체였다. 아직 리모델링이 이루어지지 않아 내부 시설들이 허름했고 쾌적함이 부족해 아쉬웠다. 어차피 하룻밤이니 서둘러 짐을 풀고 이곳에서의 일정을 시작했다. 애매한 도착시간으로 이 더위에 쌍계사를 갔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무주에서와 달리 걷는 동안 땀은 비 오듯 하는데 쌍계사마저 소송과 공사로 인해 어수선하여 서둘러 나와 가까운 화개장터를 갔다. 그래도 하동에 왔는데 재첩국은 먹고 가야지 싶어 시장 안에서 사람이 제법 있는 한 식당에 들어갔다.


6시경에 들어가 주문했는데 하나둘 손님들이 빠져나가다 보니 우리 둘 뿐이다. 이맘때면 상인들이 문을 닫고 들어간다 하니 요즘시기에 화개장터에 가려면 6시 전에 가야 한다. 섬진강가에 왔으니 먹어봐야지 싶어 주문한 재첩무침과 재첩국등푸짐하게 나왔다. 묵무침과 빙어튀김도 나오고 반찬들이 한상 가득 나왔지만 시간도 그렇고 너무 많아 다 먹지도 못하고 나왔다. 다음날 점심에 먹은 다슬기수제비와 너무도 비교가 되어 아쉽기도 했다. 천편일률적으로 식당마다 같은 음식을 내놓기보다 그 식당만의 정갈함과 맛이 느껴지는 음식을 내놓으면 남김없이 먹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나로마트에 들러 아침거리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늦게 체크인을 한 탓에 1부 조식이 마감되고 2부는 9시 반부터라니 일정에 차질이 생겨 어쩔 수 없이 마트에 들러 간단한 식사거리를 사들고 온 것이다. 레인지에 돌리고 어쩌고 하라는데 식기류가 있으니 냄비에 넣고 끓여서 사 온 김치와 단무지로도 훌륭한 아침식사가 되었다. 다만 오래된 인덕션이라 끓이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플라스틱용기가 아닌 그릇에 담아 먹을 수 있어서 흡족한 한 끼였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이러하니 음식점들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고 마지막날 일정을 시작했다. 저녁 내내 부실한 나를 데리고 어디를 갈까 궁리하더니 사성암을 찾아내었다. 노고단을 가려고 했지만 다음기회로 미루고 도착한 사성암이다. 무주에서 땀을 흘리지 않았기에 달랑 한 개만 챙겨 온 긴팔을 다시 었다.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 이 한여름 땡볕에 그늘도 없는 노고단길을 갔다면 고생 꽤나 했을 것 같다. 깎아지른듯한 절벽과 어우러진 사찰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중국, 태국 부럽지 않은 아찔한 사찰풍광에 감탄을 하며 섬진강과 구례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이곳은 주차장이 협소하여 오늘 같은 비수기에도 마을버스가 운행되므로 참고해야 한다. 그만큼 비수기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종교상관없이 가볼 만한 곳이다. 무교인 나는 어디를 가나 기도를 한다. 성당, 교회, 사찰에 계신 모든 들이 나의 신이다. 다만 나 자신을 가장 믿지만 말이다.


도선굴을 지나 뒤쪽으로 가면 가파른 나무계단이 보인다. 얼마나 열심히 써치를 했는지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맑은 날에는 다도해까지 다 보이는 오산전망대가 있다며 꼬드기는 바람에 따라 올라갔다. 계속된 장마로 뒷길은 음침하고 가파르고 벌레들이 덤벼들어서인지 올라오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언덕길 한쪽에 작은 오산표지판이 서 있고 몇 걸음이 더해지자 전망대가 있었지만 이곳 역시 수리 중이라 다도해는커녕 벌레들 공격에서 벗어나고자 서둘러 내려와 노고단은 못 가더라도 정치령은 가보자고 노선을 정하고 그전에 점심식사 장소를 물색했다.


여행이든 휴가이든 가장 고민되는 것이 매 끼니이다. 더구나 식도락 여행이라 칭했으니 매번 심사숙고해서 결정해도 만족스럽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비의 도움을 빌려 인근 맛집을 검색했다. 지나다 보니 벌써 대기가 많다. 그냥 지나치려다 그래도 아쉬워 다시 돌아갔는데 마침 달랑 2대의 주차공간에 자리가 났다. 이건 먹으라는 계시다. 번호표를 받으니 30분 대기란다. 운 좋게 주차까지 했는데 먹어야지. 이곳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상세하게 적어보고 싶은 곳이다. 우리밀로 만드는 다슬기수제비전문점으로 꽤나 인상 깊었던 음식점으로 여행 중 단연 으뜸이었다.




점심도 맛있게 먹었겠다. 마지막 코스인 정령치를 향해 달렸다. 구불구불 30여분이나 올라가는 길이라 자칫 멀미가 날 수도 있다. 거의 정상쯤에서는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30도 아래의 온도로 내려가며 나름 시원했다. 산속의 향긋한 풀냄새들이 스치며 한여름의 더위를 잠시 잊게 했다. 이미 산악회에서 다녀왔으니 안 가도 된다는 데도 굳이 끌고 올라간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다음에 친구들과 와볼 심산인 것 같았다.  이렇게 2박 3일간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2박 3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큰 여백 없이 알차게 보내고 왔다. 이번여름에는 아들네와 딸네는 바다가 있는 강원도에서 휴가를 보내고 우리는 산으로 왔다. 계속 바다와 계곡, 워터파크를 섭렵하며 신이 난 손주들의 사진이 전송되었다. 같이 가서 아이들을 돌봐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진료결과를 보았을 때 그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휴가를 마치고 와서야 방학인 손자들 돌봄 문제로 병원예약 통보를 했다. 또 자식들 걱정시키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사는 거다. 아프면 치료하고, 약을 먹고, 수술을 해야 한다면 할 것이고, 이 모든 것은 내 뜻이 아니고 어쩌면 받아들여야만 하는 내게 주어 운명이지 않을까. 설령 그것이 운명일지라도 나는 흔들리않을 것이다. 자연이 빚어낸 저 풍경들과 파란 하늘빛이 그려내는 한 폭의 그림들처럼 의미 있는 하루하루가 쌓여 나만의 작품이 되는 그런 삶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어쨌든 편안한 내 집이 제일 좋다.


대학병원을 다녀왔지만 많은 검사들과 영수증들이 있을 뿐 일상은 달라진 것이 없다. 이제껏 모르고도 살았는데 알았으니 잘 치료해 볼 생각이다. 마침 머리 희끗하신 친절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 믿음이 간다. 그렇게 괜찮은 척 강한 척했지만 밤새 뒤척이다 달려간 잔뜩 주눅 들은 환자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여 주셨다. 삶의 색깔은 이리도 다채롭다. 오늘 하루도 마음 따스한 색으로 삶의 한 귀퉁이를 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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