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저녁밥상에서 구운 갈치를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렸다. 갈치란 생선이 오래전에는 우리나라 바다에서 흔하게 잡히는 생선이라 자주 먹었는데 이제는 귀하고 비싼 생선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대부분이 외국산인데 생선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큰 마음을 먹고 제주산 갈치를 사다가 구워 줬는데 딱 두 번 베어 먹고는 ‘카-악’소리를 냈다. 어떻게든 빼보려고도 했고, 밥을 그냥 삼켜 넘겨보려고도 했지만 아들은 자꾸 괴로워 하며 가시가 계속 목구멍에 박혀 있다며 힘들어 했고, 나중에는 목에서 피도 나왔다. 병원에 가자고 지갑과 전화기를 챙겼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다녀 와 저녁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그 시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40분 거리의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은 응급실은 변함이 없었다. 십년전 들락날락 거렸던 기억보다 더 분주하고, 소란스럽고, 아이들 우는 소리에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넘쳐났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고, 응급전문의사의 몇 마디 질문과 대답 후 기다리고, 목을 사진찍어 보자는 말과 가장 최악의 경우를 늘어 놓는 말을 건네 들었다. 응급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오랜만에 응급실에 있으니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십몇년전 아버지는 오랜 지병을 앓고 계셨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대학에 입학 할 시기에 맞춰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에게 병도 함께 찾아 왔다. 그후 오랫동안 아버지를 지배한 간경화는 참 가족들도 힘들게 했다. 한달에 몇 번씩 반복되는 입퇴원, 쌓여 가는 병원비, 한밤에 실려가는 응급실...이런 일들의 반복이었다. 내 결혼식 전날에도 갑자기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가족들이 지쳐서 이제는 아버지의 아픔에 무감각 해질때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쩜 나머지 가족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친정 엄마에게도 딱 육개월만에 폐암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참 복도 지지리도 없는 엄마는 아픈 남편 병간호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이젠 좀 편안해 질만 하니까 병이 찾아왔다. 혼자서 여러 검사를 받은 엄마에게 큰 대학병원의 의사는 자식들을 불러 오라 했고, 의사앞에 모인 삼남매에게 ‘폐암 말기’라는 청천벽력의 선고를 내렸다.
그 소리를 듣고 삼남매가 각자 어디로 흩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각자 울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갔던거 같다. 난 익숙한 장소로 자연스레 발길을 돌렸고 바닥에 쪼그리고 주저 앉아 꺼억꺼억 눈물을 흘렸다. 바로 응급실 후문의 오른쯕 담벼락이었다. 후미지고, 구석진 곳이었다. 병원 곳곳을 비추고 있는 가로등의 불빛도 그 구석까지는 비추지 못하고 있었다.
친정엄마도 몇 번의 응급실행이 있었다. 그때마다 절망적인 의사의 소리에 응급실 후문의 오른쪽 담벼락을 돌아 구석을 찾았고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쏟아 냈다.
사실 누구에게도 말 한적이 없는 이야기가 내게는 가시처럼 박혀 있다. 몇 번의 항암치료에도 진전이 없던 엄마의 병세는 더욱더 깊어져 입원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쇠약해지는 몸과 달리 난 병원에 엄마를 보러 갈때마다 눈빛에서 살려고 하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의사의 손을 잡고도, 내 눈을 보고도 꼭 살려 달라고,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겁이 났었다. 또다시 아버지처럼 병원 생활이 길어질까봐, 엄마마저 그런다면 누가 간호를 해야 할지 미리 겁을 먹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언니와 나, 이제 막 취직을 한 남동생의 사정을 살펴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때부터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내 속마음을 들킬까봐 두려웠다. 의사에게 매달리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우리 엄마를 살아있게만 해달라고,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얼마의 돈이 들던지 상관없다고 소리치지 못하는게 죄인처럼 느껴졌다.
엄마를 만나고 뒤돌아오면서 꼭 응급실 후문 오른쪽 담벼락 어두운 구석을 찾아 한참을 울었다. 내 시커먼 속내를 엄마가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차마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흐느꼈다. 내 마음을 아는지 엄마는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오래 살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난 그때부터 엄마를 생각하면 목에 가시가 걸린것 같다. 맘껏 소리쳐 울지 못하고, 뱉어 내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는 가시가 주홍글씨처럼 내 목에 새겨져 있는것 같았다.
아들의 목에 걸린 가시는 다행히도 잘 뽑혔다. 응급실을 나오며 후문의 담벼락을 찾아가 봤다. 그곳은 예전과 다르게 밝았다. 새로 생긴 가로들이 구석까지 비추고 있었고 의자까지 가져다 놓아 환자와 보호자들의 휴게공간이 되어 있었다. 내 목의 가시가 이제는 더 이상 아픈 가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인생을 만만하게 살지 않기 위한, 느슨해지고 나태하게 살지 않게 하고, 잘 버티게 해주는 힘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여러 어려움이 생길때나, 포기하고 싶을때 목을 한번씩 쓸어 본다. 그러면 엄마가 내게 남겨준 가시가 힘을 주고 있는것 같다. 오랜만에 엄마가 유난히 좋아했던 장미꽃을 한다발 사들고 납골당에 다녀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