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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콩새 Jan 19. 2021

에스프레소 연하게 한잔 주세요


"에스프레소 연하게 한잔 주세요"


브런치를 찾으시는 분들은 작가님들도 많으시죠.

이 문구가 말이 되는 문구 일가요? 문법적으로 성립되나요?



오늘은 커피 이야기 좀 해보려고 합니다.

커피 좋아하시는 분들 많으시죠?


저는 사실 커피를 잘 모르고 잘 마시지도 않습니다. 북한에서 커피 같은 음료는 보지도 못했으니 마신다는 건 더욱더 생각 못했답니다. 


한국에 오니 커피를 즐겨 마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 만남도 커피숍에서 자주 하고 어떤 상황이든 커피가 대화의 매개체가 되는 상황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특히 블랙커피라고 하는 맛도 없는 음료를 (제 느낌으로는 쓴 한약 같았어요. 물론 개인적인 취향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커피 즐기시는 분들은 오해없으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몇 잔씩 마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마시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좀 놀랐어요. 

그까짓 쓴 물에 왜 끌려다니지? 하는 생각도 했었죠. ㅎ


뭐 어쨓든, 

저한테 커피는 즐겁게 접하고 싶은 문화가 아니었고 커피맛이 별로 유쾌하지도 않아 그동안 커피를 한방울도 입에 대지 못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와서 2년 정도 회사생활을 했었는데요. 커피에 심하게 손사래를 치는 저에게 회사 임원분들께서 쓴 커피맛을 알아야 인생을 아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ㅎ. 그래도 영~커피에 즐거움이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답니다.


뭐 그렇게 몇 년이 지났고 저는 좀 늦은 나이에 한의대에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의학대학 7년 졸업하고 의사생활 10년정도 하고 탈북했지만 한국에서는 그 자격을 인정받는 것이 쉽지 않아 한의과대학에 편입하여 다시 공부했습니다.

뭐 지내놓고 보면 한국에서 다시 대학다닌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결국 남한과 북한에서 한의과대학의 정규과정을 모두 졸업한 1인이 된거죠. 남북한을 7천명이라고 한다면 현재는 7,000명중 단 1명이라고 자부합니다. 언론에서 남북한 통합1호한의사라는 호칭으로 불러주더군요. 죄송하지만 요건 자뻑입니다.
(이 과정은 다른 기회에~~)


만학도의 나이, 

북한과는 완전히 다른 대학 분위기에 학업 따라가기도 힘들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도 보고 싶고 (이때는 아들도 제 곁으로 오기 전이라서요)
 이래저래 기분이 우울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문득 커피 마시는 곳에 한번 가볼까? 하고 생각한 거죠. ㅎㅎ


왜 있잖아요. 때로 혼자 센티해지고 싶고 우아하게 분위기 잡고 싶을 때요. ㅎ

한국사람들도 기분이 우울할 때 커피를 많이 마시는 것 같았거든요. 


이때다 싶어 혼자 학교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갔죠.

메뉴를 쳐다보니 듣도 보도 못한 수많은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네요.


와~~ 뭐가 그렇게 많죠? 그냥 커피가 아니라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카푸치노는 물론 카라멜 마키야토, 바닐라라떼, 고구마라떼를 비롯하여  모과차, 율무차, 오미자차,  생강차, 대추차 등 동서양 차(茶)종류들이 서로 어우러진 메뉴들이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더라고요.


헛~~ 거기다가 다 외래어잖아?





한국사람들은 저걸 다 알고 마시나?

이 많은 메뉴들 중에서  무얼 마신다고 하지?


머리 안이 갑자기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우물쭈물하면 상대가 나를 무시할 것 같고, 문을 열고 들어갔으니 뭔가 하나는 시켜야겠고 해서 뭔지 모르지만 여러 가지 메뉴 중에서 그중 좀 있어 보이는 단어 하나를 선택하고 아주 우아하고 호기 있게 큰 소리로 주문했죠.



나    :  "저기요. 에스프레소 한잔 연하게 주문할게요!!" ㅋㅋㅋ

청년 :  " 에스프레소 연하게요?"

나    :  " 네 연하게요. 너무 쓰면 못 먹거든요"

청년 :  "손님, 에스프레소 맞으시죠?"

나 (아주 당당히) : "네, 맞아요"


그러고 학생답게 탁자 위에 책을 펼쳐놓고 폼은 있는 대로 잡고 앉아 독서 모드를 취합니다.

~~ 나 이 나이에 공부하는 대학생이야~~ 하는. ㅋㅋㅋ


잠시후 주문했던 에스프레소가 왔습니다.

엥? 이 뭐야?


정종 술잔 같은 작은 잔으로 한잔도 아닌 딱 반잔

한 모금 마셔보니 써도 아주 역하게 쓴. ㅎㅎ




화가 확~~치밀러올랐습니니다. 쓰면 못마시니까 연하게 해달라고 주문할때 분명히 강조했는데 고객의 주문을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건가요?

 아르바이트하는 다시 청년을 부릅니다.


나   :   "저기요, 제가 연하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청년의 동문서답 : "에스프레소 시키신 것 맞으시죠?"

나 (여전히 당당히, 그리고 약간 짜증 섞인) : 

"네, 맛 다니까요, 에스프레소 연하게요."


청년의 눈빛 : 아.. 이 이상한 아줌마 있는 대로 폼 잡고 있더니만 촌스럽게, 에스프레소가 뭔지도 모르는 거잖아.. 하는. 눈빛으로 저를 보면서 피부를 콕 찌르는 한마디를 합니다.


" 에스프레소는 원래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연하게 마시려면 아메리카노 시키셔야죠" 한심하다는 표정과 함께 말투에서 약간 짜증이 느껴집니다. ㅎ


그렇습니다. 에스프레소는 원래 그렇게 적게, 쓴맛의 묘미로 마시는 듯합니다.


앗. 쥐구멍이 어디 있나요? 창피,, 이런 민망함이 어디 있다요?

결국  에스프레소에 물을 있는 대로 타서 아메리카노로 연하게 마시고 나왔답니다. ㅎㅎㅎ


아하.. 에스프레소는 아주 진하게, 적은 양을 마시는 것이구나.

커피라고 다 같은 커피가 아니구나..


처음 알았죠.

이렇게 하나하나 남한 사회에 적응해 왔습니다.


10년 전의 에피소드랍니다. ^^

지금요? 

뭐 지금도 커피숍 가서 수많은 메뉴 중에 고르기 너무 힘들지만 적어도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는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답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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