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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Nov 21. 2019

오늘도 모성은 자란다

중학생 딸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

 큰아이 유니가 중학교를 입학했다. 중학교는 집 근처 모여있는 세 곳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함께 배정받는다. 새로울 것 없어 보이지만 입학이 주는 긴장감과 설렘이 있다. 교복도 처음 입고 스타킹도 처음 신는다. 아침마다 요령이 없어 올이 나간 스타킹만 여러 개다. 3월은 엄마도 아이도 정신없다.    

 

입학하는 아이들은 학교가 아니면 학원에서라도 이미 얼굴을 익힌 사이임에도 아이는 새로운 곳으로 전학을 간 것처럼 ‘좋은 인상 주기’에 신경썼다. 얼굴은 백탁현상이 짙은 선크림을 바르고 입술에는 틴트를, 앞머리에는 헤어롤을 말고 아침을 먹는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참기도 한다. 하물며 없는 반찬에 주는 만큼 투정없이 먹는 아이에게 때때로 고맙기까지 하다.     




  아이를 낳고 불량 엄마 같은 나의 모습에 자괴감이 자주 들었다. 아이의 옷을 똑소리 나게 입히지 못하는 것 같고,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영양을 고려한 식단은 커녕 재탕도 여러번이다. 또는 한 두 가지 재료를 넣어 정성보다는 때운다는 느낌을 주는 음식도 자주 식탁에 올렸다. 손맛이 없어서 레시피를 따라 해도 깊은 맛을 낼 수 없는 능력까지 갖췄다. 또한 낮은 사교지수 때문에 동네 엄마들과 모임은 단발성이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 봉사도 하지 않았고, 같이 놀고 싶다는 친구가 있다 해도 그 엄마에게 연락도 취해주지 않는 이기적인 엄마였다. 무책임하게 엄마가 적성에 맞지 않나 하며 생각한 적도 있었다.

    



 중학교 입학 후 얼마 안 된 3월 중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유니와 같은 반 하준엄마였다. 하준엄마와는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갑작스러웠다.

   “유니가 아이들에게 하준이 험담을 하고 다닌대요. 새학기라 아이들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데 유니가 한 말 때문에 하준이가 같은반친구들에게 좋지 않게 비춰질까 걱정이 되네요. 물론 선생님께는 말씀 안 드렸어요. 우리 하준이가 그러지 말라고 해서요. 하준이가 자존감이 강한 편이라 괜찮다고 하는데 제가 마음이 아프네요.”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준이가 마음이 좋지 않았겠어요.

속상하네요. 미안합니다.

유니 오면 제가 이야기해보고 연락드릴게요.”     


 하준이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함께 노는 친구였다. 어느 날 하교하려는데 복도 신발장의 넣었던 유니의 신발주머니가 없어졌고 아이는 찾지 못해 실내화를 신고 집에 왔다. 집에 온 유니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다음 날 하교 후 유니가 집에 와서는

 “엄마, 하준이가 내 신발주머니를 교실 창문 밖으로 던진 거였어. 그걸 알고 있는 연우와 지유가 신발주머니를 찾아와 돌려주며 내게 사과했어. 하준이는 끝까지 아무 말도 안했어.”

 신발주머니를 찾아 다행이라고, 그리고 연우와 지유의 말과 행동이 고맙네, 라고 말했다. 속으로는 사과는 왜 안해 라며 하준이를 향한 나의 쪼잔함이 삐죽 나왔다.


 그때 그 친구 하준이가 중학교 입학해서 같은 반이 된 것이었다. 유니는 같은 반이 된 새로운 친구에게 그때 있었던 이야기를 했던 것이지 험담을 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한 명에게만 한 것이라며 억울해했다. 하긴 한 것이었다. 유니에게 새로운 환경을 맞이했고 아이들끼리 짝꿍찾기가 한창인 시기에 너는 사실을 말했다고 하지만 하준이가 들으면 기분 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하준이의 대해 안 좋은 감정이 남아 있다 해도 치사하게 하준이가 없는 자리에서 다른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건 비겁했다고,  하준이가 전해 듣고 마음이 얼마나 상했겠냐며 전화를 걸어 사과를 하게 했다.




  한번은 유니와 같은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동네엄마가 자기의 아들 SNS에 유니 이야기가 올라와 있다는 것이다. 자기 아들에게 친구가 찾아와 유니에게 조심하라고 전해주라고 하였단다. SNS를 하지 않는 유니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니. 유니에게 물어보니 모둠 활동 중 비협조적으로 보였던 A에게 유니는 협조하란 말을 했고 A는 기분이 상한 듯 보였지만 그 날의 모둠 활동은 마무리가 잘 되었다며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학교 가서 A와 이야기를 해보니 A가 있었던 일을 친구와 이야기를 했고, 그 친구가 A를 도와준답시고 같은 학교 선배의 SNS에 유니 이야기를 썼던 것이 전달이 된 것이었다. 아이는 A와 오해를 풀고 앞으로 불편한 점이 있으면 직접 얘기해달라고 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담임 선생님은 중1 때 일어나는 일들은 험담인지 모르고 하는 말들로 갈등 상황이 많이 만들어진다고 하셨다. 그래서 종례시간에 없는 사람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끝을 맺으신다 했다.     

 



 중학교 입학 후 얼마 안되는 시간동안 이런 일을 겪고 아이는 놀란 듯 보였다. 나도 맷집이 없고 소심한 엄마였기에 당황했지만 아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의 끝은 인정과 사과로 마무리를 짓게 하고 아이의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밥은 아직도 맛있게 못 해주는 것에 죄책감이 간혹 들지만 유니와 어느 때보다 질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별 볼일 없이 지내도 좋고, 이렇게 일이 생겨 일을 같이 의논해가는 과정도 좋다. 아이와 그런 일들에 대해 생각을 나눠보고 마무리 지으며 유니와 나 사이 끈끈함이 생긴 것 같다. 아니 끈끈함이 깨어났다고 해야 할까. 아이와 드라마를 보며, 뉴스를 보며, 영화를 보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지금이 좋다. 유니가 힘들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백‘ 이 되고 싶다.


오늘도 모성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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