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이불들을 펼치자 이름 모를 벌레들에 사체들이 박제되어 있다. 너무 놀라 기절할 뻔했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다. 밖으로 끌고 나와 한 장 한 장 털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사체들을 보며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 이불을 밀어내지는 못했다. 늦가을 시골밤에 찬기운이 뼛속을 파고드니 차마 푹 덮지는 못하고 살짝 걸치고 잤더랬다.
언제쯤이었을까?
15년 전쯤이려나.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벌레들 사체만큼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셋째 동서가 친구부모님께서 펜션도 운영하시면서 작게 농사도 지으시는데 함께 바람도 쏘일 겸 가자며 초대한 1박 2일 가평여행이었다. 그래도 저녁에는 숯불을 피워서 고기도 구워 먹고, 소시지도 구워 먹으며 나름 여행에 미를 즐겼다.
다음날에는 가평하면 잣이지 않나.
어르신들께서 알려주신 잣나무 아래에서 커다란 잣송이를 주워보는 색다른 체험도 했었다. 커다란 잣송이 안에서 잘 영글어진 잣을 꺼내어 딱딱한 껍데기를 깨뜨리면 잣이 나온다. 얇은 속껍데기까지 살짝 벗기면 뽀얀 잣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고 그 고소함은 역시 일품이었다. 오후에는 작은 텃밭에 있는 풋고추와 고춧잎을 한 아름 따서 들고 왔던 기억이 있다.
이제 연로해지신 부모님께서 제대로 관리도 못하시고 그대로 방치되다 보니, 그런 일이 우리에게 발생한 것이었다. 동서친구도 그렇게까지 되어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베푼 친절이기에, 오히려 뭐라도 더 주려고 하시는 어르신들이 짠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아들집을 떠나 가평에 오니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한참 동안 그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달렸다. 출근하는 며느리는 맛있는 쌀국숫집이 있다고 점심 드시고 가라고 하였지만, 아들내외도 내일 제주도여행을 간다 하니 우리가 눈치껏 방을 빼주기로 했다. 육아휴직 중인 아들이 6월이면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전에 여행을 다녀오기로 한 모양이다.
10시경에 아들집을 나와 상큼한 오전에 날씨를 즐기며 마지막 일정을 향해 달렸다. 설악 IC를 지나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오른쪽에는 청평호가 유유히 흐르고, 왼쪽으로는 아카시아꽃이 곳곳에 피어나 향기를 남기며 스쳐지나고 있었다. 오늘은 이곳 가평에서 마지막날 여행을 마무리해 보기로 하였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우선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열심히 맛집을 찾아보다가 목적지와 가깝고, 후기점수도 괜찮고, 방송에도 나오고 그런대로 먹을만하겠다 싶어 들어갔다.
평일이라 한산하겠지.
극히 지저분하지도 않고.
그런데 손님이 단 사람도 없다.
실패다.
도로 나와야 하나.
순간 물병을 들고 오시는 어르신을 보니 차마 발길을 돌려 나올 수가 없었다.
엉거주춤 의자에 걸치고 앉아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버섯전골을 주문했다. 국물을 한 수저 떠 넣는 순간 브랜드 맛이 난다.
완전 실패다.
이제 와서 어쩌겠나.
반찬이라도 잘 나오려나.
오산이다.
아무리 시골반찬 이라지만 찍어먹을 만한 것이 없다. 웬만해서 음식 가리지 않는 남편이건만 전골만 축내고 반찬들은 거의 그대로인 채 3만 원을 결재하고 나왔다. 주차된 차가 많은 곳에 들어가자는 남편에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무척 후회가 되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먹거리 때문에 희비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별기대를 안 하고 들어갔는데 놀라울 정도로 맛이 있으면 그 여행에 질은 한층 풍요로워지기도 한다. 반대로 오늘처럼 영 아닌 경우 불신이 쌓이고 기분이 별로다. 믿은 내가 잘못이지. 그렇다고 영수증 리뷰에 이상한 글은 절대 쓰지 않는다. 이유야 어떻든 그분들에게는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에 키워드가 없다로만 마무리한다.
그래도 간은 맞는 전골이라도 먹었으니 목적지인 누구나 다 아는 한 번쯤은 가보았을 이름도 아름다운 아침고요수목원에 갔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자 딴에 글이라도 쓰고 있다고 시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 의 꽃
한 상 경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향기로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내 가슴속에 이미
피어있기 때문이다.
꽃보다는 푸른 잎들이 많아진 5월이지만 그래도 모란이 피어있고, 여기저기 수많은 꽃들이 수목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가로이 손을 잡고 산책하듯 거닐며 여행에 마지막날을 보냈다. 사는 게 별거 있나. 좋은 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이렇게 살다 가면 그만이지. 더 욕심내 살일이 무에 그리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