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어떤 식으로든 ‘기댈 곳’을 찾으며 살아왔다. 혼자가 되면 무서웠고, 뭔가 일이 생겼을 때는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찾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알리고, 같이 해결하고 싶었다. 아니 상대방이 이걸 해결해주길 바랬다. 나는 이런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왜 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았지?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 하면서 의존하고 다른사람에게 맡겨버린 나를 미워하고, 쭈그려뜨리고, 패버리고 혐오했다. 그런데 이건 부모의 모습이었다. 어디 아프거나, 집에 문제가 생기면 이걸 다 온 동네방네 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내 부모다.(특히 아빠.. 아빠는 이미 내 이혼 사실을 한 달도 되지 않아 친척들에게 다 알렸고, 덕분에 작년 추석때 안감ㅋㅋㅋㅋㅋ 땡큐 파더)
내가 의존적인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부모가 늘 그렇게 살아왔고, 고통을 토로하고 떠맡기며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걸 반복하고 있었던 것 같다. 몸이 아프거나,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알아달라고 하고, 도와달라고 하던 방식말이다. 사실은 그게 내 문제였고,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는데도, 나는 자꾸 그걸 누군가- 특히 남편이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대신 해결해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요구하면서 내 삶을 조각내어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고…. 아픔과 고통을 빌미로 타인들을 내 인생에 들인 결과, 지금은 어떤 도움이든 받는 것이 두렵고, 받은 뒤에는 늘 뭔가 빚졌다는 죄의식이 든다.
이런 거래같은 관계의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것은 부모다. 나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걸 ‘내가 의존해서 그래’라면서 뭉뜽그려 표현하며 나를 탓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건 ‘의존’보다는 ‘지배와 복종, 조작’에 가까운 역동이다. 엄마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퍼붓고, 그 뒤에 와서는 당연하다는 듯 요구했다. “이만큼 했으니, 너도 이만큼은 해야지”라는 식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요구를 그대로 다 들어주며 살았다. 그게 어린 희연이 생존하는 방식이었을거다. 할머니 욕, 아빠 욕, 엄마 친정 욕, 내 욕 등을 들어주고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 그렇게 엄마 옆에서 할 일을 했다며 존재하는 나.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나를 얼마나 꾸겨넣어야 했던 걸까… 저런 말을 들을 때 자기 주장 한 번 못 펼쳐보고, 엄마편만을 들어야 했던 내가 너무 너무 짠하다. 이렇게 당연한듯 엄마의 요구를 30년 넘게 들어주던 나는 결국 터져버렸고,, 그렇게 내 안의 쌓였던 것들이 폭발처럼 쏟아져나왔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가장 분노하는 건, 그 구조 속에서 전남편에게 너무 많은 역할과 권력을 줘버린 과거의 나다. 나는 전남편을 철썩같이 내 편, my person이라고 믿었다.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아버지와의 갈등을 직접 감당하기 힘들었던 나는 “당신이 나 대신 좀 아빠에게 얘기해죠. 아빠를 맡아죠” 라면서 부탁했다.(내가 해야될 것을 그에게 맡긴거지. 이게 문제다.) 그는 기꺼이 이걸 들어줬고, 나는 그런 그에게 엄청난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 내 자리를 넘겨줬다. 그는 이 집안과 구도에서 점점 더 큰 권력을 쥐었고,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나는 그를 진심으로 믿었고, 내 편이라고 여겼다. 그가 부모사이에서 쿠션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꿰차버린 사람이었다. 따지고보면, 그는 외부인이고 사위라는 번듯한 역할이 있는데, 어느 순간 그는 ‘아들’의 위치로 올라와 ‘딸’인 나와 경쟁을 하고 있더라. 그들의 자식은 ‘나’인데 말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지 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그를 아들의 위치로 올린 것조차 내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부모와 그들의 욕망이 짜놓은 구도였을 지도 모른다. 그들이 짜놓은 판에서 나는 그들의 맘에 드는 선택을 내리고, 눈치보며 살았던 거지. 아들을 갖고 싶었던 부모에게 기꺼이 아들을 주고, 나는 밑으로 내려 앉으면서 이를 지켜보고…. 이런 시각에서 보면, 내가 전남편에게 생활비를 50-80만원만 받으면서도 빨래, 청소, 요리를 비롯한 온갖 집안일을 다 하고 그 친구 운동하는 거 돈 내주는 등 과하게 잘해준 것이 이해가 된다. (또 부모가 우리의 이혼을 그렇게 반대한 이유도 알겠음. 아들을 강제로 잃어야 하니, 얼마나 발악을 했겠는가! 그 상처는 또 오로지 내가 다 받아야했지만...ㅠㅠ) 내가 아래의 위치에서 그를 보필하는 것이 부모가 원하는 것이었으니 그 욕망을 들어준 것이다. 왜냐? 평생동안 나는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것밖에 아는 생존 방식이 없었으니까!!!! 아휴 시발. 내 삶인데 내가 얼마나 소외가 되어있었던지… 결혼생활 전체가 다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에 빠져 골라 데려온 남자인 줄 알았는데, 부모 입맛에 맞는 아들을 갖다 받친 꼴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무수리처럼 살고…. 유산까지하고…. ㅜㅜㅜ (이렇게 산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오늘도 펑펑 울었다.) 그렇게 나는 고립되고 소외된 채, 내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한 대가를 오롯이 치뤄야만 했다. 사람 하나 잘못 믿은 게 아니라, 구조 전체가 나를 이용만 하는, 소진시키는 시스템 속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유산을 겪었다. 첫 번째 유산은 그저 충격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유산은, 그 모든 구조를 내 몸이 더는 감당할 수 없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이 일이 반복되면 나는 죽겠구나'라는 절박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렇게 “무조건 변해야 한다”는 강한 확신이 그때 찾아왔다. 사람들이 말하는 ‘상실’ 이상의 것이었다. 나는 진짜로, 몸과 마음이 동시에 무너졌고, 그 무너짐 속에서 살기 위한 결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남편은 ‘희연아 너 임신되네. 우리 다시 시도해보자’ 라는 말을 했고, 엄마는 시험관 이야기, 난자냉동 이야기(이건 이혼하고 나서도 함ㅋㅋㅋㅋ 독하다 미숙씨)를 꺼냈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고통의 중심에 있을 수 없었다. 내 감정은 무시됐고, 내 선택은 수 많은 타인의 욕망으로 덮였다. 나는 이 가족이란 사람들, 구조 안에서 한 번도 인간 안희연으로 존재해 본 적이 없다. 이들은 나를 존재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나는 몸도, 마음도, 존재 자체도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해내야만 의미를 가졌다.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참혹하고, 비극적이다.
이혼은 결국 그런 자리에 나를 더 이상 그런 폭력 속에 두지 않겠다는 ‘해방의 선언’이었다. 갑자기 이혼이 진행되어서, ‘너무 섣부른 결정이었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사이에 불륜이나 도박과 같은 그런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는 갑자기 뭔가가 싫어졌던 게 아니다. 너무 오랫동안 눌러놨던 것들이 마침내 터져버렸다. 내가 이혼을 빠르게 결정한 건 그만큼 오래 참고 견뎠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남편도 자기의 몫을 딱 챙기고 입 싹 닦고 지내는 것을 보면… 나와의 사이에서도 사랑이 아니라, 거래를 하고 있었던 거다. 거래와 조종. 내가 아닌 내 부모를 보고 산 삶. 그게 사실이자 진실이다.
지금 나는 그 모든 시간들을 처음으로 내 언어로 말하고 있다. 분석자 없이도, 어떤 정답도 없이도, 나는 내 마음의 구조를 들여다보고, 거기서 진실을 하나씩 끌어올리고 있다. 진실은 졸라게 아프다. 의존성이라는 키워드에서 시작된 것이 이런 아픈 진실을 보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외면하지 않았다. 봐야 하는 것을 보는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알고 있으니까. 그래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니까.
나는 정말 애썼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이제는 내가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정말 고생 많았어. 정말 잘 살아냈어. 너무 애썼어.
그리고 이제는 너가 원하는대로 살아도 되. 너의 인생을 맘껏 너가 원하는 것을 하며 누려도 되. 너는 그럴 자격이 충분해. 너의 의존성이 문제가 아니었어. 이건 조종과 지배 속에서 살아남은 너의 이야기야. 자랑스럽다. 희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