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로부터의 독립
눈물이 마를 새가 없다. 정신분석 끝나고 나니까, 미뤄뒀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와… 이별이 이렇게 아플 줄 몰랐다. 이걸 미리 알았으면, 어쩌면 이혼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상실이라는 게 이렇게 깊고 날카로운 고통인 줄 알았으면, 그냥 답답한 채로 “그래도 남편 있으니까, 부모라도 있으니까…” 하면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어제 문득 알았다. 그동안 붙잡고 있던 게 ‘나’였다는 걸. 떠나간 아이들도, 남편도, 내가 자꾸 못 놓고 있었던 거였다. 그래서 힘들었던 거였다. 이제는 보내줘야겠다. 나를 위해서. 내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짧게 편지를 썼다. 뭔가 의식을 치르듯 15분 타이머 맞춰놓고, “희연아, 그동안 진짜 고생 많았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니…” 하면서 마음을 달래는 글을.
그랬더니, 그동안 내 안에 있던 불안과 공포가 조금은 사라진 느낌이었다. 물론 슬픔과 상실은 여전히 있다. 눈물은 펑펑 쏟아지고, 머리는 아프고, 목도 아프고, 콧물 줄줄 나오고, 숨도 잘 안 쉬어진다. 잠도 못 잔다. 몸과 마음이 다 꼴딱꼴딱 넘어가는 느낌인데, 신기하게도 이번엔 좀 덜 무섭다. 아, 이 고통도 내 몫이구나. 내가 안고 가야 할 다채로운 나만의 색깔의 고통이구나,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울고 잠 못 자도, 몸은 예전보다 덜 아프다. 일도 하고, 밥도 먹고, 심지어 폴댄스도 다닌다. 삶은 계속 돌아가고 있다. 그러니 나는 엄청 아프면서도, 안 살고 싶은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나로 잘 살고 싶어서 아픈 거다. 이 아픔과 같이 가야만 삶이 완성되는 것 같다. 자기 탐구의 계기가 되고, 나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그 과정에 서 있는 것 같다.
이 강도의 슬픔이 계속되면 어떡하지, 이렇게 고통스럽게 계속 살아야 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컸다. 도대체 왜 이혼을 해서 이러고 있나, 내가 원했던 삶이 맞긴 맞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슬픔 밑에 깔린 진짜 감정이 보였다. ‘불안’이었다. 그걸 알아차리니 한결 나아졌다. 숨통이 트였다.
나는 너무 약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막상 바닥까지 가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이더라. 너무 힘든 상황에서도 혼자 살 길을 찾아내는 사람.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그 믿음이 생기니 세상이 덜 무섭다. 작년 택배 사건 이후, 베트남 성추행 이후, 모든 게 무서웠고, 이게 싱글 여성이 살아가야 할 세상인가 싶어 혐오와 분노로 살아왔는데, 나를 믿고 나니까 ‘그냥 부딪히면서 살아가면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팔 다리 잘린 듯해도, 오체투지하듯 기어서라도 가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드디어 혼자 힘으로 에어컨 설치했다. 낯선 사람이 우리 집에 오는 게 두려워 미뤄왔는데, 숨고에서 만난 기사님 덕에 해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 해내자.’ 그렇게 마음 먹고 부딪히니, 생각보다 해볼 만했다. 이 세상을 조금은 믿어도 되겠다. 길을 찾으며 가면 되는 거다. 무서워도, 불안해도, 그래도 나는 가보려 한다. 기꺼이,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