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이반 일리치의 죽음

by Tess

2026.2.5에 쓴 글을 수정해 올린다. 전직장을 폄하하거나 특정인을 겨냥한 글이 아님을 알린다.



지난 월요일, 함께 일하던 원어민 동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를 울며 통보한 부장은 그 뒤로 K의 죽음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못하게 하는 통제를 하고 있다. 그래서 오피스에서는 대놓고 슬퍼할 수도 또 그렇다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다. 아주 짙고 어두우며 무거운 분위기가 깔려있다.



갑작스러운 동료의 죽음이란 소식을 듣고,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분노"다. 그리고 이 분노의 정체는 늘 그렇듯이 나의 과거와 연결되어있다. 29살의 나는 자궁내막증 수술을 받고 피주머니를 찬 채로 입원 중인데도 "학교로 면접보러 가야되는데, 못가게 생겼네"라며 전전긍긍했다.


전신마취를 하고, 자궁 및 장에 붙은 유착을 제거하는 6시간동안 받는 수술이었는데도 나는 내 건강보다, '아픈 사람=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찍히는 것이 더 두려웠다. 저렇게 무능력하고 자본력이 없는 인간으로 보이는 낙인이 두려워 마음 껏 아프지도 또 회복에 힘쓰지도 못했다. 이는 '질병을 비정상'으로 보는 시선 때문이다.



직장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도 나는 아픈 아이, 딸로 보이는 불안이 컸다. '애가 아파서 돈이 많이 들어가요... 애가 아파서 뭘 하질 못하네' 라는 말을 듣는 것이 이 집에서 쫓겨 날 것 같은 공포를 유발했다. 똑부러지는 딸이라는 인정은 커녕, 부족해서 손 많이 가는 자식 취급을 당할까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철학자/ 신학자인 이반 일리치는 사회가 아픔을 허용하지 않는 구조자체가 문제라며 지적한다. 나는 고열이나 미추골절로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죄송합니다'라고 먼저 이야기하고 보고한다. 이게 참 이상하지 않은가?


직장의 구조상 '아프면 -> 빠진다. 빠지면 -> 누군가 대신 일한다. 대신 일하면 -> 그 사람의 노동이 가시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픈 사람은 -> 도덕적 빚'을 진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때의 아픔은 신체 상태가 아니라 도덕적 결함처럼 취급된다. 이것은 이 학교시스템의 문제이다.



겉으로 보면, 이것은 '서로 도와주는 구조' 같지만 실제로는 인력이 충분하지 않고 여유가 없으며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결근을 전제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이 상태에서 누군가의 수업을 커버하는 것은 연대가 아니라 비공식적 보충노동이다.


그래서 아픈 사람은 "내가 빠지면 누군가가 더 힘들어진다"는 윤리적 압박을 떠안게 된다.


이 구조에서 아프면 시스템을 깨는 사람, 자주 아프면 관리가 안되는 사람으로 보인다. '아픔=비정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지점을 이반 일리치는 이렇게 지적한다.



현대사회는 아픔을 '살아있는 경험'으로 두지 않고 관리 실패로 취급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프기 전에 먼저 자기검열을 한다.




내가 아파서 미안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이 자기검열이 내면화된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왠만한 통증과 아픔은 견디고 출근을 해야했다. 심지어 미추가 골절될 정도로 넘어졌는데도, 병원에 먼저 가보기보다 절절 매며 택시를 타고 출근했었다. 앉지도 못하는 몸으로 5타임을 내리 수업하고, 오후에 조퇴신청을 할 정도였다.(물론 그것조차 까였지만...)



이렇게 아픈 걸 숨기고서도 책임감이란 명목하에 일을 나오게 하는 것은 책임배분이 왜곡된 구조때문이다. 치료 비용은 개인에게 떠넘기고 결원의 책임을 동료에게 떠넘기기에 그 사이에서 아픈 사람은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건 명백히 시스템의 실패다.




흥미롭게도 철학자 이반 일리치를 생각하며 그의 사상을 찾다보니,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떠올랐다. 소설 속 이반 일리치는 사회와 관료제도의 부품으로 모든 수행을 잘 하다가, 순식간에 몸의 한 부위가 아파진다. 그리고 통증을 이야기하고, 누워있을 수록 그는 소외된다. 이반 일리치에게는 소외의 아픔이 몸의 통증보다 컸던 것 같다. 그렇게 그는 비존재하듯이 잊혀져가다 죽음을 맞이한다. (다행히 그의 고통을 알아봐주는 하인 게라심이 함께 있었다)



직장동료 K의 사망 원인은 자궁근종이라고 한다. 자궁근종을 방치하다보니 그 덩어리가 너무 커졌고 이것이 그녀의 폐를 눌러 사망에 이르렀다고 한다. 금요일에 입원을 했고, 월요일에 수술을 받기로 했었는데... 수술까지 가지도 못했단다. 이런 안타깝고 황망한 일이 있는지!!!


그런데 이런 소식을 전달하는 동료의 말에 더 충격을 받았다.


"월요일에 수술받고 회복해서 그 다음 주에 나와주길 바랬다.. 그래야 한 주라도 출근해서 2월 분의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까..."


이 말에는 K양의 고통, 아픔에 대한 고려 그 어느것도 들어있지 않다. 여기서 K는 이 학교와 계약된 존재로 8:30-16:30까지 있으며 수업을 진행하는 기계일뿐이다.(나도 마찬가지이다)


수술을 앞 둔, 타지에 와 혼자 살며 일하는 외국인에게 "그 다음주라도 나와서 수업을 하고 월급을 받아가라" 라고 말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그것이 진정으로 그녀를 생각하는 것이었을까? 이걸 먼저 전달하는 것이 우선순위였을까?



이 직장에 남은 정도 없지만, 정말 먼지 한 톨까지 다 털렸다. 심지어 인간을 기르는 학교에서, 가장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다니!!! 그렇게해서 사람이 죽다니!!! 이걸 눈 앞에서 목격하니 충격과 황망함, 그리고 분노로 일그러진 한 주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시민인 나는, 이런 시스템에 지독히도 길들여진 나는 일찍일어나서 직장에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약 일주일후면 퇴사하는데도 '성실하지 못한 사람, 지각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까봐 그것이 두려워 밤만 되면 긴장상태로 잠자리에 든다.


밤만 되면 죽은 동료의 데스크를 보는 것이 너무도 괴로운 그 곳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그것도 가서 나에게 주어진 내 몫(하루에 수업 4-5시간 + 그 외의 주어진 일들 하기)을 해야한다는 압박에 몸서리를 친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출근 한 날이 꽤 된다.


몸이 이렇게 아우성치는 걸 보니, 결국 탈주만이 답이라는 결론에 확신이 생긴다. 이렇게 '아픔=비정상'으로 보는 곳에서 그럼으로써 약한 사람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이 곳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더이상 누군가가 '나를 쓰도록/고용하도록' 갈구하는 세계에 있지 않겠다. 내가 있을 곳은 내가 직접 만들 것이다. 작년 9월에 미추골절이 일어나며 정을 뗀 직장에서.. 혈뇨를 봐도 출근해가며 6개월을 더 버텼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이런 구도로 들어가지 않겠다. 이 곳은 정신적/육체적 무덤이란 것이 K의 죽음으로도 증명된 셈이다.



29살, 피주머니를 차고도 면접을 놓쳤다며 불안해하고 속이 타들어가던 희연은 몇 번의 관료집단을 겪고 이주를 경험한 뒤... 39살의 나는 "내가 있을 곳을 직접 터부터 닦아나가겠다"란 결심이 섰다. 이젠 누군가의 인정을 위해 스펙을 쌓지 않을 것이다.



동료 K의 죽음 이후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죽음이란 사건이 일어났는데, 오피스에 있는 21명의 동료들의 반응은 다 다르다. 감정을 억누르고, 선생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며 통제하는 부장, 죽든지 말든지 자기 생일이 중요한 나르시스트 동료, 국화꽃을 올리는 선배 등등 다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걸 보며 인간에 대해 깊은 혐오를 했다가도, '저 정도구나'라며 체념하는 일을 반복해서 겪고 있다.



K의 죽음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글을 써서라도 애도를 해야겠다 싶었다. 진작에 검진을 받았더라면... 살 수 있었을텐데라는 안타까움, 내일 아침에라도 출근길에 만날 것 같은 기대와 무너짐, 그만큼 믿기 어려운 K의 죽음으로 내 삶을 또 그것과 붙어있는 죽음에 대해 묵상중이다. 동시에 현실적으로 내가 있을 곳을 마련하겠다고 한 다짐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서....



나는 한 동안 내 발 붙일 곳을 찾아다닐 것 같다. K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만큼 하늘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을 것 같다. 그녀의 명복을 빈다.



금요일 연재
이전 13화부잣집 딸이 독립을 말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