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동안 의식적으로 나를 관찰해봤다. 보니까 엄마에게 시시콜콜 보고하고 이야기하고 싶어하더라. 뭘 먹는다. 먹었다. 어쨌다 저쨌다.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중독된 사이인 것이 분명하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나는 실제로 엄마에게서 연락이 오면 얼마나 적반하장인지, 정작 엄마에게 연락이 오면 생 난리를 친다. "나 좀 냅둬!!!" 라면서... 내 투사가 들어가서겠지.... 모녀지간의 동일시란 얼마나 지독하고 끈질긴지...
오늘 협의이혼서류를 접수했다. 새벽 4:20분부터 깨서, 누웠다가 108배를 하고, 겨우겨우 정신을 차려 운전을 해 법원으로 갔다. 오늘 이런 일로 남편을 만난다는 것도 안믿기고, 이 결혼생활을 끝낸다는 것도 안믿기고, 여러모로 몸이 벌벌 떨렸다. 심지어 먹은 것도 없는데 이를 닦다가 구역질이 나서 아주 힘들었다.
9시에 법원에서 만나, 협의이혼서류에 각자 이름을 써서 싸인을 하고, 준비해온 서류(주민등록등본,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등등)를 내고, 재산분할 합의서에 서로 도장을 찍고 나니 9시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이게 이렇게 쉽단 말인가!
법원에 간 것도 처음인데, 이혼 건, 그것도 나의 이혼으로 법원에 간 것이 정말 황당하고 믿기지가 않았다. 내내 몸이 벌벌 떨리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게다가 오랜만에 남편을 보니... 그간 '정신차리자'라면서 묻어놨던 감정이 올라와 매우 힘들었다. '아... 나 이 사람 정말 그리워했구나. 보고싶었구나. 나 이 사람 많이 좋아하네. 헤어져야 하는 거 알지만, 그래도 참 많이 정들고 좋아하는구나' 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지금도 아프다ㅠㅠ 며칠 앓을 듯...)
무튼 그렇게 각자 인사를 나누고, 집에 오는데... 정말 온갖 감정이 다 올라왔다.
"내가 무능해서, 남편이 나를 버리는거야. 내가 나로 살지 못해서, 누군가의 딸로만 존재해서, 그 부모만 보던 남편이 나를 떠나는거야" 라면서 버려진 슬픔이 굉장히 컸고, 무능한 나에 대한 수치스러움, 그간의 후회, 부모에 대한 원망 등등이 모두 다 올라왔다. 한 시간정도 운전해서 집에 온 게 다행이었다. 그런데도 집에 못 올라가고 지하주차장에서 펑펑 울다가 갔다. ㅠㅠㅠㅠ 에혀...
겪어야 될 걸 알고, 앓아야 할 것도 알지만, 그래도 아프긴 정말 아프다. 이걸 복귀해서 쓰는 지금도....
그리고 정신차리고 집에 들어왔다. 깨비때문에ㅜㅜ 내일부터 주말까지 엄마에게 깨비를 맡기기로 했다. 엄마에게 중독되어있는 만큼, 아빠에겐 인정받고 싶어 전전긍긍하는 만큼, 나는 깨비에게 너무 많이 얽매여있단 걸 발견했다. 깨비가 우리집에 온 뒤로 나는 내내 '집을 7시간 이상 비우면 안되. 강아지를 봐야해.' 하며 모든 삶을 깨비에게 맞췄다. 오죽하면 일도 시간제로 구하고, 파트타임으로만 했겠는가! 이게 다 깨비를 돌보고 싶어서였다. 나의 애착이 컸다.
나는 이제 내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그게 어떤 형태인지는 모른다. 그런데 더 이상 의존하면 안된다는 것은 안다. 전업주부, 임신대기상태의 사람, 깨비엄마, 누군가의 딸로 있던 시간 동안 나는 너무나 멈춰있었다. 그리고 멈춘만큼 겁을 먹은 상태라 모든 것이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르게 살아야만 한다.(그 부담이 엄청나지만, 나를 살살 달래고 있다) 또 다시 '편하게 살아. 너 편하라고 주는거야' 라는 말에 속아서는 안된다. 곧 40이 가까운 나이... 더 이상 엄마 아빠의 딸로 존재하거나, 개의 보호자로 살면서 내 삶을 살지 못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 시작으로 일단 직업. 지금하는 과외같은 거 말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로 했다. 아빠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도, 어떤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내가 나에게 증명해보이고 싶은거다. 아빠의 경제적 지원 없이도 내가 나 혼자는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요즘 서울시교육청 구인구직을 들락날락 거리고, 자소서를 쓰고, 토익공부를 하고 있다.(이혼하기 전날 밤에도 토익 기출문제 풀엇움) 그런데 집에선 이 강아지가 계속 놀아달라 밥달라 만져달라 애정해달라하고 관심을 요구해서 엄마에게 맡기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자발적으로 혼자가 되기로 했다.
그 동안 나는 내 부모라는 백그라운드를 나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좀 대단한 사람이라고 단단히 착각했다. 아빠의 재력이 내거라고 착각하고 살다보니, 모든 일이 시시했다. 아빠의 딸로 살면 굳이 밖에서 굽신거리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대신 아빠 앞에서면 늘 자격이 없는데 누린다라는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껴야했음) 실제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제법 다양한 곳에서 일했지만 짧게 짧게 일하고 '내가 뭐하러?!' 하고 그만뒀다.
하... 이게 내 업보다ㅠㅠㅠㅠ 쉬운 일만 하려고 했던 것, 일이 지겨워지거나 어려워지면 바로바로 그만둔 것. 이게 지금 내가 이렇게 스스로 무능력하다고 믿으며, 일을 하기 두려워하고 싫어하게 된 원인이다. 물론 전부 다 내 탓을 할 수는 없다. 구조적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었고, 임신과 유산이 반복된 것도 있었으니까... 부모도 내가 이렇게 망하라고, 임대수익을 준 것은 아닐거다.
그런데 결국엔 이런 일이 벌어졌다. 나는 무기력하고, 실패자 정체성을 갖게 되었고, 내 부모만 보던 남편은 한 몫 챙겨서 떠난다.
이젠 나에게 달려있다. 상상계에서 나와 실재를 마주했으니 그에 맞는 행동을 할 차례다. 더 이상 아이로 '누가 나 좀 구해주겠지. 가만히 있으면 도와주겠지' 하면 안된다. 하.. 아직도 이 마음이 계속 있어서 힘들다. 환상이 한 번에 깨지진 않나보다. 이혼도 아픈데, 홀로서기까지 하려니까 옆에서 누가 막 우쭈우쭈 좀 해줬음 좋겠다.(엄마 아빠 말고!!!!) 내가 막 특수한 상황에 있는 것 같고, 내가 제일 힘든 것 같아서 응원받고 싶다.
후아! 어렵게 아빠의 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까지 왔다. 그간 나의 삶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매우매우 슬프지만, 박우란 샘에 의하면 감정은 계속해서 재생산되니, 적극적인 실천으로 애도하기로 한다. 그 실천의 하나가 이런 글쓰기이며, 다른 하나가 내 욕망을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묻는 것이다. '나'로 살아온 기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찾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나마 발견한 것 하나는 지금 내가 깨비를 돌보는 것을 굉장히 버거워하고 있단 것이다. 이 아이와 떨어져있고 싶달까? 하루라도 맘편히 내 집에서 쉬고싶다ㅠㅠ 그래서 마음이 아프지만 당분간은 엄마에게 보내는걸로 결정내렸다.
또 다른 욕망은 '나도 남들처럼 제대로 살고 싶다!'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내 또래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일하는 뿌듯함을 느끼며 살고 싶다. 부모한테 소속된 상태로 '이렇게 일하면 나를 자랑스러워하겠지? 인정해주겠지?'란 마음이 아니다. 내 인생을, 내 나이답게 똑바로 살아보고 싶은거다. 그래서 열라 이력서 쓰고 공부중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내가 나를 인정하고 싶다.
아... 힘들었던 하루다. 정말 ㅜㅜㅜ 쉬운날이 없다. 이제서야 어른이 되는 과정을 하나하나 겪는다. 벌벌 떠는 내면아이까지 달래가면서... 정말 어렵디 어렵다.
이 뒤로 일년 간 쉼없이 달려온 나_
지금 열병으로 앓아누운 건 필연인거같다…
혼자 아파봤는데 괜찮다. 돌봐주는 사람이나 보호자 없이도 응급실에가서 씩씩하게 접수하고 수액도 맞앗다. 여전히 보호자란 란에는 당신의 번호를 썼지만…(나는 그렇게라도 당신과 연결되어있고 싶나보다)
출근을 못한다 알리고 열을 내리기위해 패치를 이마에 붙이고, 아이수팩을 수건에 싸서 안고있다.
혼자서도 잘하지만… 이혼과 이별의 감각에 슬픈 것도 사실이다.
너무 무리했다. 주말까진 이렇게 지낼 듯_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부모를 의식/무의식적으로 찾지 않게 된만큼 그들도 내 삶에 들어오지 못한다.
일년간 잇엇던 일 중 이게 가장 큰 프로그레스!
회복 잘 해서 훨훨 떠나보자
아픔을 통해 내려놓기와 포기를 배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