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앞에서, 나는 더 자유로워졌다

by Tess

수요일부터 열이 뻗치듯 올랐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바람만 스쳐도 살갗이 아파서 끙끙거리는 중이다. 이 불볕더위에도, 나는 긴팔에 긴바지, 수면양말까지 신고 있다. 고열이 오면 몸이 떨리고 오한이 나니까. 지금 내게는 한여름의 더위가 아무 상관없다.

해열제를 먹어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목요일 새벽엔 혼자 응급실에 갔다. 걸어서 5분 거리의 병원이지만, 어떻게 걸어갔는지 기억도 없다. 찌글찌글 울다가 겨우 갔던 것 같다.


보호자 연락처를 쓰라는 말에, 부모님 번호는 쓸 수 없었다. 그 순간 전남편 번호를 떠올렸다. 그렇게라도 너와 닿아있고 싶었나보다. 여전히 너는 내 보호자여야 한다고 믿고 싶었던 것일까.

결국 주사도 맞고 링거도 맞고, 몸을 질질 끌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금요일인 오늘까지 나는 출근을 못한 채 침대에만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사 오고 처음으로 이렇게 오래 누워 있는 것 같다. 작년 5월 말, 별거를 시작한 이후로 나는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무언가에 쫓기듯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과외, 필라테스 레슨, 토익공부, 자소서와 면접 준비 등등… 나를 쉬게 두지 않았다. 재취업을 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은 과외, 운동, 정신분석. 쌍문동으로 이사 온 뒤에도 집에 일이 많았지만, 밤 10시 전에 침대에 눕는 일은 없었다. 책, 운동, 강의, 소개팅까지. 쉬는 것도 계획표에 넣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어떤 ‘미지의 상태’가 닥쳐올까 두려워서 계속 움직였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몸이 완전히 멈췄다.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알게 됐다. 이렇게 아픈데 혼자인 건, 처음이라는 것을!!!


어릴 적엔 엄마 아빠가 있었고, 결혼 후엔 남편이 옆에 있었으니까.

지금은, 아파서 쉬야 한 번 하려면 힘을 얍 주고, 밥 한 끼 하려면 ‘히연아 할 수 있어’라고 다짐을 해야 하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편안하다.


드디어 진짜로 ‘쉬는 사람’이 된 느낌이다.

아무도 보지 않아서일까? 혼자 있는집에 어떤 판단의 시선도 들어오지 않아서일까?

‘나 괜찮아. 걱정하지 마’ 같은 거짓된 안심을 할 필요가 없어서일까?

혼자 아픈 게 이상하리만치 자유롭다.


‘이렇게 몸이 약해서야… 어떻게 살겠니?’라는 부모의 걱정어린 말,

‘넌 돌봄이 필요한 존재야’라는 못마땅한 판단의 시선,

아픈 나를 문제삼는, 나의 약함을 관리하려는 시선들.


그런 시선이 없는 지금, 나는 편안하다.

가장 아픈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은 결국 부모다.

그들이 알게 되면, 다시 내 삶 안으로 들어올 테니까.


나는 몸이 약하고 예민하다. 부모는 그걸 문제로 여겼다.

튼튼하지 못해 노동력도 부족하고, 아이도 못 낳고, 약값이 많이 드는 사람. 돌봄이 필요한 존재.

그런 틀 안에서 나는 자랐고, 나의 약함은 곧 열등함이 되었다.


전남편도 그 틀의 연장이었다.

크로스핏을 강요하며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

누워 있는 나를 귀찮아하던 사람.


그런데 부모와 멀어지고, 이혼하고, 지금 이렇게 누워보니 오히려 이 약함이 고맙다.


몸이 아픈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걸 겪어봤기에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

약한 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알기에, 그런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소수자 감성’은 바로 이 신체적 약함에서 온다.


예민함도 마찬가지다. 성감대가 여기저기 발달해 있다. ㅋㅋ

예민함 덕분에 나는 삶을 깊이 깊이 느끼며 살 수 있다. 세상을 다채롭게 바라보는 필터가 탑재되어있다.

이건 단점이 아니라,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능력이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5살짜리 히연을 15살쯤 되도록 키웠다.

이제 15살 히연은 아프다고 나를 돌봐달라고 아무에게도 요청하지 않는다.

응급실도 혼자 가고, 주사도 맞고, 약도 먹고, 필요한 서류도 혼자 뗀다.

배달앱을 켜서 제 입맛에 맞는 걸 골라 먹는다.


나는 그렇게 자기돌봄을 실천하고 있다.

잘 컸다. 다행이다.


아파서 못 나온 날, 직장의 샘들과 친구들이 계속 안부를 묻는다.

내 빈자리가 이렇게 컸던가?

작년까지만 해도 내 세계엔 남편 한 사람과 부모뿐이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이 사람, 저 사람, 이 남자, 저 남자의 관심을 받는 것도 제법 재미있다.

진짜 아프고, 혼자 아픈 건 처음인데도 이상하게 외롭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혼자 아플 수 있어서 다행이다.

팔에 링거와 항생제를 맞느라 바늘 자국이 한가득인데도, 진심으로 괜찮다.


정말로 오히려, 좋다. 혼자라는 것이 이렇게 자유로울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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