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

-냉정한 이타주의에 던지는 변

by grace영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다.


한 아이에게 지원해 준다는 것은 1%의 가치가 있다고 해도 지원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초등 일 학년 때부터 지역 아동센터를 이용하며 멘토 선생님이 되어준 종사자에게 전화해 온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있었다. 평소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던 선생님에게, 교장선생님과 상담하던 중 그래도 마음을 터놓을 곳이 필요했던지 울면서 전화를 해 온 것이다. 옆에서 상담하던 교장선생님의 말씀인즉 학교를 그만둔다고 찾아왔다고 한다.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최근 오빠가 큰 수술을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직장을 그만둔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도 학교를 그만두어야겠다는 것이다.

교장선생님이 이 상황에서 전화받는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해하셨고, 지역 아동센터라고 했고, 00은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지역 아동센터 종사자와 상담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왔던 터라 어려울 때 지역 아동센터를 떠올렸다는 생각이 들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아이가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마음으로 바뀌기를 바라면서 관심을 가지고 학교에 다닐 수 없다고 생각한 이유에 대해서 알고자 하였다. 2년만 버티면 학교를 졸업할 수 있고, 이 버티는 힘이 너의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일반적인 이야기로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한번 만나자고 했으나 그동안 학교 선생님과 주변의 말을 듣고 학교를 계속 다니기로 했다는 소식까지 접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긴급한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주민센터 담당자에게 말하였다. 담당자는 집에 찾아갔고, 아빠의 말로는 수술하는 것은 맞고, 직장도 그만두었으나 00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것까지는 없다고 했다고 한다. 실업급여를 받고 있고, 교육 급여로 학업을 중단할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한다.


우연히 음식점에서 아빠와 저녁을 하러 온 00을 만났다. 잘 지내는지 묻고, 요즈음은 어떠냐고 했더니 어제까지 중간고사를 치르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부족한 과목이지만 잘하고 싶은 과목은 뭐냐고 했더니 수학이라고 해서, 내가 수학을 지도해 줄 만한 사람을 알아봐 주냐고 했더니 좋다고 한다. 그래도 공부하겠다는 의지가 보여서 안심이 되었다.


중학생이 된 00은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욕심은 있어서 지기 싫어하는 강점이 있었는데 마침 열의에 가득한 교육봉사자를 잘 만나서 학습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학습 의지를 보이는 00을 향해 “너는 기초부터 다져야 하니 더 열심히 해야 할 듯!!!”이렇게 말했더니 샐쭉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말을 하고 난 뒤 몇 개월뒤 월등히 오른 성적표를 보여주면서 선생님이 저보고 기초가 없다고 했죠? 라며 성적표를 복수하듯 내미는 모습도 눈에 선하다. “내가 그 말을 한건 잘한 듯... 그렇지 않았다면 너는 아마 열심히 안 했을걸” 이렇게 말하면서 약을 올린 기억도 난다. 하지만 나는 내심 너무 기뻤다. 교사실 문 앞에서 서서 자신을 봐 달라고 눈물흘리던 모습과 언젠가는 지금은 그만둔 선생님께 자기를 데리고 가서 키워달라고 까지 한 당돌함이 있었던 아이였다. 그런 세월이 아이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우리들에게는 기쁨이 되기도 한 아이였다. 중간중간 아동센터를 다니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였고, 선생님들한테 함부로 대하던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중3학년을 다 마치고 고등학교1학년 입학하기 전까지 아동센터를 이용하고, 요즈음은 가끔 들러서 아이들과 앉아서 종례까지 받고 가기도 했던 아이였다.


수학을 지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다녔다. 자원봉사자 및 수학을 잘하는 대학생들과는 시간이 맞지 않았고, 학교에 다니는 00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학원을 다닐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게 최선인 듯 여겨져서 ‘학원비 모금’을 계획하고 추진 중이다. 그 과정에서 후원금이 조성된 지역의 단체에 의뢰를 했다.

여기서 나는 좌절감을 경험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와 성장과정을 지켜본 내가 말을 하고 다녀도 이견이 있을 수 있음은 당연하다. 여러 모양의 잣대들이 나를 공격하지는 않지만 나는 공격당하는 느낌이 든다. 성적이 어떻게 되는지, 가정형편은 어떤지, 돈을 주면 딴 데 쓰는 건 아닌지 여러 가지 걱정으로 자로 재고, 줄 수 없는 이유를 찾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여기 단체에다가는 말하지 말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되어야 되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모두의 시선이 다 같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 주변의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면 그 아이를 위해서 최선의 선택은 우리의 몫은 1%의 가능성일지라도 도와주는 게 맞는 게 아닐까? 공부할 수 있는 날은 많이 늘려 있을 수도 있지만 또 지금 이 순간이 적기 일수도 있는 그 1%의 선한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그 아이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고, 또 도움받은 자녀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미래인류에게 어떤 영향력이 올 수도 있는데...


냉정한 이타주의는 아동의 진로 앞에서는 무너졌으면 좋겠다.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발전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알 수 있는 범위의 영역은 아닌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원을 해주었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선한 영향력으로 오늘을 쌓아가면 족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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