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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콩새 Mar 14. 2021

대놓고 축하받고 싶은 날, 오늘

오늘, 3월 14일


방방 뛰고 싶어요.

생글생글 애교 부리고 싶어요.

부비부비 응석 부리고 싶어요.

룰루랄라 축하받고 싶어요.


오늘이요.

오늘은 제가 정말 기쁜 날이거든요.





태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새벽 첫 비행기로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기내에서는 착륙을 알리는 안내원의 맑고 차분한 멘트가 흘러나옵니다. "우리 항공기는 잠시 후 인천공항에 착륙하게 됩니다. 잠시 후 인천공항에 착륙하게 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한민국 입국입니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너무나도 기쁜 순간입니다.


하나, 마음은 설레었으되 머릿속은 뒤죽박죽 복잡한 감정입니다.

애타게 원하던 곳으로 왔는데,

이제 다시 숨어 살고 쫓겨다닐 일도 없는데.

체포되어 북송되지 않을까 덜덜 떨 일도 없는데..

왜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걸까요?


북한을 떠나 정말 먼~~ 곳으로 왔구나.

이제 정말 다시 돌아가기 힘든 곳으로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영영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언제 다시 북한 땅을 밟을 수 있을 까.

내가 태어났고 자라났던 곳,

학창 시절의 재미와 추억이 깃든 곳,

내 부모님들의 산소가 있는 곳,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이 있는 그곳 -

북한 땅으로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설마, 그래도 언젠가는 돌아갈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과

평생이 걸려도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에서의 어려움, 중국에서의 공포 등

여러 가지 현실들이 저를 이곳으로 떠밀었습니다.


어쩌다 내 삶이 이렇게 떠돌이가 되었을까.

어쩌다 내 인생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북송의 위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 다행스럽기는 하면서도

아프고 서글픈 마음입니다.


마음속으로는 가까웠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나도 먼 나라였던 남조선,

이곳에서는 나를 어떻게 맞아줄까,

북한에서 익히 들었던 '안기부'라는 곳에서는 나를 "간첩"이라고 몰아세우지 않을까,

이곳 사람들은 정말 전에 만났던 장 교수님이나 최 씨 아저씨가 같은 분들 일까?

기대와 설렘도 있었지만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막연한 불안과 긴장도 있었습니다.






드디어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고 사람들은 서둘러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던 여권은 위조 여권이라 이미 비행기 안에서 없애버렸기 때문에  어떤 통로를 따라 어떻게 공항을 벗어나 밖으로 나갈지도 매우 막막한 상태에서 우선은 사람들이 몰려나가는 곳으로 따라나섰습니다.


우르르 몰려나가던 사람들이 한 곳에 멈춰 서더니 책상 위에 놓여있는 종이에 뭔가를 줄줄이 써내려 갑니다.

바로 '입국신고서'입니다. 지금은 기내에서 미리 입국신고서를 쓸 수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가는 도중에 써가지고 통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이 뭔지 모르지만 사람들 속에 섞여 입국신고서의 빈칸을 채워 넣기 시작했습니다. 이름, 성별, 주소. 전화번호 아는 대로, 아니 모르지만 대충 아무렇게나 적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도저히 채워 넣을 수 없는 빈칸이 있었습니다.


바로 주민등록번호를 적어야 하는 13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곁눈질해보니 숫자 같은 것을 적어 넣는데 별로 생각도 하지 않고 빠르게 적는 것을 보면 이미 잘 알고 있는 어떤 번호인 것 같았습니다. 대충 아무 숫자나 적을까 하다가 적발되면 더 이상할 것 같아 망설이던 중 다른 친구들도 보니 그들도 몰라서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안 되겠다, 다들 불안해하고 있는 상태여서 더 우물거리다가는  신고될 것 같아서 우선 동생들에게 한쪽으로 비켜서 있게 하고 여행객들이 다 빠져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느 정도 조용해질 즈음 종이쪽지 하나를 들고 보안검색대 앞으로 갔습니다. 


"저기요. 북조선에서 왔는데요" 

당당하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모기소리만 하게 얘기한 것 같았습니다.

검색대에 계시던 직원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더라고요.

북조선에서 왔다는 말을 다시 반복하기 싫어서 종이쪽지를 들어 보였습니다.

" 북조선에서 온 사람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들을 가봐 종이에 미리 써가지고 갔었거든요.


굉장히 놀 러더군요. 혼자냐고 물어서 저쪽에 긴장해서 서있는 동생들을 가리키며 일행이라고 답했습니다.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다른  분이 나오셔서 저희들을 따라오라고 하더군요.

데리러 나오신 직원의 뒤를 줄레줄레 따라갔습니다.

한국사람처럼 보이려고 태국에서 나름대로 새 옷을 사 입었지만 공항에서의 우리는 형색으로 보나, 표정이나 눈빛으로 보나, 자세로 보나 한국사람 같은 느낌은 전혀 보이지 않았을 듯합니다.

촌스럽게 보이지 않으려고, 의연하게 보이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굉장히 촌스러웠을 것 같고, 더 나아가서 공항에서 적발된 불법체류자 같은 느낌이었을 듯합니다.


당시 인천공항의 모습은 너무 황홀했습니다. 물론 북한에서는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으니 공항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태국 방콕에서 비행기를 탈 때 방콕 공항이 너무 크고 멋지다는 것에 정말 놀랐거든요.

그런데 대한민국 인천공항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환경이었습니다.

제가 화장실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중국 화장실에 대해서도 몇 번 언급하기도 했지만요.

인천공항 화장실은 화장실이 아닌 살림집이라도 그렇게 깔끔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발전된 문명도시가 이렇게 다르구나, 북한보다는 잘 산다고 생각은 했지만 공항에서부터 대한민국에 기가

팍~~ 눌리게 되더라고요.






안내하던 직원을 따라 어떤 방으로 들어섰고(물론 아주 깔끔하고 편안한 의자가 있는 - 북한에서라면 당간 부급에서나 볼 수 있는 권위적이고 푹신한 의자였죠. ^^)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나갔습니다.


이제 이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할까?

여권이 없다고 도로 태국이나 중국으로 보내지 않을까?

아니면 안기부에 끌 여가 간첩임무 받은 것을 자백하라고 고문당하지 않을까?

괜히 한국으로 온 것을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까?

막연한 불안감과 함께 실낱같은 희망이나 기대를 가지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죠.


잠시 후 다른 직원, 어떤 아저씨가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을 아저씨라고 표현하게 되는 이유는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의 풍채 좋은 체격과 제가 좋아하는 머리 큰 스타일 때문에 친근감이 느껴졌고 거기에 환한 웃음을 듬뿍 담고 있는 표정이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 같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 잘 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라는 공식적인( 저희가 대표단이 된 느낌이었습니다~ㅎ) 인사와 함께 "오늘은 대한민국에서 남성이 여성분들에게 사탕을 주는 날입니다."라고 하면서 사탕 하나씩 나눠주는 것이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날은 바로 그해 3월 14일, 바로 오늘, 화이트데이였던 것입니다.


아저씨같이 친근한 공항직원의 말 한마디에 잔뜩 긴장했던 표정이 풀리면서 점차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이후 기관에서 공항으로 데리러 나온 분들을 따라 창문에 커튼을 친 작은 버스를 타고  부풀어있던 꿈과 희망과 기대가 움츠려 드는 어떤 곳으로 이동되었고 필요한 조사와 절차를 거쳐 정착교육기관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여러 가지 정착교육을 받은 후 정식으로 "주민등록증"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입국  1개월 후 - 정착교육기관에서   (대한민국에 와서 찍은 가장 첫 번째 사진입니다.^^)





3월 14일


해마다 이날이 오면 저는 마냥 기쁘고 설렙니다.

진정으로 자유를 얻었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고

제2의 생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까불고 싶고

팡팡 뛰고 싶고

목청껏 소리 지르고 싶고

잘 왔다고 칭찬받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태국 방콕에서 대한 항공을 탔는데요. 당시 아마 밤 12시 넘은 시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출국을 기다리는 사람 중 80%는 한국사람이었습니다.

태국 방콕이지만 한국 말소리만 크게 들리고 있었거든요.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자유롭게 놀러 다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모습만으로도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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