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때를 닦으며 삶을 닦다
결혼 30년 차.
그 세월을 함께한 물건 중 하나가 있다. 결혼할 때 언니가 선물해 준 압력밥솥이다. 몇 번의 패킹 교체를 거쳐가며, 늘 따뜻한 밥을 지어주던 그 솥은 전기압력밥솥으로 바뀐 뒤에도 주방 한편을 지켰다. 전기밥솥은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그 낡은 솥은 여전히 나물 데치고 찌개를 끓이고 볶음나물을 무치는 데 쓰인다. 팬이자 냄비이자, 기억의 그릇이다.
육십을 넘기며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손에 익은 그릇들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집기들은 세월의 때를 고스란히 입고 있었다. 그 묵은 때를 벗기기엔 내 에너지가 부족했다. 그래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무거운 것부터 재활용센터로 보냈다.
그릇을 덜어낼수록 삶의 무게도 함께 가벼워지는 듯했다. 덜어내고 사는 것이 맞다고, 이제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쉬움은 없었다. 아니,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끝내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그 압력밥솥이다.
누렇게, 검게 눌어붙은 때가 겉면을 뒤덮고 있었지만, 나는 그 묵은 때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아무도 탐내지 않을 그 낡은 솥을, 나는 다시 닦아보기로 했다.
베이킹소다, 치약, 소금, 식초를 섞고, 포일을 뭉쳐 문질렀다. 일부는 닦여 나갔지만, SNS에서처럼 반짝이는 새것이 되지는 않았다.
오늘도 그 밥솥과 씨름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 겉면의 때가, 어쩌면 내 모습과 닮았다는 것을.
나는 매일 나를 닦는다고 생각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엔 여전히 아집이 눌어붙어 있었다. 냄비 속은 언제나 깨끗하다. 자주 들여다보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밑바닥, 손잡이 구석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은 닦기 어렵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며 중도에 손을 놓기도 한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내일 또 닦으면 되니까.
살아낸 시간만큼 닦아내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겉과 속이 모두 말끔히 씻겨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아집이 있던 자리에, 좋은 경륜이 쌓이기를.
나는 오늘도 그 시간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