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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콩새 Jun 30. 2021

북한, 직장인만 휴가간다

남,북한의 서로다른 휴가문화

 

 

북한은 한국과 같은 휴가 문화가 아닙니다.
물론 휴가라는 명칭으로 1년에 12일 정도의 시간을 사용할 수 있지만 본인의 결혼식이나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 겨우 청구를 받을 수 있고 이래저래 그런 이유라도 없으면 그냥 흘려보내게 됩니다.

한국처럼 여름에는 여름휴가 명목으로 산으로, 바다로 더위를 피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같은 휴가다운 휴가문화는 없는 것이지요.

게다가 휴가를 받는 다는 것은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이 필요할 때 받는 것이지 가정주부는 물론 초등학생, 중학생, 심지어 대학생들까지는 생각지도 못하는 문화랍니다.



그러니 제가 대한민국에 입국한 후 첫 해, 지인이 휴가 가자고 했을 때 깜짝 놀랐죠. 나는 회사생활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휴가를 갈 수 있지? 했던 거죠. ㅎㅎ

일고 보니 한국은 무더운 여름을 피해 잠깐씩 힐링하고 휴식하는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이리하여 친구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첫 휴가를 가게 되었답니다.



내가경험한 첫 휴가 3박 4일


 여름철 휴가라는 명목으로 피크가 시작될 때부터 휴가날을 벼르고 기다렸습니다만  시작부터 설렘보다 당황스러움을 경험했던 첫 휴가였습니다.
 왜냐고요?
 사실 친구의 가족과 동행을 하기로 하였고 친구의 남편이 자가용으로 실어다 준다고 하였었는데 바로 전날 부부싸움으로 삐쳐서 집을 나간 거였어요.
 아긍~~ 저는 그야말로 이러다 휴가 못가는 건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 했답니다.


 "칫, 감히?, 안 돌아오나 어디 보자. 안 오기만 해 봐라"
 저는 부부싸움이 큰일로 번질까 봐 간이 콩알만 하였는데 웬걸요. 친구는 오히려 배포 유한 거 있죠.
 어찌 그리 배짱이 둔둑한지 불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요. (북한에서 남자는 하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당시의 저의 사고로서는 무섭기도 했고 이해되지 않기도 했답니다. ㅎㅎ)

지금은요? 흠 흠~~


처음 한국에 입국했을 때 받았던 느낌 그대로 대한민국 아줌마는 무서운 것이 없었고 대한민국 남편 또한 두려운 것이 많은지라 점심시간이 지난 뒤에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나더라고요. (당시 저의 생각입니다.)


 제가 있었던 관계로 아내한테 폭발적인 잔소리를 듣지는 않았지만 손님도 있고 하니 무척 어색해하더라고요.
 뭐, 그러나 저러나 저는 친구의 남편이 돌아온 것이 마냥 반갑기만 했고요. 사실은 안 돌아오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했었거든요.  친구야 어차피 싸운 뒤끝이라 기분이 별로이기는 하겠지만 저는 거의 한 달을 휴가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거든요.

암튼 이런저런 준비를 해가 지고 드디어 차에 오른 것은 오후 3시였습니다.


 난감한 일이 또 있었어요. 
 친구의 9살 난 아들과 애완강아지가 함께 가게 되는데 친구가 아들과 함께 뒤 자석에 타겠으니 저보고 굳이 자기 남편의 옆 자리에 앉으라는 거예요.
 이런 현상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상황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전혀 처음이라 좀 아니다 싶었고 내키지 않았으나 기분이 별로인 친구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또 아이와 엄마가 함께 앞 좌석에 앉을 수는 없는지라 울며 겨자먹기로 친구의 남편과 나란히 동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친구 남편의 복장이 으으윽...
 무릎 위로 말려 올라가는 체크 무늬 반바지를 그대로 입고 가는 겁니다. 


 남자들이 보통 무엇을 어떻게 입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갈데없는 잠옷 같았어요.
 운전석에 앉으니 무릎 위로 바지가 얼마나 딸려 올라갔을 것인지는 여러분의 상상에...ㅋㅋㅋ

저는 너무 낯선 풍경이라 눈길은 정면을 주시하고 있지만 마음으로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답니다.


 암튼 차 안의 어색한 분위기를 털어버리기라도 할 듯 서해고속도로를 따라 차는 질풍같이 달리고 길가의 가로수들은 미처 쳐다볼 사이도 없이 스쳐 지나가고...

 
 저녁 5시 30분에 만리포해수욕장을 10리 정도 못 미친 "구름 해수욕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여름의 막바지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할 법도 한데 웬걸 그래도 엄청 많은 사람들이 물가에서 바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녁시간이고 날씨도 그다지 쾌청하지가 않아 바닷물에는 들어가지 못하였으나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참 가관이더군요.
 
 동해바다에서만 살다 보니 뜨는 해는 많이 보았지만 지는 해는 처음이었거든요. 바다와 구름 사이에 모닥불을 피워놓은 듯이 빨갛게 물든 저녁노을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을 몰랐어요.
 꽃이 피었다가 시든다든가. 사람이 늙어가는 모습들이 가끔은 생기가 사라지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보게 되잖아요. 마음이 상큼함이나 황홀함을 주지는 못하죠.


 태양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그렇게 자신을 불태우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모습을 보면서 내 인생의 황혼도 저렇게 아름답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을을 등 뒤로 바닷가 모래불에 숯불을 피워놓고 조개구이를 하는 재미도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숫 불에 등 따가워 입을 벌리는 조개껍데기 속을 젓가락으로 집어내면서 소주 한잔 주거니 받거니...
 게다가 얼큰한 우럭 매운탕까지 곁들이니 양반 사또 풍악놀이 부럽지 않더군요.


 근사한 구경과 맛있는 매운탕으로 창자를 채우고 다시 오늘 밤의 보금자리를 찾아서 대전으로 향하여 하룻밤의 피곤을 풀고 점심시간을 맞추어 드디어 무주 구천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비가 꾸역꾸역 내려서 기분이 별로일 거라고 생각하던 애초의 상상은 그릇된 것이었습니다.


 무주 설천 읍내 작은 시장에서 김이 몽골몽골 솟아나는 달짝지근한 찰 강냉이로 하모니카(제가 살던 고장에서는 강냉이 먹는 모습을 하모니카를 분다고 우스갯소리를 가거든요)를 불어대면서 무주 계곡의 산천을 구경하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혹시 상상이 되나요?

 내가 살았던 고장은 산이 엄청 많았던 곳이라 산천경개 구경은 실컷 했었다고 생각을 하였었는데


 산세의 절묘함은 제쳐 두고라도 울창한 수림은 수림이라는 느낌보다도 커다란 솜뭉치를 아름아름 안아다 놓은 것 같아 낙하산이 없이 떨어져 내리더라도 사뿐히 이 몸을 감싸줄 것 같이 부드러웠습니다.
 게다가 비 온 뒤끝이라 꽃잎에 방울방울 맺혀 있는 이슬이라든가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의 잎새에서 풍겨 나오는 그 함초롬한 청순함과 장엄함은 수줍은 처녀의 아리따운 자태 같기도 하고 늠름한 총각의 자신만만한 싱글 거림 같았습니다.



 무주 계곡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기는 하였으나 그렇게 아름다우면서도 기품 있는 풍경을 접할 줄은 몰랐습니다.  내 머릿속의 먹물이 모자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만큼 멋졌습니다.





 계곡을 따라 골짜기로 들어가노라면 가도 가도 그 끝이 어디일지 상상이 안 가고 우람한 나무들이 도로 위에 지붕을 만들어 아득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동화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무주 설천의 "일산대"에서 작은 폭포와도 같이 고여있는 계곡물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너럭바위 우에 앉아 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니 아, 제가 팔선녀 중의 한 명이라도 된듯한 기분입니다. 나무꾼이 없는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만.


 그날은 친구의 부모님 별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드디어 친구가 그 정기를 받으며 자랐다는 덕유산, "무주 구천 리조트"에 도착하였습니다.
 개나리동, 해바라기동, 뾰족뾰족한 지붕으로 장식되어 저마다 자신의 미모를 한껏 뽐내고 있는 각양각색의 콘도를 지나 산꼭대기에 이르러 발아래를 굽어보니 천하의 대장수가 내가 아닌가 하는 착각 속에 들기도 합니다.





 햇발 1600 메터의 높이를 자랑하는 덕유산 꼭대기라 여름이라는 느낌은 어느덧 사라지고 추워서 입술을 파르르 떨 정도였고 그 높은 꼭대기에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골짜기를 내려다보면서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덕유산의 정기를 담뿍 받아가서 세상 속의 삶에 자신 있고 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일 동안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좀 힘들기는 하였으나 나를 위하여 이러한 코스들을 준비한 친구의 정성을 생각하면서 즐겁게 보냈습니다.



귀경길 


돌아오는 길에 다시 대전에 들러서 "뿌리공원" 구경까지 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뿌리공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그곳에 가니 우리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각종 성씨의 뿌리들의 유래와 비석이 세워져 있더라고요.

우리나라의 성씨도 257종에 3349개의 본관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성씨가 100여 가지인 줄로 알고 있었거든요.  저처럼 잘 몰랐던 분들이 계시면 이번에 확실하게 알으시고요 그곳에 가서 조상의 기상도 함빡 받고 오는 것도 좋은 추억일 것 같네요.


 3박 4일간의 일정이 이렇게 마쳐졌습니다.
 첫 시작이 다소 어정쩡하게 했지만  정말 재밌었고  추억에 깊이 간직할만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국에서의 첫 번째 휴가.

북한에서는 직장 다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편안한 휴식과 힐링의 휴가를

남한에서는 남녀노소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무한 신기해하고 감사하며

올여름 휴가는~~ 가능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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