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법원에서 이혼을 완수하고 갓 전남편, 전부인이 된 채로 우린 함께 지하철을 탔다. 5월부터 8월까지 내내 "부모한테 잘해. 이혼하고 부모님이랑 사는건 어때?" 라면서 14년의 세월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내가 아닌 내 부모만 보고 있던 당신이었다. 그 지하철 안에서 그는 나에게 "너무 힘들면 전화해" 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너무 황당했다. "이 친구 아직도 우리 사이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고 있구나. 내 감정과 결정을 가볍게 보고 있구나. 내가 당신에게 돌아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구나. '전화해'란 말은 당신과 부모의 말 잘 듣는 희연으로 돌아오란 말이구나" 싶어서 분노했다. 그 덕분에 취업도 이사도 에너지 뿜뿜하면서 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이혼 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다시금 전남편의 저 말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내가 전남편에게 갖고 있던 환상과 나에 대한 오만이 걷히는 것이 느껴진다. 그가 그리워서 울 때마다 '나 심심한가? 눈물에 중독되어있나? 신체차원에선 이런 고통도 어떤 자극, 쾌락으로 느끼는 것일텐데...'하면서 센서를 켜놓고 나를 보려고 했다. (물론 이 조차 안되는 날은 그냥 엉엉 우는 수밖에 없었지만...) 이별과 고통, 그리움, 단절감, 상실 등도 다시 보려고 노력한 탓일까?
당신과 내가 너무도 특별한 사이였다는 것이, 우리가 그렇게 예쁜 부부였다는 것이, 당신이 나한테 엄청 잘했었다는 것이, 당신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좁은 시야로 바라본 나의 환상인 것을 알겠다.
나는 그렇게 나를 속여야만 했을 것이다. 내가 22살때부터 만나 군대도 기다리고, 직장 그만두고 러시아도 따라가고, 그때 받은 스트레스로 자궁내막증 수술도 하고, 대학 사람들에게 동거녀로 인식된 이상 당신이랑 꼭 잘 살아야만 했다.
남들이 보기에 '쟤넨 진짜 잘살아. 대화도 잘 통하고. 본보기가 되는 부부야'라는 평을 얻어야만 했다. 그것이 내가 선택했지만 이 정도로 거대할 지 몰랐던 불행을 보상하는 방법이었다.
내가 오래도록 임신과 아이에 집착한 이유도 저거였을 것이다. '남들 보기에 완벽한 가정, 남부러울 것 없는 모습' 이 상을 채워야만 내 불행이, 내 고통이 상쇄된다고 보았다. 이 얼마나 큰 모순인지! 남들에게 완벽해보이는 가정이고 싶어서 아이를 원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얼마나 fucked up 됐는지를 보여주는 건데... 그땐 그걸 몰랐다. 아니, 안봤다. 그렇게 나는 눈을 가리고, 보고싶은 것만 보며 살았다. 열심히 열심히 진실을 왜곡한 채...
지금 생각하면, 그건 '환상'이라는 단어로도 모자랄 정도로 치밀하게 구성된 세계였다. 너무도 오랫동안 그 안에서 살아서, 내가 그걸 환상이라고 인지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 구도 안에 있을 땐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옳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몰랐다고 너무 자책하지 말자 나!!!)
나와 당신,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부모와 사회의 시선까지 모두 맞물려 돌아가는 세계. 이것이 라캉이 이야기하는 상상계인가?! 자아와 타인의 경계가 불분명한 채... 나와 타인(당신)을 이상화된 이미지로만 인식하던 세계. 그 안에서 나는 나와 너와 같다고, 같을 수 있다고 믿으며 동일시를 하고 있었지. 이게 나를 얼마나 얽매이는지도 모른채....
하지만 그 세계 밖으로 나온 지금에서야 보인다. 그건 예쁘고 이상적인 부부가 아니라, 내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어 소꿉놀이하던 두 어린이였다는 것을. 그 둘은 심지어 남매처럼 관계맺고 있었다는 것이 보인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억압하고 통제하며 부모의 사랑과 지원을 받겠다며 경쟁했다. 타고난 성별에서부터 밀린 나는 '이상적인 아내'라는 역할에 충실하려고 임신과 출산에 집착했었지.... 휴우. 이 역할과 구도에서 빠져나오고 나니, 이제야 나는 내가 어떤 위치에서 얼마나 큰 답답함과 외로움, 불안, 고통을 겪었는지 보인다.
이제 나는 내가 어마어마한 환상에 쌓여있었다는 것을 파악할 정도로 많이 왔다. 그만큼 나의 아상과 집착이 어마무지하게 강했다는 것도 동시에 깨닫게 된다.
그러자 이젠 당신과 갔던 곳도 혼자 혹은 친구와 또 가볼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든다. 아니, 가보고 싶다. 당신이 생각날까봐 벌벌 떨면서 피해왔던 속초나 양양, 강릉 심지어 해외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이랑 함께했던 장소라면서 도망치지 않고 그걸 다른 경험으로 덮고 싶단 마음이 크다. 용기내보고 싶다. 새로운 경험을 더 많이 많이 하고 싶다.
여전히 당신이 사무치게 그리운 때가 오면 슬픔의 발작이 일어나지만, 우리가 헤어진 선택이 나와 너 모두를 살리는 귀한 기회였다는 것도 알겠다. 그렇게 나는 이 시험을 기꺼이 치뤄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