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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콩새 Feb 05. 2021

청주 여자 교도소에서


이 글은 지금으로 부터 16~17년 전 제가 대한민국에 입국했던 초기에 있은 일입니다.

오늘아침 교도관생활을 하고 있는 @효라빠작가님의 교도소수감중인 엄마를 접견 온 두 딸들에 대한 글을 읽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옛 파일을 찾아봤더니 그때 써놓았던 글이 있어서 수정없이 올립니다.

불편한 부분이 있어도 양해 바람니다.







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두 여인이 서로를 바라봅니다.
 상대의 모습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으려는 듯 말없이 쳐다봅니다.
 두 손을 맞대고 있는 사이에 유리창이 있어 살 갓이 닿지 않지만 맞 대인 손끝 사이로 쳐다보는 눈길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한참을 마주보던 가냘픈 두 여인의 볼로 동시에 두 줄기의 눈물이 말없이 흘러 내립니다.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천정으로 나 있는 쇠살창 사이로 흐느낌만이 흐릅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푸른 수의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언니를 보듯, 오랫동안 기다리던 동생을 만나듯 두 사람은 금방 스스럼 없어졌습니다.


 옆에는 검은 제복을 단정히 입은 경찰관이 입을 꾹 다물고 근엄한 자세로 앉아있었지만 몇 달 동안 주고 받았던 편지로 하여 내심 편안해진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 교도소라는 곳을 가보았는지라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이었으나 그 여인 앞에서는 그런 내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 받는 여 재소자가 있었습니다.
 처음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척 안타까우면서도 동정(예전표현이라 수정없이 올림니다. 지금은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아요)이 갔습니다.
 많이 힘들 것 같이 느껴지는 그곳에서의 생활에 자그마한 용기라도 보태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이 용기가 없어 선뜻 다가서지 못하였습니다.
 오랜 망설임 끝에 힘을 내어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언니의 동생이 되고싶고, 친구가 되고 싶다고.
 철창의 이쪽과 저쪽이 아니라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동등한 자격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서 진솔한 삶의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마음을 열었습니다.







 첫 편지를 보내고 회답을 기다리는 몇 일이 몇 달처럼 길게 느껴졌지만 고마움과 미안함과 죄책감이 뒤섞인 그녀의 편지를 받는 순간 저 자신이 오히려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자신도 감방 안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외로울까, 그 녀가 우울할 때 말동무가 되어주고 뭔가 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으로 삶의 회의가 들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겠다는 일종의 동정 비슷한 감정으로 시작하였었는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하여 저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녀와의 인연은 어느덧 몇 달이 지나 이제는 저의 생활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며칠에 한번씩 회사에서 받아보는 그 녀의 편지는 저에게 기쁨입니다.
 받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 기다리던 애인한테서 받는 편지인양 기쁘고 즐겁고 마음이 설레임을 느끼며 겉봉을 뜯습니다.





 어제 청주 여자교도소에 가서 그녀를 만나고 왔습니다.
 편지로 몇 달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를 알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만나니 또 새로운 감정이었고 

우울하고 수심에 잠겨있는 그녀의 모습을 대하면서 또 다른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 읽으라고 책 몇 권을 넣어주고 왔습니다.
 혹시라도 입맛이 없을 때 맛있는 과일이라도 사 드시라고 조금의 영치금도 넣어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송구하고 죄스러웠습니다.


 혹시나 저 자신이 남을 도와주고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지..
 그 녀가 그 영치물을 받으면서 자신이 동정을 받고 있다는 비참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지

 제발 진심임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지만 즐거웠습니다.
 처음에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간 것이 얼마나 잘 한 행동이었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즐거워 하고 고마워하고 미안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작은 관심이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평범하게 지나칠 수도 있는 작은 대화나 크지 않은 마음 한 끝이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는 재소자들에게는 엄청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바깥세상의 따뜻함을 느끼며 그들이 자신의 죄과를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새로운 인생을 용기 있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제발 그 분이 진심으로 잘 못을 뉘우치고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많은 사람들 속에 함께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교도소라는 곳에는 북한에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떨리기도 하였고 시설도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작 가보니 생각과는 달리 아늑하고 포근한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말을 하던 경찰관은 상관하지 않았고 무서움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남한 감옥이 시설도 좋지 않고 환경이 열악하다고 들었었는데 정원도 잘 정리되어있었고 실내도 깨끗하고 민원을 보는 경찰관도 매우 상냥하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이 마음이 많이 편했습니다.


 밖에서 보는 모습과 직접 안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조금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연수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시길래 저도 마음이 놓였습니다.


 감옥이라고 말하면 무척이나 무섭고 외롭게 생각되는 곳인데 직접 가보니 모든 것이 북한보다는 편리하고 잘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지금껏 몰랐던 대한민국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새로운 인식도 가질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 글을 발행하는 장소가 지금 사무실이 아니라 집이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와 주고 받았던 편지 (약 2년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만)들을 모두 모아 두었거든요.

사진으로 찍어서 (피사체로~~)올리면 더 생동감 있었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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