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잘 지낸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억압의 목소리에서 벗어난 그 해방감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만 37세 여성의 에로스가 터졌달까? 마음은 사춘기 소녀 같은데, 몸은 뻔뻔해진 것 같다. 그 상태로 이 남자 저 남자 잘 만나고 다닌다. 그 맛이 아주 쏠쏠하다.
올해 초만 해도, 누가 관심만 보여도 “제가 여자로 보여요?” 하며 되묻던 내가, 이제는 내가 여자로 보이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이왕이면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어, 옷도 악세사리도 챙겨 입고 네일과 페디도 받고, 짧은 머리스타일도 깔끔하게 유지한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던 희연은 이제 없다. 대충 머리 묶고, 운동복만 입으며 ‘누구한테 예쁘게 보이나’ 하던 희연도 가버렸다. 지금 내가 입는 옷은 내 몸에 어울리고, 나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그것이다.
이렇게 내가 나의 길을 가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부모는 여전히 나를 잡아두느라 애쓴다. 아버지는 여전히 체리 타령을 하며 온다고 했고, 나는 “괜찮다, 공개수업 준비 때문에 바쁘니 다음에요”라고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어제, 아무 연락도 없이 그냥 우리 집 앞에 찾아온 것이 아닌가. 다행히도 나는 그 시간에 미용실에 있었다. 딸이 보고 싶어서 오신 마음은 알겠지만, 내 입장에서 원하지도 않은 것을 안기는 것, 그것도 약속 없이 무작정 집 앞까지 오는 건, 분명한 폭력이자 침범이다. 상식 밖의 행동이다. 나는 이제 그런 일에 더는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님의 전화도 받지 않고, 답장도 하지 않으며 하루를 조용히 버텼다.
요즘 내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일은, 나를 향한 타인의 욕망들을 포기시키는 일이다. 부모도 타인이다. 자식에게 소유권을 주장하는 부모의 욕망을 멈추게 하고 있다. 나는 내가 나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계를 세운다. 나의 몸을 향한 남자들의 소유욕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남자를 내가 고른다. 기준은 나다. 만나는 시기, 잠자는 장소, 모든 선택은 나의 것이어야 한다. 나는 주체로서의 섹슈얼리티를 배워가는 중이다.
직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내가 맡은 반의 학생들은 ‘입을 닫는 법’부터 배운다. 아무리 영어 교육이 발화를 목표로 한다 해도, 우리 반의 학생들은 멈추는 법부터 익혀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다 하지 않는 것, 참는 것, 선생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싶어도 잠시 멈춰보기. 그런 훈련을 시킨다. 학교에서 진짜 배워야 하는 건, 이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체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작은 좌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말이다.
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늘 다른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정작 내 것은 포기하고 살아왔다. 특히 부모의 요구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지키고 싶은 것들을 너무 쉽게 내어줬다. 내 몸과 마음, 생각, 그리고 삶 전체에 대해 ‘이건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시간들. 이제 나는 그것들을 날카롭게 회복 중이다.
my body, my mind, and my cho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