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편 2

by Tess

요즘 A는 부쩍 충동적이다. 퇴근 길에 '아 머리 자르고 싶어' 하고 아무 미용실이나 들어가 짧은 단발로 자르질 않나... (원래 A는 미용실 하나도 꼭 알아보고 예약해서 가던 사람이다. 그곳이 맘에 들면, 바꾸지 않고 한 곳만 쭉 간다) 네일샵에 들어가 라즈베리 색을 손톱에 입히기도 한다. 9년전 결혼식을 올릴 때 네일을 받고, 그 뒤로 단 한 번도 이런 종류의 꾸밈을 하지 않았던 A는 쌍문동에 와서 많은 것들을 즉각적, 충동적으로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A에겐 새로운 경험이다.

그런 그녀는 어제 폴을 타고, 집에 가던 길 또 충동적으로 사우나에 갔다. 작년 10월 이사오자마자 온수가 나오지 않아 갔던 그 곳에 또 간 것이다. 시장골목 끝 1층에 위치한 작디 작은 그 곳에... ^ ^ 캐비넷부터 신발과 옷을 모두 다 함께 넣는 곳, 전자키가 아니라 직접 열쇠를 돌려야 캐비넷을 열 수 있는 그 곳에 갔다. 무려 아침에도 씻고 나왔는데 말이다. 따뜻함과 어떤 지짐이 그리웠던 A는 무작정 사우나에 맨몸으로 갔다.

'비누로 대충씻고, 땀빼고 가야지'란 마음으로 간 A인데, 세신사가 맨 몸인 그녀를 알아보고는 때타올과 샴푸를 슬쩍 건네준다. A는 이런 오지랖을 가장한 배려에 웃음이 나온다. 대놓고 줄 수는 없으니 '이거, 빨간 거 샴푸'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뭐든 주고 싶어하는 세신사의 마음이 느껴져 탕에 몸을 담그기도 전부터 따뜻해진 A다.

사우나와 온탕 속 이야기는 여전하다. '언니는 몇 살이에요?' 라고 묻는 72세의 할머니. 상대방은 84세란다. 30대 후반의 A로써는 상상도 가늠도 되지 않는 몸이자 나이이다. 그 나이의 삶은 어떨가? 무릎과 고관절이 멀쩡하면 자랑거리가 되는 늙은 몸. 그 안에서도 나이와 건강이라는 권력이 존재한다.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선 욕망없는 그 늙은 언니들이 귀엽다. ㅎㅎㅎ

A는 세신사의 친절도 고맙고, 겨울동안 찌뿌둥하게 묵혔던 때도 밀고 싶어서 세신을 받기로 한다. 목욕비 7천원, 세신비 23000원. 3만원이면 꿀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_

열쇠키를 맡겨놓고 탕에서 몸을 불리고 있는데, A의 차례가 되었는지 "아가씨"하고 부른다. A는 속으로 웃는다. 10월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가 '아가씨'란 호칭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달라졌기 때문이다. 10월의 그녀는 유부녀의 세계에서 이혼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가씨'란 호칭에 매우 어색해했다. 30대 후반의 아이가 없는, 유산을 한, 아이가 없을, 이혼한 처지의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아가씨인가? 아가씨로 보이나?'하면서 얼마나 난처해했는지 모른다.

약간은 뻔뻔해진 2025년 5월의 A는 '네!'하고 벌떡 일어나 세신사의 베드로 향한다. 내가 뭘로 보이든 무슨 상관이냔 마음이다. ㅎㅎ 아가씨든 돌싱이든 유부녀이든 호칭이 무슨 소용이냐라는 생각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어떤 정체성으로 보느냐가 중요하지!

그렇게 베드에 누워 눈을 감고 세신을 받는데, 세신사는 A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팡팡 소리내어 치면서, 무슨 운동을 하느냐고 묻는다. A는 호탕하게 웃는다. 비쩍마른 몸에서, 그나마 살이 있는 곳이 허벅지와 엉덩이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살을 없애고 싶은 부분이 어른의 눈에는 귀엽구나, 보기 좋게 보이는구나' 싶어서 그때만큼은 토실한 자신의 엉덩이를 긍정한다. ㅎㅎㅎ

관찰자의 모드와 주인공의 모드, 혹은 피해자의 모드를 왔다갔다하는 요즘_ A는 이런 자신을 보며 삶의 파도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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