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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콩새 Feb 04. 2021

"삐끼"직업이 저를 살렸습니다



지난편은 아래에.


https://brunch.co.kr/@hee91801/27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베이징역을 이용하는 승객수는 하루 대략 50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30분에 10,000명 정도의 이용객, 그중 시간이 겹치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엄청난 인파인 거죠. 그야말로 인산인해라는 말이 제대로 어울린다고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데려다 놓은 민박집 사장은 그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집에 손님을 유인하도록 시킨 것입니다. 먹고사는 일, 급여받고 일하는 직원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는 거겠죠.


그런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손님들과 눈도 마주칠 수 없었습니다. 먼 곳 쳐다보면서 우리 민박으로 오라고 할 수는 없지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고 어디를 쳐다볼지도 몰라 눈빛도 당황하고 불안하게 돌아갔습니다. 


언제 잡힐지 모르는 불안 때문에 늘 긴장하게 살고 있었던 당시의 저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똑바로 쳐다보는 것도 제대로 지 못했습니다. 의식적으로 피했다는 것이 맞을 듯도 합니다. 하지만 삐끼 역할에 충실하고 손님을 우리 민박으로 모시려면 손님과 눈을 마주치고 믿음과 신뢰를 주면서 따라갈 마음이 들 수 있게 이야기해야 함은 물론 민박에 묵을 수 있는 손님인지에 대한 파악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저한테는 그런 판단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첫날은 꽝~~인 거죠.

사장도 첫날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다음날도 일찍이 베이징역으로 가게 됩니다. 밤새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오늘 안 간다고 하고 이곳 일을 때려치울까. 그러면 사실 당장 갈 곳도 없고 먹을 곳도 없고 그다음을 어떻게 혜쳐나가야 할지 방법이 없습니다. 까짓꺼 한번 마음먹고 잘해볼까. 다른 사람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것 뭐람? 옷 벗으라는 것도 아닌데.. 죽기보다 더할 가? 이 고비를 견디지 못하면 다음이 없으니 어떤 결심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삐끼"의 자격으로 베이징역으로 갔고 어영부영 분위기에 취해 몇 사람에게는 말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성과는 없었지만요.


그리고 다음날은 혼자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남자 사장과 함께 다니는 것도 기분이 썩 개운치 않았지만 다른 민박 사장들에게 슬금슬금 내 얘기를 하는 듯한 눈빛과 분위기도 짜증 났고 무엇보다도 감시당하는 느낌, 끌려다니는 느낌이 들어서 사실 자신감도 더 떨어지더라고요. 혼자서 그냥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렇게 하라고 해서 결국 혼자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는 일은 똑같은 "삐끼"였지만 혼자 가는 것이 훨씬 덜 비참했습니다.  특별히 나를 쳐다보면서 수근덕 거리는 사람도 없고 아예 다른 민박집 사장들이 보이지 않는 외딴곳으로 가서 혼자 용기를 내봤거든요. 살아남기위한 치열한 행동을 하는거죠.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깨끗하고 시설도 좋은 민박집 있습니다. 잘해드립니다." ㅎ

뭘 잘해드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중에는 뭘 잘해주냐고 지꿋게 묻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오해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런 말들이. 그때 또 배웠죠. 아... 이럴 때 이런 말은 사용하면 안 되겠구나.. 밥도 맛있고요. 빨래도 해드리고요. 집도 깨끗하고요. 주변에 유희시설도 많고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막 합니다. 혼자 나온 오늘은 어떡하든 손님을 한분이라도 모시고 들어가고 싶었답니다. 그래야 내일도 혼자 나올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눈빛에 간절함이 보였을까요? 제가 이일에 자질이나 능력이 있었던 걸까요? 역시 연변에서 가짜 결혼을 목적으로 베이징으로 온, 한국 남성을 베이징에서 만나기로 해서 연변 시골에서 올라온 두 분을 민박으로 모시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너무 기쁘더라고요. 아.. 나 이런 일도 할 수 있나 봐. 휴~~

혼자 열심히 하고 있던 어느 날, 민박집 남자 사장이 또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서는 거예요. 기분도 별로고 해서 나는 오늘은 좀 쉬겠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손님을 모셔왔으니 좀 쉬어도 된다고 생각했고 남자 사장하고 같이 가기 싫어한다는 것쯤은 여자 사장도 이해가 되니 남편에게 뭐라고 욕하면서도 저를 쉬라고 하네요. 결국 남자 사장은 혼자 나가게 되었죠.

그날 집에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남자 사장은 기회를 엿보고 있고 계속 같이 가고 싶어 하고 시장에 식품 사러 갈 때도 짐 들어준다고 같이 가고 싶어 하고 나는 장보는 물건이 무거우니 어쩔 수 없이 함께 다니게 되고요.





매일같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계속되고 무얼 어떻게 해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어느 날.

그날도 우겨서 혼자 베이징역으로 나갔습니다. 기분도 썩 좋지 않고 앞길도 캄캄해서 무얼 어떻게 할지 모르겠고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막막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해 살 좋은 곳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만 쳐다보면서 마음의 번거로움을 가라앉히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사람구경만 하는거죠.

그냥 오늘은 이렇게 시간 보내다 들어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민박집 사장들이 우리 사장에게 그 집 아줌마가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았다고 일러바치면 그걸 계기로 그 집에서 나올 생각까지 하고 있었거든요.


한 참 그렇게 앉아 있는데 나와 비슷한, 아님 3~4살 정도 언니로 느껴지는 아주머니가 슬그머니 곁에 와서 말을 시킵니다. "어이"(연변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을 때 이렇게 부릅니다. 그리고 이걸 하대한다고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아요) "네.", "**민박집 아줌마가 아니요?" "네, 맞아요"  

그러면서 오늘은 왜 이렇게 앉아있냐. 무슨 일이 있자. 그 집에서 일하기 괜찮냐, 월급은 얼마나 주냐" 등등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 집에도 일손을 구한다는 거예요. 

자기 집에 오지 않겠냐고. 주방일은 올케언니가 하고 있고 나는 빨래, 청소만 하고 때로 주방 일손 좀 도와주면 된다는 거고요. 남편은 한국에 돈 벌려고 나갔고 15살 되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훨씬 조건이 좋았고 다음날 바로 짐 싸가지고 옮기게 되었습니다. 워낙 두 집 사이는 버스 몇 정거장의 거리라 서로 마주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새로 옮긴 민박은 우선 여성들만 살고 있어서 마음이 아주 편안했습니다. 물론 남성 손님들이 많이 들락 거리기는 했지만 민박집주인이 언니 벌들이고 서로 형님, 올케 사이라 함께 손 맞춰서 잘 지내고 있어서 정서적으로도 아주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음악을 참 좋아합니다. 노래 듣는 것도 좋아하고 부르는 것도 좋아합니다. 아들도 음악을 좋아해서 거의 한달에 한번정도 함께 뮤지컬 감상하군하죠. 지금도 tv음악프로는 정주행으로 시청하고 본방사수 못한 경우는 유료결재하고라도 꼭 시청합니다. 거의 병적이리만큼 음악프로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다른 일을 그렇게 열심히 했다면 또 다른 삶을 살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새로 옮긴 민박집에서 조금은 여유로운 시간대였던 오후 2~3시 정도. 어디선가 아주 잔잔하고 포근한 노래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가 저를 부르는것 같았습니다. 노래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서 문을 열었더니 민박집에서 밥을 하는 아줌마가 무릎꿇고 업드려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포근하고 따뜻하게 들렸던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한번만 다시 불러줄 수 있냐고 청했었고 그 분은 다시 불러 주었습니다. 노래가 너무 좋다고. 배우고 싶다고, 어디가면 이런 노래를 들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분 말씀이 교회에 가면 들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날 제가 들었던 음악은 복음성가 "일어나 걸어라" 였습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 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이러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저는 이 노래때문에 그분께 이런 노래 듣고 부를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였고 바로 그날 교회로 가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는 건 아니므로 요기까지만 할게요.

다만 이후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고 삶에 활력을 가지고 희망을 품고 살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점차 새로운 곳에 익숙되어 갈 무렵 이 집에는 한국에서 온 30대 후반의 한 손님이 숙박을 하게 됩니다. 이 손님은 다른 손님들처럼 결혼이 목적이거나 사업상 목적이 있거나 한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여행을 목적으로 온 것 같지조 않았구요. 판단이 서지 않는 아주 애매모호한 사람이었죠.


자기에 대한 말은 극력 하지 않았고 말로는 중국말 배우러 왔다고 하지만 학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대학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요. 더 이상한건 보통 손님들은 3~4일정도 숙박, 길어야 7주일 정도인데 이 손님은 우선을 한달 금액 지불하고 다음에 더 숙박하게 되면 다시 더 지급한다고 하더라고요.


하는일은 집에서 책 읽든가 잠간 나가서 산책 하든가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나쁜 사람의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혹시 한국에서 사고 치고 피신온 사람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냥 추측일 뿐이었고 민박식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손님은 이후 제 삶 가운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죠.

다음호에 계속 ~



다 써놓고 한번 읽어 보는데요..

 밥도 맛있고요. 빨래도 해드리고요. 집도 깨끗하고요. 주변에 유희시설도 많고요..

 이 말을 읍조리고 있노라니 갑자기 그대의 막막하고 절박하던 상황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막~~흐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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