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하고 가장 좋은 것은 혼자자는 것이다.
결혼 생활 중에도 나는 깨비와 침대에서 L군은 라텍스매트리스 이렇게 따로 자서 침대는 온전히 내 차지이긴 했다.
그런데, 이혼을 하면서 독립된 공간을 갖게되니 누구를 기다리지 않고 잠들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다. 내가 자고 싶을 때, 혹은 자야할 때 가서 누워도 된다는 것이, 이 고요함이, 이런 있는지도 몰랐던 자유가 너무 좋다.
진짜 이 혼자잠의 감각이 너무 너무 좋아서, 이를 침범받을 것 같으면 바로 이빨을 으르렁 드러낼 정도다. (섹파를 두던 시절에도 절대 자고가지 못하게 했다)
오죽하면 '아, 나는 누구랑 자면 안되는 타입이구나!'라고까지 생각했을까! 혼자 살게되면 밤을 무서워한다는데... 나는 그런 것도 전혀 없다. 문단속 잘 하고, 안방 침대에 쏙 하고 들어가면 그렇게 포근하고 편안할 수가 없다. 물론 이 혼자 살고 자는 것에 대해서도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최근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그와 밤을 보내는 일이 생겼다. 집에서 그리고 한 침대에서 종종 같이 자는데... 지금까진 섹스를 하느라 바빴다. ㅋㅋㅋㅋㅋ 젊은 신혼때도 이러지를 않았던 것 같은데, 38살의 나와 50살의 오빠는 정말 밤새도록 아침까지 섹스를 한다. 그만큼 이 관계에서 섹슈얼 에너지가 주는 비중이 크다. 물론 대화를 통해 서로 깊어지는 시간도 갖지만, 그가 내 집에 올 때는 주로 저렇게 육체를 탐구하며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이 자극과 쾌락이 너무 커서, 오빠랑 같이 누워도 잠들지를 못했다. 오빠도 그랬던 것 같다. 나를 계속 만지고, 그러다 서로를 흥분시키고... 이런 일의 반복이었다. 조금 쉬었다가 또 하고 또 하는 어떤 폭발의 시간을 보냈다.(여전히 이렇지만 ㅎㅎ)
그런데 어제! 나는 너무 피곤해서인지, 오빠 옆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 사람에게 마음이 열린만큼 편해져서인지... 살을 맞대고 4-5시간은 잤다. 와!!! 이게 얼마나 놀랍냐면, 만 8년간 산 결혼생활 중에도 살을 대고 잔 적은 손에 꼽는다. 그만큼 우리는 룸메이트처럼 각자의 공간과 패턴을 중요시했다. 섹스를 해도 잠은 따로 잤으니 말이다.
그래서 같이 살을 맞대고 잤다는 것이 참 신선하고 놀라운 경험이다. 오늘 퇴근 후 만나, '내가 오빠가 참 많이 편해졌나봐'라고 말을 하니... 오빠가 더 놀라운 말을 했다.
"희연아, 나 너 자라고 꼼짝도 안하고 기다리는거야. 나는 누워도 잠이 늦게 드는 편인데, 너는 일찍 출근해야하니까 내가 가만히 눈감고 너 잘 때까지 기다리는거야" 라고....
어머나?! 그런거였다니... 어쩐지, 내가 잠드는 패턴을 꿰고 있더라. 머리가 무거워지고 몸을 한 번 떨고, 그 다음에 크게 숨을 들이신단다.
오빠의 저 말을 듣고 나는, 저 잠들기까지 기다리는 마음에 공감했다. 물론 다른 결이지만.... 부모님과 살 때 나는 엄마 아빠가 다 잠들기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그게 나의 생존전략이었다.
어른들이 다 잠들고, 티비가 꺼지며 공간이 조용해지고, 통제와 요구하려는 메세지가 멈춰야지만... "이제 안전하다"는 신호를 느낀 것이다.
남편과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깨어있으면 언제든 나에게 말을 걸 수 있고, 평가를 할 수도 있으니... '내가 먼저 잠들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부모와 살 때와의 연장선으로 불안이란 감각이 깔려 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완전히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내가 피곤하면 먼저 잠든다. 의식이 꺼지고 몸이 풀리고 방어가 내려간 상태로....
그리고 이때 옆에 있는 이 사람은 나의 이 시간을 침범하지 않고 기다린다. 어떤 요구도 하지 않고, 만지지 않고 기다린다. 나는 이렇게 '내 경계 위에서 물러나는 타인'을 처음 만났다.
그 동안 나는 "깨어 있어야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긴장상태로 모든 걸 관찰하고 방어하는 것이 내 생존전략이었다. 집이란 공간이 특히 그랬던 것 같다. 모든 시선이 들어오는 곳, 나를 끊임없이 평가하는 사람들, 자기들의 욕망을 나에게 흘려보내려는 가족, 이 모든 것이 뒤엉킨 집에서 나는 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원초적 불안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것과 함께 사는 것을 고민하자... 나는 누군가 함께 있어도 쉬어도 된다, 안전하다라는 걸 경험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내가 오빠를 만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안전하다'는 감각인 것 같다.
'내가 무방비해도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나를 'pull my self together' 하는 법을 안다. 나는 나를 망가뜨리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자기 확신이 생기자, 오빠의 저런 사랑방식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예전의 나였다면, 옆에 누가 있는 것이 너무 불편해서 잠이 안왔어도 자는 척을 했을 것이다. 이유 모를 불안에 시달리며 '나는 왜이리 예민한걸까?'하면서 스스로를 볶았을 것이다. 거꾸로 오빠가 잠드는 것을 봐야 안심하며 잤을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나의 취약성을 내보이고있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변한 나는 훨씬 편안하다. 내가 정말 누구랑 침대를 공유하며 잘 거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거기다 내 경계를 존중받는 경험까지 하니 신기한 느낌도 든다. 내가 나를 수용한만큼, 세상이 변한다는데 그게 이런건가? 란 생각까지 해봤다.
강추위가 계속되는 요즘_ 내 집, 침대만큼은 뜨겁다.
20대엔 임신이 될까봐 섹스를 못 즐겼고, 30대엔 임신만을 위한 섹스를 하느라 나의 쾌락에 대해선 무심했다. 임신과 출산 앞에서 내 몸은 언제나 도구였다. 유교+천주교의 메세지인 '조신해야한다'라는 걸 따르느라 여성인 내 몸과 쾌락에 대해선 오묘한 수치심과 죄책감을 가져야했다.
지금은 다르다. 언젠가 끝이 있다는 걸 아는 어른 둘이 만나, 뜨겁게 서로를 탐구중이다. 사람이 주는 온기가 얼마나 큰지, 혼자 잘 땐 전기장판을 켜고 후리스까지 입고자는데... 오빠랑은 다 벗고자도 이불을 걷어차게된다. 이렇게 마흔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나의 육체와 쾌락, 여성성을 탐구할 수 있는 위치에 왔다. 딱 좋다!
모두가 다 잠들어야 안심을 하던 어린 희연은 이제 주체적으로 밤을 보내는 여인이 되었다. 내가 어디까지 변모할 지는 계속 지켜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