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증식의 프레임을 떠나며

나로 사는 연습

by Tess

5월 한 달 내내, 뭔가를 엄청 사고 싶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이걸 사도 되나? 이게 내 월급 안에서 허용되는 소비일까? 이래도 되는 걸까?”

뭘 사는 순간마다 자기검열과 저항에 부딪혔고, 그게 얼마나 진을 빼는 일인지 모른다.


배달의민족에서 음식을 시킬 때조차 “내가 이걸 먹어도 돼? 이거 너무 비싼 거 아냐?” 하는 생각이 스쳤고, 여름 이불 하나 고르면서도 “한 철밖에 안 덮을 텐데 싼 걸로 살까?” 하다가 결국 쿠팡에서 주문한 걸 두 번이나 반품했다. (이불은 직접 보고 만져보고 사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여태 엄마가 다 해줬으니 몰랐던 거지. 하… 모든 게 다 배움이다.)


이런 저항이 올라올 때마다 나 자신에게 말했다.

“괜찮아, 희연아. 써가면서 배우는 거야. 뭘 사봐야 알지. 써!”

하지만 어려운 건 여전히 어려웠다. 물론, 어려워하면서도 야무지게 잘 쓰고 잘 먹긴 했다. ㅎㅎ


그러다 어제, 퍼뜩 깨달았다.

아, 이건 아버지의 시선과 언어구나. 옷이나 가방 같은 사치품 사면 안 되고, 비싼 밥 시켜먹으면 안 되는 거—그 모든 판단 기준이 아버지의 언어였구나. 그리고 전남편은 그 아버지의 언어를 아주 충실히 따르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 언어에서 한참 벗어난 줄 알았는데,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었던 거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전남편은 ‘자산 증식’이라는 욕망의 방향이 같았다. (엄마는 소비에 관대하니 괄호에 넣는다.)

돈은 무조건 불려야 하고, 어디에 쓰든 본전 이상을 건져야 하며, 남는 게 없으면 아예 쓰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세계.

“세상은 불안정하고, 돈 없으면 사람 취급 못 받아. 그러니까 모아야 해. 무조건 갖고 있어야 돼.”

이게 아버지의 철학이자 언어였다. 지금도 아버지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하신다.


그래서 나는 소비할 때마다, 혹시라도 엄마처럼 생각 없이 써서 파산하는 건 아닐까? 나 정말 가난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올라온다. 그리고 노동을 통해 번 돈만이 ‘진짜 내 돈’이라는 생각—그 이상을 바라는 건 사치이자 죄라는 판단—거기에는 아버지, 자본주의, 종교의 언어가 얽혀 있다.

와… 이제야 구체적으로 ‘소비’에 얽힌 목소리들을 구분하고 들을 수 있게 되었구나!


작년 3월, 전남편과 마지막으로 갔던 고성 여행에서 우리는 하룻밤에 8만 원짜리 민박 같은 곳에 묵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다. 그 방은 원룸 같았고, 화장실은 최악이었고, 거기에 강아지까지 데리고 둘이서 이틀을 지냈다니. 진짜 너무 답답했었다.


결혼 생활 내내 나는 뭐만 하면 “우리 돈 있어? 이거 먹어도 돼? 여기 가도 돼? 이거 사도 돼?” 하면서 남편에게 허락을 구했다. 유산 후 전업주부였던 것도 있지만, 스스로를 아버지에게 종속된 존재로 보고 있었기에, 아버지를 대변하던 남편에게 눈치를 봤던 거다.


그런데 정작 자본가 아버지의 딸인 나는, 그 권력에서 소외된 채 아무것도 쓰지 못했고, 누리지도 못했다.

돈도 못 벌고, 애도 못 낳는 나는 짐 같은 존재로 스스로를 바라보며 작아지고, 구겨져 살았다.

겉으로는 월세 받고 목동의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내 삶은 없었다.

소비를 할 수 있느냐 아니냐를 떠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마치 보고하듯 말했다.

“이렇게나 잘 모으고 있어요! 하나도 안 썼어요! 아버지 말씀 충실히 따르고 있어요.”

그 감시의 시선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렇게 물려줘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증식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드러내는 아버지. 그는 늘 내 곁에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그 전에 교통정리를 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위치로, 엄마는 엄마의 장소로, 전남편은 자기 자리에—그리고 나는 딸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아버지는 권력을 충분히 누렸고(지금도 누리고 계시고), 전남편은 자기가 아들이라고 착각하고 살다가, 칼춤을 추는 나에게 쫓겨났다. (이혼의 고통은 별개의 문제다. 그 칼은 나를 살리기 위해 들었지만, 그 대가는 내가 감당해야 하니까.)


그리고 나는 ‘자산증식’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 근거 없는 불안, 아버지의 언어와 세계를 이제 떠난다.

세상은 위험하니까 돈을 모아야 한다, 돈은 무조건 축적해야 한다, 소비는 본전 이상을 건져야 한다—이 모든 건 내 욕망이 아니라, 아버지의 욕망이었다.

나는 이제 내 욕망대로 살아보려 한다.

이번 생은 철저히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다. ^^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를 다시 바라보니, 정말 잘 사는 내가 보인다.

여행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우리 집엔 유럽 식재료가 많다. 그만큼 경험도 많다는 거지), 갤러리도 가고, 책도 사고, 내 몸매와 스타일에 맞는 옷도 사고, 운동하고, 마사지 받고, 상담과 정신분석도 받는다. 내면 공부하며 강의 듣는 것에 돈을 쓰는 나.

정말 적절한 곳에 잘 쓰며 살아왔다.

저렇게 억눌린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려고 애썼던 나.

이제 나는 ‘돈도 못 벌고 애도 못 낳는 짐덩이’가 아니라,

‘나만의 취향을 가진, 혼자 잘 사는 사람’이다.


목돈이 생긴다면, 그걸로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돈을 불리려 하지 않는다. 결혼생활 내내 그런 데엔 관심이 없었다. 청약 넣어본 적도 없다. ㅋㅋㅋ 부모는 제발 하라고 했지만, 끝까지 전세 살며 버텼다.


나는 돈을 굴리는 것에 욕망이 없다. 지금은 이혼한 몸이고, 아이도 없고, 나 하나 책임지는 삶인데—

뭐하러 나를 땅에, 건물에, 부동산에 묶어놓는단 말인가?


동시에 나의 정체성도 인정한다.

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서 태어나, 부르주아로 자랐다. 돈 걱정 없이 고등교육 받고, 해외 유학도 다녀왔다.

덕분에 예술적 취향을 기를 기회가 있었고, 철학적인 사유도 익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문화생활과 여행, 강의, 공부에 돈 쓰는 걸 아깝지 않게 여긴다.

나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것이라면, 언제든 기꺼이 지불하고 누릴 것이다.


‘자산증식’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내 삶은 결코 나쁘지 않다.

취향을 키우고, 문화를 즐기고, 예술과 공부로 풍요로워지는 삶.

나는 월급보다 많이 쓰고 산다. 벌이는 적고, 지출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나를 더 이상 ‘죄인’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월세를 쓰든, 나 자신을 위해 쓰든,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보지 않기로 했다.

“부모 잘 만나 편하게 사는 애”, “꽁돈 쓰는 애” 따위의 말들에서 벗어난다.


그 월세도 세금 다 내고, 저축하고, 관리하고 있다.

나는 ‘건물주’라는 타이틀과 ‘계약직 교사’라는 타이틀 모두를 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자산을 불리는 대신, 나 자신을 키우는 데 돈을 쓴다.


그렇게 나로 사는 연습을 조금씩, 조심스럽게 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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