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세계의 주인(2025)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나를 사랑하는 법)

by Tess

요즘 핫하디 핫한 영화! 세계의 주인을 봤다. 그것도 금요일에 퇴근하자마자 집 앞에 있는 cgv에가서!!! 독립영화의 성격을 띄어서 그런지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이 많더라. 그건 그거대로 연대라고 생각한다^ ^


이 영화는 스포없이 봐야하기 때문에, 나도 아무 말 안하련다.

그저 부숴져도 그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을... 나도 함께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인생에 사건이란 전혀 예상하지 못할 때, 상상하지 못한 형태로 온다. 그게 사건이다. 그렇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유리관으로부터 벗어나 실재라는 고통을 맛보게 해준다. 그 정도는 되어야만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정체성을 뒤바꿀만한... 너무도 괴로워서 무엇이라도 하게 만드는... 그게 사건이다.


주인과 주인의 주변인물들은 모두 다 그런 채 살고 있다. 이른 바 발악을 하면서 ^ ^

이 영화를 통해 부숴진 사람들을 향한 연민과 낙인의 시선이 조금이나마 옅어지길 바란다. 부숴진채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 숨기지 않아도 된다. 나라고 언제 '사건'을 안 겪을 것이란 보장이 있는가?! 확실한가?


유산을 두 번한 여자라는 건 내 정체성이 되었다. 두 번의 죽음과 상실은 내 몸과 정신 그리고 삶에 큰 스크래치를 남겼다. 그리고 여기에 추가된 부숴짐이 있다. 바로 이혼이다.

이 상실을 받아들이며 나는 이혼녀라는 정체성도 덧입힌다. 그럼에도 사는 사람_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사는 사람_ 그게 나다.

나도 주인도 이렇게 살면 된다. 충분하다.




최근에 본 영화 '세계의 주인'에서 주인공 주인이는 장래희망에 '사랑'이라고 써넣는다. 이 장면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맴돌더라. 주인이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도대체 뭘까?


그리고 나를 돌아보니, 나의 20-30대는 정말 사랑만 했더라. 그것이 건강한 사랑인지 아닌지... 그 방향성에 대해 생각 해 볼 겨를 없이 사랑하고 사랑해달라고 요구하며 보냈다. 23살에 러시아에서 만난 남자에 폭 빠져, 롱디를 하고, 군대를 기다리고, 또 다시 이 남자를 따라 예카테린부르크로 가는 등... 그저 '사랑'에 최선을 다했다. 결혼을 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집안일이나 가풍에서 오는 문제로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끝은 언제나 '(당신과) 잘 살아보고 싶어!'하는 쪽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지난 달_ 넷플연가에서 하는 번역모임에 다녀왔다. 자기소개를 듣다보니, 20-30대의 똑똑한 영어원문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더라. 30대 초반의 여자들이 얼마나 똑부러지고 자기 커리어를 챙기며 사는지!!! 부러워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직업도 기자, 변호사, 컨텐츠 회사를 다니는 사람 등등 얼마나 다양하던지, 전남편과 나+가족만 있던 좁은 세상에 살던 나에게 이 모음은 충격 그 자체였다.


20-30대의 나는 온통 결혼생활유지와 임신과 출산에만 꽂혀있었는데!!! 요즘 30대 초반의 여성들은 아예 그런 생각을 안하고 자기에게 집중하는 것 같이보여, 세대차이도 느꼈다. 동시에 '나는 왜 저리 아이낳는 거에 집착하면서 병신같이 살았을까?'하는 열등감도 올라왔다.

성수에서 모임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엔 '세상이 변했구나. 요즘 여자들 진짜 멋있다. 이런 사람들 만난 거 자체가 고자극이다. 부럽다. 야무지다 진짜'이런 마음과 '나는 뭐했나?'하는 질문들이 동시에 올라왔다.


그리고 어제, 2회차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아이스브레이킹 질문으로 '일상에 균열을 낸 사건이 있었나요?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라고 하더라. 나는 영화 '세계의 주인'을 본 이야기를 하며 이혼사실을 밝혔다.

"저는 20-30대때 사랑만 한 거 같아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두 번의 유산을 했고.. 15년을 만난 사람과는 작년에 헤어져서 집터도 직장도 옮기고 혼자 살고 있어요. 저는 이렇게 극(아이엄마 워너비)에서 극(돌싱찬양)으로 이동하는 이행자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런데 영화 속의 주인을 보면서 이런 얘기를 더 해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삶에서 예기치 않는 사건은 늘 일어나잖아요. 그런 폭력을 당해도, 나의 한 부분이 부숴져도, 소중한 것을 잃었어도 잘 산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저는 정말 잘 살고 있거든요 ㅎㅎ"


그렇게 '나는 그 나이때 뭐했지?'라는 열등감 가득한 질문에 찾아낸 내 대답 즉, 사랑으로 정신승리를 했다. ㅋㅋㅋㅋㅋㅋ 진짜다. 내가 여전히 밤마다 '당신 보고싶어ㅜ'하면서 우는 것... 매일 매 순간 예기치 않은 곳에서 튀어나오는 당신의 흔적과 그로 인해 불러일으켜지는 기억, 그리고 내 손으로 엄마에게 보내야만 했던 반려견 등등 상실로 몸부림치는 감각들이 모두 진짜 진하게 사랑했다는 증거다.

어떤 사랑이든 나는 진심 찐하게 했다. 내가 나를 잃은 것 같아, 그런 나를 용서할 수 없어 난리를 치는 것도, 그래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꾸역꾸역 읽고 있는 것도, 누군가가 다가와도 '나를 또 잃으면 어떻게하지?'라는 공포감에 휩쌓이는 것도 모두 다 사랑했다는 근거다.


주인이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타자보다 '자신을 향한 것'같다. 나의 20-30대도 엄마 아빠를, 전남편을 향해 사랑한다 이야기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나를 사랑하지? 나를 사랑할 수 있지?'라는 걸 찾아왔었다.

주인이도 그런 것 아닐까? '나를 사랑하는 법. 나를 용서하는 법. 나를 껴앉고 사는 법. 이렇게 부숴지고 망가진 나라도, 그렇다고 말하는 세상의 시선에도, 그런 나와 나의 삶을 사랑하는 것, 말 그대로 ;amor fati 하는 걸 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것이 장래희망이란 말이 맞는 듯하다. 이것은 나의 장래희망이기도 하고_


작년의 나만 해도, 이혼했다라는 사실이 너무 수치스럽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베프였던 전남편과 헤어지니 어떤 인간관계도 남아있는 것 같지 않았고, 커리어도 끊긴 상태에, 두 번의 유산과 여러 번의 자궁수술 그리고 조기폐경 진단으로 여자의 삶까지 끝났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어떠한 삶의 빛이 안보였다. '그럼에도 살아야겠다!!!'하는 생존의지는 있었다만, '도대체 이 상황에서 어떻게해?'하면서 어둠 속에서 움츠러든 채 막막해했다. 오래도록 누군가의 딸, 와이프로 살다가 그 타이틀이 사라지니 실패자로 보이니 어딜가도 위축되고, 겁이 났다.


저 시기를 108배에, 명상도 하고, 글도 쓰고, 달리기도 하고, 살아낼거라고 실재를 마주하며 발악하면서 보냈더니... 이젠 '이혼녀'라는 것이 좋다. 사랑을 해 본 사람같아서, 어쨌든 뭐라도 해봤다는 딱지라서 좋다_

"그렇다. 나는 끝까지 가 본 사람이다!!!" 그만큼 나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라고!!!


이젠 타인을 향해 요구했던 사랑의 방향을 나에게로 갖고 온다. 그리움에 사무쳐도, 혹은 어떤 충동이 올라와도 일단 멈춘다. 멈추고 지켜본다. 저 충동에 응답하는 것이 나에게 옳을까? 이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일까? 나는 그 사람이 보고싶은걸까? 아니면 그 사람과 대화할 때의 감각을 원하는 걸까? 이 충동의 주체는 누구지? 누구의 목소리인거지? 하면서 질문을 던져본다. 그러면 멈춰지고, 이성적인 판단이 된다.


이렇게 멈추는 내가 보이자 '안전하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다'라는 신뢰감이 느껴진다. 이혼 후 일년은 스스로와의 전쟁이었다. 저항과 버티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지금도 진행중) 그리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나를 살게하는, 사랑하는 법이더라.

주인아_ 그러니 너도 잘하고 있단다. 너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그리고 나도 ^ ^


마지막으로 감히 말한다. 주인이와 나처럼 자기의 고통과 서사를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그렇게 연대하기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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