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아들이 손녀와 함께 와서 놀다가는 바람에 나름 고단했는지 평소보다 늦게 눈이 떠졌다. 일어나야지 싶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중환자실로 저장된 번호임을 확인한 순간 문제가 생겼구나 싶었다. 그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폐상태가 나쁜 엄마 숨소리가 좋지 않으니 면회를 왔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먼저 형제들에게 모두 알리고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만 급할 뿐 손은 그대로다. 정신 차려야지 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당장 위급한 상황은 아니라니 일단 아침을 간단하게 준비하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혹시 며칠이 걸릴지 모르니 머물 동안 필요한 것들을 대충 큰 가방에 구겨 넣다시피 했다. 그 외에는 준비할 것도 필요한 것도 없었다. 엄마 주려고 이것저것 챙겼었는데 이제 아무것도 준비할 것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허전한 것인지 그때서야 알았다.
평일이건만 오늘따라 차는 막히고 마음은 바쁘고 겨우 약속시간에 맞추어 도착하여 pcr검사를 하고 중환자실 앞에서 기다렸다. 다행히 아침보다 상태가 좋아지셔서 면회를 취소할까 했단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의식이 있을 때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대로 진행하게 되었다는 병원 측 설명을 듣고 안도하며 감사했다. 며칠에 한 번씩 중환자실에 엄마가 어떠신지 궁금해 전화드릴 때마다, 언제나 친절하게 자세하게 걱정스럽게 말씀해 주시는 간호사님들이 진심으로 감사하다
오빠와 내가 먼저 열체크를 하고 일회용 가운을 입고 엄마를 만나러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수많은 줄들을 매달고 미동 없이 누워있는 엄마는 잠시 눈을 힘겹게 뜨는가 싶더니, 아주 작은 소리로 아~ 소리만 낼뿐 나머지 소리들은 입속에서 우물거리며 밖으로 내지를 못했다. 아프다는 것인지 아버지를 찾으시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난 엄마의 마음을 어떻게든 읽어드리고 싶어
"많이 아파"
"엄마, 아버지 보고 싶어"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 엄마 손을 정말로 놓아드려야 하나. 아버지가 많이 아프셨을 때 "아버지 이렇게 힘든데 이제 편한 곳으로 가셔도 돼"라고 했던 그 말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으면서도, 난 엄마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퉁퉁 부어올랐지만 따뜻한 엄마 손을 꼭 잡고
"엄마 지금까지 너무 고생 많았어,
이제 아버지 만나러 가도 돼,
그동안 잘 참아줘서 고마워"
했더니 엄마도 내손을 힘주어 잡아주셨다.
멈출 줄 모르는 내 눈물이 허락된 시간도 단 10분.
"엄마 우리 갈게,
또 엄마 보러 올게,
사랑해"
하며 손에서 힘을 뺐더니, 엄마도 스르르 손가락을 힘없이 펼쳤다.
어떻게 해야지.
이제 그만 가도 된다고 했지만 엄마의 그 따뜻한 손을 어떻게 보낼 수가 있을까. 그동안 그렇게 엄마를 보내고 싶지 않아서 마음 아파도 붙잡고 있었는데. 엄마가 그렇게 가고 싶다 해도 아직은 겨울이고 날씨도 춥다고 했었는데. 그 봄마저 다가오고 있으니 난 또 무엇으로 엄마를 붙잡고 있어야 하나. 난 지금도 매일 볼 순 없어도, 며칠에 한 번씩 중환자실에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엄마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데.
엄마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나를 너무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닌지. 엄마가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을 안다면 어떨까. 힘을 내야 한다. 앞으로 남은 시간들, 우리가 엄마를 잊지 않고 비록 간호사님을 통해서 이지만, 안부를 묻고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엄마는 혼자가 아니야, 힘내서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우리가 응원하고 있다고, 그런 우리의 마음이 엄마에게 닿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