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부터 벚꽃 비가 내리는 즈음에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종일 숲 속을 헤매다가 배낭 가득 고사리를 등에 짊어지고 나타나서는 다듬고, 삶고, 말리는 과정을 매일 하셨다. 정성스레 포장까지 해놓으면 나는 사람들이 집에 놀러 오면 창고에서 엄마가 잘 말려 봉지 봉지 만들어둔 고사리를 선뜩선뜩 내주었다. 한 번도 그런 나의 행동에 대해서 나무라지 않으시고, 그렇게 해도 되냐고 물으면 “고사리는 꺾는 맛이지 얼마든지 주라”고 하셨다. 나는 고사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줘도 아까운 줄을 몰랐다. 엄마의 수고로 나는 큰 인심을 썼다는 걸 지금은 안다.
고사리를 꺾고, 삶고, 말리는 과정이 얼마나 수고로운지를 내가 직접 해 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잘 삶아서 말려 놓고 마음 놓고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느새 비가 와서 이 모든 과정을 다 망쳐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비가 오기 때문에 집안으로 들여놓으면 특유의 고사리 냄새가 집안을 불쾌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고사리 꺾는 일이 엄마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 그렇게 고된 일인지도 정말 몰랐다. 주말이면 아이들 데리고 엄마 따라 고사리를 꺾으러 갈 때에는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다. 다 핀 고사리를 꺾으며 “아 예쁘다”라고 말하는 딸의 말을 들으며 “그런 거 말고 이런 걸 꺾어!!” 말해 주어도 다 피어서 정말 예쁜 고사리를 고집하는 딸 때문에 웃으며 고사리채취를 할 때에는 그냥 소풍 그 이상의 일이 아니었다. 서울 사는 시누이가 “제주도는 고사리를 낫으로 벤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는데 제주도는 고사리 천지라고 잘못 알고 있음도 알게 되고 가시덤불 속에서라야 엄마가 꺾어온 고사리를 만날 수 있음도 내가 직접 해 보지 않고서는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꺾어서 당신이 다 드실 것도 아닌데”라고 거드는 사위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도에서 고사리를 꺾을 수 있는 동산이 점점 줄어 들어가고, 덕천으로 명도암으로 멀리 수망리, 남원까지 다니던 그 길도 이제는 엄마가 다니던 그 동산이 아니고, 이제는 꺾고 싶어도 꺾을 수 있는 제주 고사리가 아닌 즈음에야 제주에 와서 마음 붙일 곳 없는 마음을 고사리 꺾는 것으로 풀었던 것임을 헤아리게 된다.
인생도 나의 고사리를 향한 마음의 변함과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엄마의 수고로 쉽게 얻은 보물을 가치 있게 쓸 줄 모르고 나에게만 가치를 부여하는 마음이 이와 같은 게 아닐까?
엄마는 나물 요리를 정말 잘했다. 그중에서도 고사리 볶음을 누구나 좋아하게 요리하시던 분이었다. 나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물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제 엄마가 볶아주던 그 고사리의 맛을 보려면 언니 집에 가는 방법밖에 없어졌다.
4월이 되었다. 한 해 두 해 엄마의 건강은 가시덤불 헤치고 꺾던 고사리를 모른다. 그렇지만 고사리를 꺾으러 제주에 가자고 하면 “가야지”라고 하면서 따라나선다고 한다. 올해도 동생과 고사리를 꺾으러 온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그 옛날 손녀가 다 핀 고사리를 꺾고는 예쁘다고 했던 마음으로 엄마의 고사리도 다 피어서 예쁜 고사리를 한 움큼 내려놓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