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을 하고 난 뒤 내가 아이를 낳고 싶다라는 마음 이면에는 외부의 시선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엔 그것을 하나하나 벗겨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첫번째로 가진 생각은 나의 효용성에 관한 것이다. 아이를 낳을 것이 아니면 일이라도 열심히 해야된다는 외부의 시선에 맞춰 나를 가둬두었다. 이 때문에 첫번째 아이를 임산하고 유산하며 다니던 직장(중학교)을 그만 두었을 때는 해방감도 느꼈다. ‘아, 나 드디어 좀 떳떳하게 쉴 수 있구나…’ 라는 그런 마음말이다. 이때까지만해도 내가 해야할 역할은 하루빨리 아이를 임신해서 낳아 기르는 것 또는 어딘가에 속해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약 일년 반을 쉬며 두 번째 임신이 되었을 땐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들며, ‘내 인생 이제 끝났다.’라는 마음이 들어 힘들었다. 엄마가 되는 것은 분명 축복받은 일이고, 성스럽기까지 한 일인데 이를 있는 그대로 못받아들이는 나 자신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기간을 보냈다. 그렇게 두 번째 아이가 유산되고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임신’에 얽매여 내 인생에 있어 용기내어 시도도 못한 것들이 억울했고, 주춤해야했던 시절들이 후회가 되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임신’을 생각하지 않고 내 인생 내 뜻대로 살아야겠다는 각성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자, 나란 사람은 ‘직업’으로 보여지는 능력이나 ‘가임력’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내면의 시선이 올라왔다. 안희연의 가치는 내가 일을 하든 안하든 돈을 벌든 못벌든 아이를 갖든 못갖든 안갖든의 상관없이 나 자체로 가치있다는 깨달음이 일었다. 그러자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 동안은 부모님이 주시는 큰 용돈,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으로 생활을 한다는 죄책감에… 대한민국 청년들이 그렇게 어렵다는데 나는 너무 편하게 살고 있다는 부채감에 괴로웠었는데 그런 감정에서도 좀 해방되었다. 그 동안은 외부의 시선으로 ‘부모 잘만난 애’라고 나를 바라보니 당연히 부채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임신에 집착했었던 것 같다. 임신을 마치 부모님께 보답할 수 있는 나의 일이자 의무로 생각해, 준비도 없이 이를 어떻게든 하려 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얼마나 이 임신이라는 것이 구조적으로 여성을 옭아매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사는 사회에선 인생에 있어 해야할 과업들이 정해져있다고 본다. 20대엔 대학입학 및 졸업 30대엔 결혼 및 출산 등 이런식이다. 나도 이 과업들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고, 결혼을 했을 땐 안심하기도 했다. 해야할 일을 마쳤다는 그런 느낌? 그리고 임신이 남아 있는데, 이로 인해 고통을 받기 전까진 내가 얼마나 이 틀에 매여있었는지를 몰랐다.
나는 정말 엄마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보단 ‘남들이 비정상으로 생각할까봐…’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바라볼까봐…’ 라는 시선이 두려워 더 임신에 집착하고 고통을 받은 듯 하다. 유산을 두 번 겪은 지금, 아직도 ‘엄마가 약해서 아이가 잘못되었다.’ 라는 시선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의 가임력과 임신가능성 여부와 상관없이 나는 가치로운 사람이고 인간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내가 나를 그렇게 바라보기 시작하니, 자유로우면서 단단해진다. 행복한 감정이라기보단 좀 평온해졌다. 부모가 되는 준비에 있어서도 그 동안은 돈과 집, 교육여부와 같은 외부적인 조건만을 고려했었는데, 이젠 ‘희생이 무엇일지’, ‘나는 과연 그것을 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더 묵상하게 된다.
아직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말대로 고통은 은총인 것인지, 두 번의 유산으로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던 구조와, 사회적 시선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