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쏟아붓던 방식에서 멈추다

쏟아붓던 감정, 이제는 나의 몫으로_

by Tess

요 며칠 편도염으로 심하게 앓았다. 고열에 시달리다 혼자 응급실까지 다녀왔고, 해열제를 맞아가며 누워만 지내야 했다.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정말이지, 아픔이 축복이라는 말은 이럴 때 와닿는다. 요즘 다시 잠도 오지 않는다. 분명 어떤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반신욕을 하며, 내 안의 외로움과 결핍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최근 들어 자주 떠오르는 화두다. 한 번도 완전히 채워진 적 없는 나의 결핍. 그 거대한 외로움은 대체 어떻게 품고 살아야 할까. 나는 이걸 어떻게 다루며 살아가야 할까.


나의 부모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언제나 조건적인 사랑을 주었다. 아빠는 내가 살아오는 동안 얼마가 들었는지 항목별로 줄줄이 외우는 사람이고,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서 나를 수단 삼아 무언가를 얻어내는 사람이었다. “공짜는 없다”, “너는 받은 만큼 해내야 한다”는 메시지는 어릴 적부터 나를 지배했고, 그건 지금까지도 깊숙이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누군가의 친절도, 선의도 무섭다. 내 몫 이상을 받았다는 느낌은 바로 빚으로 전환된다.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잘하지 못하면 다 무너질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한다. 그런 내면엔 늘 한 가지 감각이 있었다. 한 번도 온전히 사랑받은 적 없다는 감각. 내 존재 자체로 인정받은 적이 없다는 감각. 나는 늘 차갑고, 공허했고, 텅 빈 느낌이었다. 쓰러질 듯 위태로운 상태로 존재해왔다.


이 결핍은 내가 살아온 관계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전남편을 끝까지 붙잡았던 것도, 그가 없으면 안 될 만큼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내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핍의 고통을, 외로움의 무게를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외로움이 흘러넘친 결과였다. 나는 그걸 다룰 줄 몰랐고, 엄마에게서 배운 방식대로 행동했다. 엄마는 자신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딸인 나에게 끊임없이 토로했고, 나는 그것이 정서적 소통이라 믿었다. 나 역시 나보다 약하다고 느껴지는 존재에게 내 감정을 쏟아내는 방식으로 외로움을 처리해왔다. 그게 바로 전남편이었다.


그가 군대에 있던 시절,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매일같이 긴 편지를 보냈다.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는 무엇이 힘들었는지, 끊임없이 써서 보냈다. 이제는 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외로움이 흘러넘친 미숙한 방식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했던 방식. 내가 전남편에게 했던 방식. 그것은 감정 전가였고, 반복된 폭력이었다.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폭력은 폭력이다.


다행히 나는 그 관계를 끝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힘이 생겼고, 놓아주는 용기도 생겼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 관계든 의식적으로 바라보려 애쓴다.

“이 감정은 내 몫인가, 아니면 상대에게 전가하려는 시도인가?”

“지금 내가 기대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욕망은 진짜 내 안에서 비롯된 건가, 아니면 결핍이 만들어낸 환상인가?”

이런 질문들을 계속 던지며 멈추고, 다시 바라본다.


물론, 나는 지금도 누군가와 섹슈얼한 욕망을 나누고 싶어 한다. 어플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몸을 섞고, 스킨십을 나눈다. 그 안에는 당연히 외로움이 있다. 육체적으로 물리적으로 외로움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행위가 내 근본적인 결핍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런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 외로움은 여전히 내 것이고, 결핍 또한 내 몫이다. 그건 결국 내가 끌어안고 가야 할 숙제다.


그래서 나는 외로움과 결핍을 없애는 대신, 데리고 살아가기로 한다.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고, 어딘가에 버리려 하지도 않는다. “그래, 이건 내 안에 있었던 것이구나” 하고 인식하고, 잘 돌보면서 같이 가는 것.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정체를 잘 파악한 뒤, 그때그때 필요한 걸 스스로에게 들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완벽히 채워지지 않더라도, 내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일. 그건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고, 내가 나에게 해주어야 할 일이다.


“이건 내 몫이다. 내가 안고 가야 한다. 기꺼이 그렇게 살겠다.”


이건 포기가 아니다. 내 삶을 누구에게도 전가하지 않겠다는 의지이고, 다시 내 손으로 돌려놓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이 선언은, 23살부터 내 고통을 묵묵히 들어주어야 했던 전남편에 대한 작고 조용한 사죄이기도 하다. 동시에, 나 자신에게 하는 약속이기도 하다.


욕조 안에서 머리까지 푹 잠기며, 소리내어 말했다.

“희연아, 사랑해.”

진심이다. 나는 나의 모든 면을 사랑하기로 했다. 진심으로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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