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궁과 두 태아를 바쳐 그 윤회를 끊다.

by Tess

지난 금요일, R과 데이트를 했다. 진지한 대화를 나눴고, 내가 꺼낸 첫 질문은 이거였다. “너는 아이를 원해? 아이를 기대해? 너 삶에서 아이가 있을 거라 상정하고 살아?” R은 ‘관계가 안정적이라면 원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원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그게 정답이지’ 하고 맞장구를 쳤지만, 주말 내내 그 질문을 한 나 자신이 계속 신경 쓰였다. 유산에 이혼까지 했으면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만날 때 ‘아이’라는 주제가 나에게 먼저 올라오는 이유가 뭘까? 나는 왜 저 질문을 그토록 자연스럽게 던졌을까? 거기엔 내가 깨닫지 못했던 감정이 있었다. 열등감이라는 이름의 오래된 감정. 나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낳지 못하는 여성’이라는 것에 대해 아주 오래전부터, 깊이깊이 박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열등감은 30살의 준비되지 않은 청년과의 결혼을 서두르게 했고, 26살의 나는 대학을 막 졸업한 전남편을 따라 직장을 그만두고 러시아로 따라갔다. 불효녀란 낙인이 찍힐까 두려웠고, 남자 때문에 부모까지 버린 애라는 인식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나는 자궁내막증을 앓게 되었고, 그 병은 결국 수술로 이어졌다. 대학병원에서 6시간이나 걸리는 대수술이었다. 수술을 집도한 산부인과 의사는 말했다. “자궁내막증은 불임의 원인이에요. 지금 사귀는 사람 있으면 빨리 결혼해서 임신부터 하세요.” 나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정말 믿었다. 불임차트에 오른 내 이름을 보고는 정신이 아득했고, 그 길로 사랑보다 임신을 우선한 결혼을 결심했다. 물론 전남편과의 애정도 있었고, 부모의 권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임신’이었다. 나는 삶의 소명처럼 그것을 여겼다. 출산해야 한다는 강박은 나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나는 스스로를 하나의 도구로 여겼고, 전남편 또한 ‘정자 제공자’로밖에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사실이 아프지만 솔직하게 인정된다. 자궁내막증 수술을 받은 이후, 나는 나를 ‘하자 있는 여자’라고 믿었고, 이 열등감을 감추고 보상받기 위해 나보다 조건적으로 부족한 남자와 결혼했다. 상냥하고 편해서 결혼한 게 아니었다. 고칠 수 없는 문제를 가진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진실이다. 집안도, 학벌도, 경제력도 나보다 아래인 당신이라면, 이 결혼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계산했던 것이다. 나의 열등감을 눌러 덮기 위해 결혼이라는 판을 벌였고, 그 안에서 우리 둘 다 고통에 빠졌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의식적이지 않았다. 나는 지금에서야 내가 얼마나 깊은 무의식 속에서 행동했는지를, 며칠간의 사유를 통해 겨우 조금 알게 되었다.


그 시절 나는 두 번의 임신과 두 번의 유산을 겪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과, 아이에 대한 생각조차 없던 사람과 함께 살면서도 나는 애를 가져야만 산다는 강박에 휘둘렸다. 그 강박 하나에만 매달려 다른 건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 자신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였다. 나는 실패자였고, 하자 있는 여자였고, 고쳐야 할 존재였다. 그렇게 나를 작게 만들고, 부끄러워하며, 조용히 망가졌다.


내게 임신과 출산은 존재가치를 입증하는 일이자, 부모에게 인정받는 일과 같았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나는 부모에게서 쫓겨날 것 같고,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늘 불안했다. 공부도, 운동도 잘하던 나는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딸이었지만, 임신은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영역이 아니었다. 노력으로 안 되는 일에 처음으로 부딪힌 나는 결혼생활 내내 극심한 무력감과 고립감에 시달렸다. 전남편은 내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늘 ‘애는 때 되면 생길 거야. 너 너무 예민해’라고 말했다. 그는 방관자였다.


나는 그 세계를 떠났지만, 여전히 남자를 만나면 ’이 사람이 나의 하자를 받아줄 수 있을까?’를 무의식적으로 검열하게 된다. 그렇게 내 안의 불안은 여전히 흘러나온다. 나는 그게 나인 줄 몰랐다. 아직도 그 반복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놀라웠다. 그렇게 물었다. “희연아, 넌 정말 아이를 원하는 거야? 정말 갖고 싶은 거야? 지금 생활에 만족하면서도 왜 움츠러드는 거지? 이건 누구의 욕망이지? 누구의 목소리야?” 그렇게 계속, 묻고 또 묻다보니 어젯밤 샤워를 하다 문득 떠올랐다. “이건 엄마의 욕망이었구나.”


자궁내막증 수술을 받고, 불임차트에 이름이 올라간 내 상황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니었다. 엄마였다. 내 몸인데 자기 몸처럼 반응했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던 그 사람은 엄마였다. 결혼한 후에도 병원을 가보라고, 여기저기 한약이 좋다고, 부부 검사를 받아보라고 집요하게 말하던 사람 역시 엄마였다. 내 불임에 대해 가장 큰 공포를 가진 사람은 바로 엄마, 김미숙 씨였다.


엄마는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에 시댁에서 자신의 위치가 위태롭다고 느꼈고, 세 아들을 낳은 시어머니와 자신을 비교하며 늘 열등감과 분노 속에 살았다.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남편이 아닌 아들로만 존재하길 원했기에, 엄마는 항상 주변인일 수밖에 없었고, 그 패배감과 울분을 나에게로, 나 하나뿐인 딸에게로, 고스란히 넘겨줬다. 그녀의 감정과 욕망을 나는 그대로 받아 자랐고, ‘아이를 낳는 것’이 곧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길이라는 믿음을 나 또한 내면화하며 살아왔다.


결국 나는 엄마의 욕망을 따라 살았다. 그리고 그 욕망은 내 몸을 망가뜨렸다. 자궁내막증, 유산, 수술, 조기폐경. 이 모든 고통이 내 몸 안에 각인되어 있다. 그럼에도 나는 버텼고, 여기까지 왔다. 이 예민함과 고통, 그리고 질문을 멈추지 않는 내 성격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고 믿는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엄마로부터 온 거대한 욕망의 고리를 끊었다. 내 난소와 자궁, 그리고 두 태아를 바쳐서, 이 윤회를 내 선에서 끝냈다. 대가 없는 얻음은 없다. 나는 그 진실을, 내 뼛속 깊이 알고 있다.


R에게는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두 번의 유산을 한 여성이고, 앞으로 아이를 가질 생각도, 가질 수 있는 능력도 없다고. 나는 barren이라는 단어를 선택해 말했다. 이젠 그의 몫이다. 이게 나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를 깎아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세계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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