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이 아니라 질문하는 관계 그 이후
'찬양이 아니라 질문하는 관계'라는 나의 연애에도 균열이 생겼다. 나는 요 며칠 계속 오빠를 보는 것이 불편해서 피해다녔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피하지도 못해서, 오빠를 보면서도 올라오는 짜증을 억누르고 감추려다 터지는... 그런 피곤하면서도 답답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본 나의 남자친구는 일상이 참 느슨하다. 출근을 하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약간의 운동과, 차 마시기, 집안일, 글쓰기 등으로 루틴을 지키는 나와 달리... 오빠는 먹고 싶은 것을 먹고(콜라, 초콜렛, 과자, 햄버거!!!) 매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운동은 한다한다 말만하지, 별로 하는 것을 못봤다.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도 뛰고 영어공부를 하다 출근하는 (전)남편과 살았어서 그런지... 이런 느슨한 사람을 보는게 낯설면서도 힘들었다. 그 이유는 '왜 이렇게 나이값을 못하지? 왜 자기 관리를 안하지?'라는 판단이 올라와서이다. 나는 너무도 성장하고 싶은데, 이 사람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니... 헤어져야하나라는 고민까지 되는 것이다. 어짜피 나는 곧 해외에 나가서 자유롭게 거리가 생길텐데도... '지금인가?왜 이리 오빠란 존재가 무겁지?'하면서 자꾸만 이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런 마음이 드는데 곰팡이가 번지는 꿈을 꾸니까.. 뭔가 더 확신이 드는 것이다. '오! 이건 헤어지라는 꿈인가보다' 라면서.... 내가 오빠의 삶까지 떠앉고 있고, 이것에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관계의 종결로 결말을 내릴 때 쯤 L선생님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빠는 일상을 느슨하게 사는데, 저는 이 지점이 너무 짜증나요. 왜 그런걸까요? 이거 제 패턴인 것 같기도 해요. 내가 사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고치려고 하는 거요... 전남편한테도 이랬어요. 그때는 어렸으니까 상대방에게 '이래라. 저렇게 해봐라'라는 에너지라도 있었지, 지금은 그럴 수도 없는 걸 알아요. 분명한 건 제가 좋은 자극을 못받고 있다는 거에요..."
아! 이 패턴이 또 작동하는구나.
"내가 상대방보다 잘산다 -> 우월하다 -> 내가 맞다 -> 알려줘야한다"라면서 과하게 개입하고 통제하려는 것!!!
이것이 작동하고, 스스로 그걸 알고 반복한다는 느낌이 나니까 짜증이 올라왔던 것이구나!!! 라면서 현타가 왔다.
그렇다 나는 그는 게으르고 배울 점이 없어서 나보다 못산다며 재단하고 있었다. 즉,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동등한 존재로 두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우월감이 작동하는 패턴만으로는 뭔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남편과 살 때도 이 구조는 파악하고, 반성하고 자책하면서 끝났지만... 이게 또 다른 사람과 만날 때도 반복되는 걸 보니, 깊숙한 층위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이를 붙잡고 파고 들어가니, 우월감 아래에는 "불안"이 있었다.
오빠가 루틴없이 사는 모습이 나를 불안하게 했는데, 여긴 '내가 책임져야 할까봐, 누군가 나에게 의지하게 될까봐'라는 학습된 불안이 존재했다. 이혼의 기억과 연결되면서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고 있던 시절에 대한 두려움이 올라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깊숙한 곳에는 '아버지의 기준'이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남자를 만날 때,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만한 남자'를 만나야 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래서 재력, 배경, 성실함 등 능력을 기반으로 하는 아버지의 눈으로 오빠를 채점한 것이다. 아빠의 눈에 지금 남자친구는 '게으르다/ 성에 안찬다'라고 생각이 드니... 아버지에게 한 소리를 들을까봐, 거부당할까봐 두려워하는 아이 희연이 올라와 불안에 빠졌다.
이혼 후에, 내가 내 기준으로 고른 남자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아버지의 필터가 강력하게 작동해서 끊임없이 나와 오빠를 재단했단 것을 알아차렸다. 아고... 나의 불만을 받아내야했던 오빠도... 불안해서 그걸 어쩔 줄을 몰라 짜증으로 표출했던 나도 짠하다.
결국, 내가 막 '오빠 규칙적으로 생활해야지. 인스턴트 음식 좀 그만먹어'라면서 통제했던 것 속에는 '내가 더 잘사니까'라는 우월감보다 불안이 컸다.
오빠를 잃기 싫어서... 그러면서도 오빠가 나에게 의지할까봐란 양가감정과 오빠와 만나는 것을 아버지가 못마땅해하며 한 소리를 할까봐.. 아버지로부터 부정당할까봐란 여러 겹의 깊은 불안 모두가 작동한 것이다.
더 나아가보면, 이것이 내가 엄마에게 배운 사랑의 방식이었다. 사랑하면 걱정하고, 간섭하고, 고쳐주고, 관리하는 것!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것이라 배운 방법이다. 하지만 통제는 사랑의 왜곡된 표현이다.
내가 엄마의 이 사랑의 방식에 학을 띄고 싫어하면서도 이를 반복하고 사랑하는 상대에게 행하고 있었다는 것은 제법 큰 충격이다!
이제 내 남자친구는 통제할 대상이 아니고, 그의 인생을 나름대로 열심히 고민하며 사는 한 명의 사람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앞으로 나의 연애는 조금 달라질 것 같다. 상대방의 몫을 내 것으로 가져오지 않는 연습을 하면서(그는 바라지도 주지도 않는 걸... 나는 미리 짐작하고 난리를 떨었다) 아버지의 투사를 벗겨낼 것 같다.
나는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연애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도 나도 하나의 독립된 존재이다.
아버지의 필터가 좀 벗겨진 지금, 의식적으로 오빠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고 있다. '아, 이런 사람이구나. 이렇게 구는구나!'라면서 말이다. 동시에 나의 큰 불안에 대한 경각심이 생긴다. 불안이 커다란 통제욕으로 가는 것을 보며, 이를 경계하게 된다. 나는 엄마처럼 굴고 싶지 않다. 나는 나대로 불안을 다루는, 불안과 함께 사는 법을 내 안에서 찾아야겠다.
내 기본 정서가 안정이나 어떤 따스함이면 좋겠지만...그것과 정 반대의 결핍과 불안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 불안이란 것에 휩쌓이면, 안전감을 확보하기 위해 나와 내 상황 그리고 가까운 주변인들을 막 통제하려고 하는 것도 인정한다. 그래서 내가 더 루틴과 집안청소 등에 집착하나보다.(오늘도 이불빨고 변기까지 닦았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불안이 누군가를 재단하는 칼이 되지 않도록 한 박자 멈추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빠는 오빠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사는 사람으로_
통제 대신 질문을, 판단 대신 관찰을,
그렇게 우월감 대신 취약함을 드러내는 연애로 가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