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입국, 2년 정도 되었을까 할 때 써놓았던 일기 한편이 눈에 띄길래 그대로 옮겨 본다.
비다. 늦은 밤중인지 새벽인지 모르게 밤새 비가 쏟아졌다. 드디어 벼르던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는 가 보다.
공교롭게도 오늘 같은 날 저녁에 약속이 있다. 회사일을 마치고 급히 약속 장소에 도착하였는데 한 친구가 30분이 넘도록 도착하지 않는다.
시간 약속이 법인 줄을 알고 있는 나는 이 시간이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아주 어릴 때 같으면 30분을 넘기면, 기다리지 않고 그냥 가버렸을 것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격도 느슨해지고 인내성도 많아지는 모양이다.
재미있게 저녁시간을 보냈다. 인사동 어떤 음식점에서 세 사람이 서로 다른 음식을 주문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한 사람도 양보가 없다. 주방에서는 서로 다른 음식을 조금씩 따로 준비하느라고 힘들 텐데 어쩌면 자그마한 아량도 우리들에게는 없나 보다.
음식이 흔한 곳에 왔는데, 맛있는 걸 골라서 선택해야지 하는 자기 합리화와 이해관계를 앞세우면서
"해물 영양솥밥"을 맛있게 먹었고, 신나게 수다 떨고
비를 맞으며 액세서리 구경을 하느라고 인사동을 휩쓸고 다녔다.
나는 비 맞는 것을 참 좋아한다.
이렇게 어른이 된 지금도 비 올 때 우산 없이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궁상스럽게 보이는 주변 눈길이 아니라면 정말 "밤비 내리는 영동교"라도 걷고 싶은 충동이 인다.
갑자기 내가 어린 소녀가 된듯한 기분이다. 물론 나보다 어린 후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니 자연히 비속에서도 낭만적이고 재미있고 깔깔댔다.
송경이의 이끌림으로 금은방에. 갔더니 이쁜 점원들이 저마다 웃음을 보낸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은 빛이 황홀한 데다 점원들이 보내는 끄는듯한 눈웃음으로 한동안 어리 둥절 하였다. 이 순간 저 웃음이 진짜 일가, 가짜 일가 하는 생각을 하는 내가 훨씬 더 나쁜 사람인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금은방에 들어왔다.
그동안 혼자서는 들어가 볼 자신이 없었고 액세서리 같은 것에도 크게 관심이 없어서 무심했는데
정말로 처음 들어왔더니 말 그대로 별천지다. 구매하지도 않으면서 이곳저곳을 눈요기만 하는 것이 어색하여 그중 눈에 띄는 목걸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은 '은 목걸이'예요?” 백색의 가냘픈 줄에 하늘색의 팥알만 한 보석이 달린 것이 언뜻 보기에 귀여워 보였다. “화이트 골드, 백금이에요.” “은”이라니 무슨 그런 촌스러운 표현이냐는, 당치도 않는 소리를 한다는 어투다. 습관이 되어있지 않다 보니 흰색이면 백금이라는 생각보다도 “은”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창피했다.
이런 것을 모르는 것이 진짜로 창피 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은근히 목덜미가 달아올랐다.
당황한 김에 얼마인가 물었더니 감히 내가 견줘볼 수도 없는 답변을 한다.
이쁜 목걸이까지도 조롱하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어림도 없으니 제발 꿈 깨라는 듯 한...
열 받아서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구매 해 버릴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침을 세 번 삼키면서 나왔다.
크게 필요한 것도 아닌데 즉흥적인 일을 저지르고 후회하면 나한테 손해만 생길 것 을..
많은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이쁜 장신구들을 착용하고 다닌다.
아마 그 흔한 목걸이나 싸구려 반지하나도 없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리라.
그래도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성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갈 때는 좀 위축되기도 하더라.
아무튼 목걸이는 구매하지 못하였지만 한국 동생, 북한 동생들과의 우정을 돈독히 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비가 억수로 내려도 마음은 마냥 즐거웠다. 역시 사람은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야 살맛이 나는가 보다.
그로부터 10년 후 아들이 한국에 왔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반지 하나를 사서 내 손가락에 직접 끼워주었다. 용돈 아껴서 구매했겠지만 아들에게는 거금이었을 듯. 반지 가격에 비교할 수 도 없는 마음을 나는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