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딸이 독립을 말할 때....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의 서평

by Tess


앞선 글에서 예고했던대로 하재영의 책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 글은 하재영의 책에 대한 서평이면서, 동시에 그 서평이 끝내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 기록이다.






?src=%22https%3A%2F%2Fshop-phinf.pstatic.net%2F20230213_11%2F16762794812233Nsdg_PNG%2F9791160809664_ns.png%3Ftype%3Do1000%22&type=ff500_300




최근 하재영의 책 3권을 모두 다 읽었다. 에세이 집 '지극히 나라는 통증' 이 쏘아올린 공은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와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로 넘어갔다. 3권의 책 모두 술술 잘 읽히고, 여성과 독립이란 키워드로 공감하는 포인트가 많았다.



하지만 "어?! 과연 그럴까? 이게 맞나?"하는 저항이 드는 곳도 있었다.


제목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라는 책은 에밀리 디킨슨이 편지에 썼던 유명한 문장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I never had a mother. 이라고....


에이드리엔 리치는 디킨슨이 어머니의 인생과 동떨어진 인생을 살았다는 것, 그녀에게 중요한 것을 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p.11) 하재영은 여기에 덧붙여서 디킨슨이 이야기하는 어머니는 현실 어머니가 아닌 어머니 원형이라고 말한다. 융 심리학자들은 '어머니 원형'이라는 강렬한 집단 무의식이 실제 어머니보다 내면에 깊숙이 침투해 자아와 관계 맺는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현실 어머니와 무관하게 어머니 원형으로부터, 모성의 절대성으로부터, 자기 정체성과 대결하는 '어머니 콤플렉스(mother complex)'로 부터 벗어나려는 분투이다.(p.12)



나는 이 서문이 너무도 맘에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딸의 공동 회고록이라니!!! 그런 엄청난 작업을 한 하재영에게 존경의 마음도 일어났다. 어떻게 엄마와 함께 책을 쓸 생각을 했는지?!?! 지금의 난 엄마에게서 오는 연락에도 침범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갖고 읽었다. 아주 열심히 ^ ^



책은 총 6개의 챕터이고, 매 챕터는 어머니의 편지와 딸의 글로 구성되어있다. 엄마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거기에 응답하듯 딸이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 식이다. 대범하지만 전형적인 구조라고 생각했다.



하재영의 어머니는 대구에서 선을 봐서 결혼해 맏며느리로 평생을 살았다. 그렇게 큰 집에서 시어머니와 시가족들을 돌보며 자신의 공간은 어느 곳에도 마련하지 못한 채 살았다. 잘사는 집에 시집을 갔지만, 밥하고 식구들을 돌보느라 집을 비울 수 없는 도비(차마 노예라고 쓰지 못하겠다)처럼 산 것이다.



후에 남편의 사업이 망한 뒤론 보험영업에 장사 등등을 하며 생활전선에 나섰다. 그렇게 생활비를 벌어 무용하는 첫째 딸과 미술하는 둘째 딸을 뒷바라지 했다고 한다. 이걸 보며 전형적인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결국엔 지독히도 시집살이를 시키던 시어머니(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딸은 다 키워놨고 남편은 변해서 지금은 편해졌다라는 마무리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어머니인 여성을 희생하는 자, 인내하는 자, 묵묵히 견디는 자의 이미지로 그렸다.



여기엔 하재영의 의도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글에서 주장하고 싶은 여성을 그리려면 어머니가, 또 여성이 희생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글의 플롯은 어머니가 힘들었던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 하작가가 다음 글에서 여러 페미니즘 작가의 글을 인용하며 얼마나 여성이 약자인지, 피해자인지에 대해 논한다. 이런 가족이란 제도안에 갇혀서 살았던 엄마와 달리, 자기가 어떤 노력을 하면서 살았는지도 함께 서술하면서....



나는 이런 식으로 엄마의 삶을 그린 것이 평면적으로 읽혔다. 엄마는 과연 가부장제의 희생자이기만 할까? 묵묵히 인내하는 존재일까? 시어머니로부터 오는 시집살이, 부재한 남편 사이에서 자신의 억눌린 욕망은 어딘가로든 튀어나오지 않았을까? 뒤틀리고 어두운 부분이 없었다고? 그게 가능할까? 그리고... 여성이 저렇게 희생당한 존재라면, 할머니는 어떻단 말인가? 집안의 왕처럼 집이 망하는데도 자신의 세간살이는 다 들고 이사하는 할머니. 그 시어머니란 존재는 여성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이 여성의 모순적이면서도 복합적인 모습 아닐까? 시어머니의 위치가 되면 모든 식구들을 통솔하고 명령하는 권력자가 되고, 며느리일 때는 보고도 못본 척, 들어도 못본 척, 이동의 자유도 없이 밥을 차리는 하녀_

이 모든 층위에 있는 것이 우리네 여성 특징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희생하는 억압받은 소수이기도 하면서 모든 권력을 쥐고 흔드는 통솔자의 정체성까지 다 갖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이런 권력을 향한 욕망이 또 억압된 마음이 뒤틀려 교묘하게 숨어있어... 그 발현을 알아차리기 힘든 것까지 말이다. 여성에게는 저런 교활하고 영악스러운 힘까지 있는 것이다.



하재영은 이런 층위를 건들이지 못했다. 정말로 전형적인 '부잣집에 시집와서 온갖 고생을 다하다가 편해진 어머니'와 '그런 엄마의 딸로 살다가 21살에 독립해서 고생하다가 자기 언어를 찾은 딸'의 좌표에서만 그렸다.



그래서 내가 공감을 하다가도 끝까지 갈 수 없었던 것 같다. 저 스토리가 나의 것과는 달라서 말이다. 하재영네 집은 경제적으로 망하면서 부모가 자식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엄마가 먹고 사는 문제에 뛰어들어야 해, 자동으로 딸과 분리가 이루어졌다. 자식들은 그때부터 자신의 살 궁리를 찾으며 '어떻게 살아야하지?'란 고민을 했다. 이 지점이 나의 케이스와 가장 다른 것이다.



나의 부모는 자수성가를 한 케이스로 우리 집안은 형편이 갈수록 나아졌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신림동의 부엌도 없는 집에서 가난하게 컸다. 반지하에 모여살던 언니들이(지금 생각해보면 업소녀들 같다) 내 머리를 쪼매서 묶어주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엔 분당 신도시의 아파트에 살다가 중학생부터는 목동에서 쭉 살았다.(이혼하기 전까지...) 그러니 내가 가난을 직접적으로 겪은 것은 유치원부터 국민학교 2학년때까지이다. 물론 이 시절의 기억도 다 무의식에 저장되어있겠지만, 갑자기 집이 망해서 이사를 가야한다거나 엄마가 좌판에서 장사를 해야한다는 일은 없었다.(대신 아버지의 공장일과 밭일에 동원되야 했다) 그러니 나는 피부로 가난을 경험한 적이 없다.



이는 자산만큼 거대해지는 부모의 욕망의 직격탄을 맞았다는 뜻이 된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진 부모는 모든 관심과 주의를 나에게 돌렸다. 딸이 잘되기를 바란다는 명목하에 예체능 교육, 다양한 체험학습 등을 시키며 엄마의 미니미-mini me가 된 것이다. 엄마는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것을 나에게 다 시켰고, 이것은 내가 엄마와 분리되어야 할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희생서사를 들으며, 내가 미숙씨의 욕망을 그대로 듣고 자랐다는 데 있다. 기억하기론 5살 때부터 나는 엄마를 악마같은 할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보호해줘야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시집살이의 피해자이자, 자신을 외롭게 혼자 둔 아내의 포지션을 유지하며... 나를 조종했다.


나는 이런 엄마가 너무 안되어서 그녀를 구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되어서, 성공해서 엄마를 이 곳에서 나오게 해줘야지...' 라면서 이를 갈았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그 많고 많은 남자중에 아빠를 골라 결혼한 것은 엄마인데, 그렇게 나를 낳은 것도 엄마인데, 역으로 자식인 내가 엄마를 구원해줘야한다니.... 엄마가 먼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었어야 하는건데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일 즉, 미숙씨 구하기에 목숨을 걸었다.



그러다 한 번씩 이해를 못하고 터진 곳은 엄마와 아빠가 친하게 지낼 때이다. 그러면 가정에 평화가 왔다는 안도도 있었지만, 엄마는 그렇게 아빠를 미워하고 싫어하면서 왜 같이살지?라는 모순감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럴때면 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또 이런 마음을 품는 나를 단죄하곤 했다.


그렇다. 나는 집안형편이 나아지면서 부르쥬아가 되어버린 엄마에게 잡아먹힌 딸이었다. 엄마가 원하는대로 길러진, 그녀의 대체자인 김미숙의 미니미였던 것이다.



이런 상태로 쭉 자라온 나는 결혼을 해서도 친정 근처에 살면서(그것도 친정이 집을 얻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부모의 대체자로 자리매김했다. 가족모임에 가서 얼굴을 비추며, 부모를 빛내주는 존재로 말이다.



그러니 나와 하재영작가의 케이스는 다를 수밖에!!! 그녀는 가난이란 상황이 닥치며, 부모로부터 자동으로 분리가 되었다. 그 후에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삶에 치열하게 집중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서사를 따라가며, 이 지점이 참 부러웠다. 누가 듣기엔 황당할 수도 있지만, 나는 저 가난이 일으킨 독립의 기회가 참 부러웠다.



나의 경우는 다르다. 형편이 좋아질수록 무료해진 부모는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점점 더 내 인생에 들어왔고, 나를 놓아주거나 분리시킬 마음이 전혀 없었다. 자본력으로 자식을 가시권 안에 두고, 언제든 개입하며 엄마 아빠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내가 이혼하고 '혼자 살거야!!!'라며 온갖 발악을 할 때까지도 말이다.



재작년 여름_ 이혼을 하면서, 내 가족의 실체를 제대로 봤다. 분리되지 않은 나와 내 부모의 뜻에 맞춰주며 콩고물을 받아먹던 (전)남편, 그리고 이 모두를 돈을 주며 뜻대로 하려는 엄마와 아버지까지...


이걸 본 나는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지를 절단해서라도 독립해서 나로 살겠다는 결단을!!! 그렇게 1년 반 이상을 끊임없이 나를 찾는 부모를 억지로 끊어내고, 윤택한 생활에서 멀어지고, 혼자서 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 발악을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독립된 내가 보인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하재영은 결핍 속에서 혼자 살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던 것 같다. 나는 풍요 속에서 '어디까지가 나인가'를 설정해야하는 상황에 있고... 그래서 나의 독립은 같은 생존을 위해서지만 억지로 좀 더 많이 애써서 해야 가능하다. 끊임없이 '이것이 내 것이 맞는가? 내 욕망인가? 내 삶인가? 이래도 되는가?'를 의심하고 싸우면서 말이다.



나에게 있어 독립은 자원의 출처를 묻는 것이 아니라, 자원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고있다. 나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사지 못할 수도 있다. 부잣집 외동딸이 배부른 소리하네?! 라며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만큼은 풍요로운 환경을 등돌리고 스스로 가난을 선택할 만큼, 부모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다. 그것이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길정도로 간절했다.



어느 정도 혼자있어보니, 딸 인생 잡아먹은 끔찍하게 느껴지던 부모도 조금은 인간으로 보인다. 더이상 부모가 나를 잡으러 올 것처럼 공포스럽지도 않다. 나의 힘이 생겼다는 증거겠지...?



이렇게 나만의 것을 키워본 나는, 앞으로 이를 실현시키며 살 것 같다. 그래도 될 것 같다. 엄마를 구해준다거나, 아빠의 인정을 받아야한다는 압박없이.. 나에게 집중하며 내 욕망에 먹이주며 살려고 한다. 나에게 주어진 이 자원을 활용해보고 싶다. 그것도 기깔나게!!!



이렇게 선언을 하고 여러 번 글로 써도, 내가 태초에 가진 분리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결심을 발화하는 것이기에, 돌아가지 않으려 마음을 단디 세우고 있다. 이런 과도기에 있는 것 또한 유의미하기에 기록해논다.


금요일 연재
이전 12화밤의 주체가 되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