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집편

by Tess

A가 이사온 쌍문동은 점집들이 많다. 말 그대로 '선녀보살, 애기보살, 박수, 장군 모시는 집, 무슨무슨 점집, 용한 곳' 등등 대놓고 신점과 용점을 본다는 점집들이 보인다.


모태신앙으로 천주교 신자였던(과거형이 중요하다!) A는 동네 한 복판에, 그것도 다세대 주택들 사이에 있는 점집들이 신기하다. 오래된 동네에 구옥들 사이에 빨간색과 하얀색 깃발을 달고 있는 무척 영세해보이는 점집들... 걸어서 출근하는 A는 매일 아침 적어도 3-4군데의 점집들은 지나가며, 호기심을 키운다.


그만큼 쌍문동이 용한 곳인걸까? ㅋㅋㅋㅋㅋ 기가 쎈 걸까? ㅋㅋㅋㅋ 하며 A는 여기에 정붙이고 살 이유를 갖다붙여본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저 곳엔 누가 가는 것일까? 절실한 사람들? 답을 찾고 싶은 사람? 원하는 게 분명한 사람? 그만큼 그걸 이루고 싶은 사람?


이런 질문들이 이어지자 A는 상상 속에서 점집을 찾아가본다. 애기, 장군, 선녀 등을 모신다며 제사상을 차려놓은 점집의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무섭다고 느끼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물어볼까? 사주를 까야겠지? 복채는 얼마를 준비해야하나? 예약제라던데... 뭐라고 해야하지? 가면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맞출까? 내가 이혼했다는 것을? 내가 두 번이나 유산을 했다는 것을 알까? '너! 혼자살지?! 얼굴에 근심이 많네. 부적을 써야해' 라면서 냅다 내리꽂을까? 혹은 '너 살이 잔뜩 끼었어(실제로 사주에 백호살만 3개다. 갑진년인 올해엔 1개 더 늘음;) 힘들겠네' 라고 할까?


이런 상상을 하자 A는 더 싱숭생숭 해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가 흐릿하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혼을 해서 괴롭냐 라고 한다면 yes라고 대답하겠지만 그렇다고, 또 죽고싶을만큼 우울하냐라고 묻는다면 아니다. 단지 저 외로움과 고통의 순간(주로 심심하면 옴)이 오면 무방비로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뿐이다....


A의 상상은 이어진다. '저는 얼만큼 더 아파야 괜찮아지나요? 좋아지긴 하나요? 저는 어떻게 살까요? 행복할까요?' 라는 것밖에 질문거리가 없는 자신이 보인다. 과연 무당 혹은 박수라고 저걸 알까? 내 맘에 드는 답변을 줄까? '아! 알겠어요! 너무 감사해요!' 라며 통쾌하게 점집을 나올만한 말을 해줄까? 신을 모신다는 사람, 그걸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은 충만하게 살고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풉하고 웃음이 나오는 A다. '그래, 안가겠네. 나는 신을 모시는 세계,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여기에 답을 구하진 않을 것 같아. 나는 알고 있어. 내 안에 답 혹은 길이 있다는 것을... 단지 보기 어려워 할 뿐이야(그리고 이런 나도 괜찮아. 너무 자연스러운 마음이야.)' A는 지금껏 안가본 길이기에 두려움과 고독에 눈물을 흘리기 일쑤지만, 그런 자신이 이런 결심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짠하면서도 자랑스럽다.


A의 안에는 겹겹이 쌓인 때와 어둠, 피딱지가 뭉쳐져 굳어버린 상처, 울음, 분노, 천박함, 수치심, 증오, 분노, 미움, 미친년, 미친놈, 버리는 자, 버림받은 자, 취약한 자, 강한 자, 죽음, 생명, 그림자 등등이 있다. A는 누굴 모심으로써 이런 것들을 씻어내는 대신, 혹은 모시는 자를 찾아가 위로를 얻는 대신, 혼자 작두를 타기로 결심한다. 마치 성해나의 소설 '혼모노'에 나오는 박수처럼 말이다. 소설 속에서 신기를 잃은 중년의 박수는 남의 굿판에 와서 자신만의 작두를 탄다.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라는 소설의 문장처럼 A는 가벼워지고 싶다. 가짜든 진짜든 그게 내 꺼이기만 하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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