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비둘기 집'이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아마 모르는 분도 있을 것이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메아리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 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봄 햇살이 비처럼 쏟아지던 날이었다. 책 한 권과 폰을 들고 산책길에 나섰다. 어느새 어린 쑥이 올라오고, 냉이가 옹기종기 모여 수다에 열을 올린다. 어두운 땅속에서 긴 겨울을 입 꾹 다문 채 견뎌냈으니, 풀어놓을 이야기가 얼마나 많으랴.
버들강아지도 질세라 연둣빛 봉오리를 부풀리며 봄맞이 행사에 합류했다. 이 행사의 주최자는 바로 오리 부부였다. 여기저기서 참여해 보겠다고 소란스러운 봄날이다. 오리부부는 천변을 따라 막바지 점검을 하느라 짧은 다리에 연기가 날 지경이다.
눈치 없이 나도 끼어들었다. 책 한 권을 들고 봄까치꽃이 핀 풀밭 옆 벤치에 앉았다. 흐르는 물은 말이 없고, 바람은 향기로웠다. 이 봄날의 평화가 속세의 번민과 일상의 고단함을 모두 삼켜버린 듯했다. 과한 봄 햇살로 얼굴에 깨소금이 피어나기 일보직전이다. 일어나 집으로 가려는데 오리 부부가 내 앞길을 막아선다.
"나 건너가야 해, 비켜줄래"
아무리 눈치를 주고 사정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결국 돌다리를 건너지 못했다. 한 블록을 더 가기로 했다.
다정한 한 쌍의 비둘기 부부가 먹이를 쪼아 먹으며 봄날에 푹 빠진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리에 이어 비둘기까지, 내가 그리 만만해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마음에 드는 건지 헷갈린다. 바로 앞까지 다가가 쭈그리고 앉아도 여유만만이다. 요즘 비둘기 속은 알 수가 없다. 세상이 변하니 비둘기도 사람과 맞먹겠다는 것일까. 아니었다. 한 마리 비둘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자세히 보니 한쪽다리가 반절밖에 없었다.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한 발로 몸을 지탱하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나를 피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곁에 있던 다른 비둘기는 그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움직이며 기다려 주었다. 그 조용한 배려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비록 다리 하나가 부족해도, 노래처럼 다정한 그 모습에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며칠 후면 어머니의 세 번째 기일이다. 다정함으로는 우리 부모님이 아마 세상에서 으뜸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어머니는 왜소한 데다 귀도 잘 듣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 앞에서 단 한 번도 재촉하거나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기다려 주고, 다정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챙겨 주시곤 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채 자랐다. 다만 어머니 앞에서는 습관처럼 한 옥타브 높여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두 분이 한 쌍의 비둘기처럼 오래 함께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은 야속했다. 아버지가 떠나신 뒤, 어머니마저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불편한 어머니를 돌봐 드리기 위해 시골집에 내려간 날이었다. 뒤늦게 해 드린 보청기 때문에 귀가 아프다고 하셨다. 이비인후과에서 처음으로 엑스레이를 찍고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한쪽 귀는 고막이 없어 손쓸 수 없고, 다른 한쪽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그날에야 우리는 어머니에게 고막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는 평생 그 이유도 모른 채, 어머니의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며 사셨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이미 떠난 아버지를 마지막까지 애타게 찾았다. 지금쯤은, 저 다정한 비둘기 부부보다 더 깊은 사랑으로 함께 계실 것이다. 어쩌면 비둘기도 우리 부모님처럼, 결핍이 빚어낸 다정함이기에 내 마음속에 더 오래 머무르는지도 모르겠다.
비둘기야, 부디 예쁜 집 짓고 그 다정함 변치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