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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한커피 Sep 10. 2020

남편의 어깨 사용 보고서

맘대로 아프지도 못 하는 가장, 배추전으로 위로 하는 밤

"계속 아프면 수술을 해야 한대"

"뭐? 그럼 회사는?"

병원을 다녀온 남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속내를 내비치고 말았다. 남편의 어때 통증은 오래되었다. 무릎의 통증만큼이나 말이다. 몇 달,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팔을 움직일 때나 들어 올리려고 할 때 아프다고 했다. 남편의 나이 오십이 넘었다. 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대로 '오십견'이란 진단을 내리고 그 나이에는 당연히 찾아오는 증상이라 했다.


그 이후에도 가끔씩 아프다고 했고, 몇 달 전에는 동네 병원에 찾아가 약을 타다가 먹었다. 약이라고 해봐야 진통제이고,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했는데 계속되는 통증에 전문 병원을 찾게 되었고, 진단을 받았다. 그 진단을 받고 초음파에 MRI를 찍고 계속 약을 먹었다. 의사는 진단명을 내리고, 약을 처장 해주면서 무조건 아픈 팔을 쉬게 해야 한다고 했다. 어깨가 아프니 사용을 자제하고, 특히 무거운 것을 들지 말라고 했다.


남편은 현장에서 이십오 년을 넘게 근무를 하고 있다. 유리관을 녹여 주사액 용기를 만드는데 유리관을 하루에도 몇십 번을 날라야 한다. 무거운 것을 들고 나르니 몇 년 전에도 무릎이 탈이 나기도 했다. 작년부터 아팠던 어깨는 사실 충분히 예상했다. 수십 킬로 유리관을 어깨에 걸치고 오랜 시간 일했으니 써먹어도 너무 써먹었다. 오른쪽 어깨가 아프니 얼마 동안은 왼쪽 어깨를 사용했고, 익숙지 않은 동작이니 이젠 양쪽 손목도 시큰거린다.


그러다가 남편이 얼마 전 병원을 다녀온 후 계속 통증이 있으니 의사가 수술을 권했다는 말에 속내가 툭 튀어나온 것이다. "그럼 회사는?"이라는 말속에는 수술하면 회복하는 동안 어깨를 쓰지 못하니 출근을 못할 것이고, 수술비도 문제고, 쉬는 동안 생활비는 어떡하라고... 하는 말이 들어 있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어디 있을까. 특히 남편은 그동안 아픈 노모를 모시느라 내 눈치를 많이 보면서 집안일도 잘해줬다. 지금은 어머님의 요양 병원비로 알게 모르게 내 눈치를 본다. 난 알면서도 요양 병원비 내는 걸 큰 유세처럼 여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편은 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꺼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프다는 소리도 제대로 못하도록 내가 만든 것일까. 가뜩이나 아픈 어깨의 통증을 덜어주지는 못할 망정 가장의 책임을 얹어 힘들게 한 것은 아닐까.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고 상처 받았을 남편을 생각하니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 후회가 되었다.


오후에 얼른 마트에 나가 배추를 한 포기 사 왔다. 배추를 사등분을 해서 굵은소금을 뿌려 절여 두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배추전을 구어야겠다. 날씨가 기온이 높으니 배추가 금방 절여졌다. 배추를 한 잎 떼어서 반을 접어 보았다. 부러지지 않고, 휘어진다. 이때가 제일 잘 절여져 알맞은 때다. 찬물에 휘휘 헹구어, 배추 밑동을 잘라내었다. 큰 양은 볼에 물 가루를 개었다. 절인 배추에 간이 되어 있으니 밀가루 반죽에는 소금을 넣지 않아도 된다.



경기도에서 태어나 계속 자란 나는 배추전을 알지 못했다. 잘 익은 김치를 잘게 썰어 오징어를 넣거나 없으면 그냥 김치만 넣어 반죽에 섞어 부치면 신맛이 적당히 올라와 맛있는 김치부침개가 된다. 남편의 고향인 경상북도에서는 김치전 대신 배추전을 먹는다고 한다. 절인 배추를 하얗게 부쳐낸 전을 보고 황당했다. 처음에 그 밍밍하고 심심하고 특징 없어 보이는 배추전을 길게 뜯어먹는 남편을 포함한 시댁 식구들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하지만 한 장 두장 먹어보고는 나도 배추전의 매력에 빠졌다. 그 밍밍하고 심심하고 자극적이지 않는 그 맛을 오직 하얀 배추가 채워주는 게 배추전이었다.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춰 전을 부쳤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결대로 찢은 배추를 몇 가닥 올렸다. 이때 절대 기름을 많이 두르면 안 되고, 밀가루 반죽을 먼저 넣어도 안되고, 배추를 칼로 잘게 자르지 말고 결대로 길게 찢어 넣는 게 포인트다. 그때 밀가루를 한 국자 떠서 배추와 배추 사이를 붙게 하는 용도로만, 밀가루 반죽을 조금만 넣어야 한다. 많이 넣으면 배추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이 모든 게 시어머님한테 이십 년 동안 배운 노하우다.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던지. 그 결과 지금은 남편도 인정하는 배추전 장인이다. 남편이 식탁에 앉기를 기다려 뜨거운 배추전을 내었다. 물론 막걸리도 필수다. 금방 부쳐낸 바삭한 배추전에 시원한 막걸리잔을 부딪치며 말해본다.

"그동안 고생했어요. 이젠 수고한 어깨의 짐을 좀 내려놓아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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