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이혼을 앞둔 기록 1

by Tess

다시 쓰기로 했다.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모든 것이 다 불분명하고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헤져있는 상태이지만 그래도 쓰기로 했다. 그나마 쓰는 것 하나만이 깨부숴지는 현실 속에서 나를 위한 일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믿고 있던 세계가 깨어지는 경험은 너무 아프다. 그리고 나의 경우처럼 진행되는 속도가 무척 빠를 때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이혼과 홀로서기(+깨비돌봄이란 지분도 조금 있음)라는 과제 앞에서, 불면과 온 몸의 진동, 불안, 불행, 우울 등 모든 것을 겪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런 일을 통해, 내가 나를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하나 둘 씩 보고 있달까?

전부다 내 마음이었다.


'너는 자격없어. 너는 누려서는 안되. 너는 가치없어. 너는 사랑받아서는 안되. 너는 무능력해. 너는 무능해. 너는 무가치해. 너는 재산도 뺏기고 이혼까지 해. 너는 실패자야. 너는 피해를 입히고 피해를 받았어. 너는 미안해 해야해. 너는 너무 문제가 많아. 너는 할 수 없어.' 라고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건 나였다.



엄마 아빠를 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나였다. 그들이 나를 놓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였다. 나다. 나였다. 일상에서 생각하는 것을 관찰하고 앉아있으면, 99%가 엄마 아빠에 관한 것임을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어제는 유학뽕에 취해, 미친듯이 알아봤는데... 그 이유가 다 부모님으로부터의 도피였다. 나는 내 삶의 가장 큰 결정도 부모님이란 큰 이유를 대야지만 하는 사람이다. 이걸 알아차린 뒤론 계속해서 멈추고 나에게도 돌아오고 있다. 끊임없이 '나의 욕망은? 히연이 너가 하고 싶은 것은? 너의 하루는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어떻게 주인으로 살 수 있을까? 라면서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답은 못찾겠움... )


그나마 '일을 해야겠다. 내가 부모나 남편없이 혼자서도 할 수 있다라는 경험을 나에게 줘야겠다' 라는 결정을 내린 것과, '글을 써야겠다' 라는 것 뿐, 그 외의 것은 그냥 답보상태다. 분석받을 때 녹음해온 거 들으면서, 분석받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내일은 이혼을 하러 간다. 실감이 안난다. 나는 본래 내 것이 아니었던... 아빠의 돈을 지키겠다며 남편을 떼내고 있다. 그는 그대로 이유가 있겠지_ 지금까지 살면서 그 어디에도 '나의 것'이 없다는 것은 굉장한 충격이다. 나는 0세다. 새싹수준이다. 여기서 아등바등 길을 찾고 있다. 0세가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 헤어지는 충격, 혼자가 되는 두려움, 버려지는 슬픔과 아픔은 제법 크다. 나는 이것을 꾸역꾸역 참았다가 터뜨리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렇게 내일이 오기를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고 있다. 내일이 지난다고 과연 달라질까?



작년의 나는 이런 마음으로 글을 썼었구나... 작년의 나는 이혼서류 접수를 앞두고 이런 마음이었구나. 그때는 엄청나게 막막했는데... 1년 후 나는 정말 많이 왔다. 더 이상 힘들어도 엄마, 아빠가 생각나지 않고 전화해야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내 일, 내 삶에 집중하는 힘이 커졌다. 다른 남자들도 만나고, 하고 싶은 걸 한다. (아픈데 찬물에 밥말아서 오이지가 먹고 싶길래, 마켓컬리에서 밑반찬을 주문했다! 엄마를 찾는 희연은 갔다)

그럼에도... 몸이 먼저 아는지, 열병이 걸렸다. 1년 전 오늘이, 이혼서류 접수날이라는 걸 알자마자 눈물이 났다. 자유롭다, 힘이 길러졌다 하다가도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는 여전히 힘이 쫙 풀리고 눈물이 난다.

밤새 열이 나서 끙끙거리다가 출근했는데, 해열진통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어서ㅜ 수업을 다 한 뒤 조퇴를 찍고 병원에 갔다. 주사를 맞고 약을 타와 집에 와서도 내내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여전히 불분명한 곳을 내딛으며 하루하루 살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괜찮냐, 너무 무리했나보다 푹 쉬어라"라면서 연락을 주는데, 거기에 너는 없다. 아이러니하다 참. 결혼생활 때보다 혼자된 지금이 적당한 거리에서 더 많은 챙김을 받는다. 당신은 주지 못한 그 따뜻함과 채움을 1년도 채 알지 못한 사람들이 주고있다. 기꺼이 받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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