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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콩새 Mar 30. 2021

북한 사람은 하지 않는 남한 사람들의 "거짓말"

남과 북의 다른 문화




익숙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문화가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 온 사람에게는 새로우면서도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우리 한반도와 같이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그래서 당연히 많은 부분들이 같을 수 도 있다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습관적이고 일상적인 것들이 다른 누군가에게까지도 습관적이고 일상적일 거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3국에서 방황하는 과정에 저는 나의 최종 선택지를 어디로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꽤 많이 했었지요. 

그냥 미국으로 갈까. 유럽으로 갈까? 아님 동남아 정글 속에 숨어버릴까? 물론 원한다고 해서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수없이 많은 생각을 했었거든요.


최종 정착지를 한국으로 선택한 것은 최소한 말이 통하니 잘 모르거나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라도 물을 수 있거나, 억울하거나 답답하면 필요한 곳에 읍소라도 할 수 있거나 등  적어도 외국보다는 훨씬 편하게 소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많은 판단으로 한국행을 선택했으나 말이 통하는 사회에서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사실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이런 것이 문화적 차이겠지요. 분명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의미가 다르게 전달되거나 발음은 한국 발음이나 의미는 외래어인 경우도 많고 신조어, 줄임말 등 이해하기 어려웠고 소통의 부재가 너무 심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입국 초기에는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하기도 싫었고 신분을 최대한 감추고 싶었기 때문에 솔직하게 털어놓고 물어보지도 못하다 보니 점점 더 소외감이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무슨 일이든 해야 했던 저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도 너무 막연했답니다. 보통 한국사람들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새터민들에게 일자리까지 다 해결해 주는 걸로 생각하고 계시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디에 어떤 일자리가 있으니 지원해보라는 정보 정도는 줄 수  있죠. 이것도 정부에서 해주는 건 아니고  정착 도움을 주시는 분들의 재량이나 정보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또 의무는 아니기 때문에 처음 일자리  얻는 것이 걸코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취직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남과 북의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암튼요. 무슨 일이든 해야 먹고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일자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당시에 존재하던 신문(지금은 눈에 뜨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인 '교차로', '가로수' 같은 신문의 구인 구직란을 흩어보며 내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곳들에 차례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세요? 일할 사람 구한다는 광고 보고 전화드렸습니다."
"아. 네. 사시는 곳이 어디인가요?"

"**구인데요"

"혹시 교포세요?"


아.. 최대한 이방인 티 안 나게 대화하려고 했는데 함경도 사투리와 비교적 강한 억양이 토속 한국인이 아님을 단번에 들켜버렸습니다. 잠깐의 찰나에 참 많은 생각을 합니다. 

'포세요?'의 질문에 ''라고 할까. 

교포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할라나? 

교포가 아니라고 대답할까? 

그러기에는 악센트에서부터 부드럽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하기가 정말 싫었었고요.

궁여지책으로 어쩔 수 없이 "교포"라고 대답합니다.(교포분들께는 죄송합니다. 비하하고 싶었던 의미는 절대 아님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음 질문입니다.

"컴퓨터 할 줄 아나요? 운전할 줄 아십니까?"

숨이 콱 막힙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컴퓨터 보지도 못했으니 배워본 적은 더욱더 없죠. 물론 한국에 와서 하나원에서 기본적인 컴퓨터 교육을 받습니다만 그것으로 회사에서 일을 할 만큼의 실력은 또 안됩니다.


운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에서 운전,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특권입니다. 

자가용을 소유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고, 직장 내에서도 사실 아무나 운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운전면허 따는 것이, 운전사라는 직업은 차를 가지고 전국 각지로 다니면서 장사할 수 있기 때문에(물론 불법이지만 고난의 행군 같은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꽤 인기 있는 직업이니까요.


암튼, 

컴퓨터 할 줄도 모르고, 

운전할 줄도 모른다고 하니 다음에 돌아오는 멘트는 "네, 알겠습니다. 다시 전화드릴게요."입니다.


"다시 전화드릴게요" 하면 정말 다시 전화 주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다시 전화드릴게요"라는 말은 일종의 '거절'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이런 문화를 몰랐던 저는 정말 다시 전화 오는 줄 알고 다른 곳에 일자리도 찾지 않고 마냥 기다렸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래. 일자리 구하는 전화하는 사람이 나뿐일까? 한. 두 사람도 아닐 텐데, 여러 사람들의 전화를 일일이 받고 응대하느라 얼마나 힘들까? 그래도 다시 전화 준다고 했으니 좀 더 기다려보지 뭐. 안되면 탈락했다는 전화라도 주겠지.


너무 순수했던 걸 가요?

일주일. 보름. 한 달이 지나도 전화는 없습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처음에 품었던 순수하던 마음이 불신으로 변화됩니다.


"왜 다시 전화 준다고 하고 전화 주지 않는 걸까?"

"왜 한국 사람들은 이런 거짓말을 할까? "
"내가 전화 달라고 했나? 자기들이 먼저 전화 준다고 해놓고 왜 사람을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걸가?"

"새터민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다시 전화 준다고 하는 말이 거절의 순화된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억울한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컴퓨터 할 줄을 모르는 것이 제 잘못도 아닌데, 

운전할 줄 모르는 것이 내가 게을러서가 아닌데, 

그런 것이 자유롭지 못한 사회에서 살다 보니 배우지 못한 것뿐인데 그것 때문에 이런 수모를 겪는다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했고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억울하고 답답했고 때로 짜증도 났습니다.






제 입장에서 이해가 힘들었던 이런 문화는 다른 상황에서도 나타납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날 때 명함을 주고받습니다. 

그러면서 의례히 주고받는 멘트도 있습니다.


"다음에 언제 시간 될 때 차 한잔 합시다. 식사 한번 하시죠"

저도 그렇게 꽤 많은 명함들을 받았고 그때마다 이런 비슷한 멘트들을 받았습니다.

우아.. 고맙구나. 나한테 밥 한번 먹자고 하네. 차 마시자고 하네.. 기뻤습니다.

밥 먹고, 차 마시면서 대화 나누면 친구가 될 수 있겠네, 남한사회의 이모저모에 대해 물어봐야지, 하는 마음에 기뻤고 설렜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밥 먹자는 전화가 오나, 차 마시자는 전화가 오나 정말 진심을 다해 기다렸으나 감감무소식입니다. 기다리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 시간들 이상의 배신감도 느껴집니다.


"아니, 내가 거지인가"

"누가 밥 사달라고 했나? 자기가 먼저 사준다고 해놓고 사람을 무시하는 거야 뭐야?"


때로는 자격지심일 수도 있고 때로는  순수함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 언제 식사 한번 합시다" 하는 말은 예의상 주고받는 하나의 문화일 뿐 그런 약속은 지켜질 수도 있고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지켜지지 않아도 크게 나쁘게 평가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꽤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하게 됩니다.


이런 문화들을 이해하는 동안 슬프게도, 여러분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사회에 대한 불신, 

한국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떨어집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이 말이 진심일까, 또 내가 모르는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 말을 어디까지 믿고 신뢰해야 할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하는 단순한 멘트-"식사 한번 합시다, 차 한잔 마십시다"

 전화상 하는 "다시 전화드릴게요"라는 말은 한국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별치 않은 부분이겠지만 그런 문화를 겪어보지 못한 저의 입장에서는, 또는 새터민들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쾌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문화입니다. 사실 이해하고 보면 별것 아닌데 말이죠, 이해하기까지는 이 시간들 동안 온갖 추측을 하게 되죠.


북한에는 '명함'을 주고받는 문화가 없습니다.

지금은 나 혼자, 또는 새터민 몇 명이 하는 생각이거나 적응하는 과정의 혼란스러움 정도일 수 있지만 앞으로 통일이 된다고 가정할 때 남과 북의 집단과 집단이 만난다면 엄청난 혼란은 물론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신뢰도 저하로 생각지 못한 상황에 까지 이를 수 있겠다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보통 우리는 약속이라는 것을 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함을 전제로 합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지키지 못할 수도 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그에 따른 일정한 책임도 지게 됩니다. 하지만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 합시다 하는 멘트는 약속 같은 단어의를 가지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제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약속'이라는 개념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 ~~ 합시다', '~~ 할게요' 하는 문장 뒤에는 작은 의미로라도 '약속'의 개념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언어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선택한 한국행이었고 

말이 통하는데 무엇인들 이해 못할 것이 있을까 하면서 선택한 한국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용하는 단어는 같아도 다른 상황으로 이해되면서 초래하는 불신,

익숙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문화가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 온 사람에게는 새로우면서도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전화 준다고 해놓고 전화 주지 않고, 밥 먹자고 해놓고 이후 아무렇지 않게 그 약속을 잊어버렸다고 해서 당신들은 다 거짓말쟁이들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자신이 했던 말을 실행하지 않았으니 '거짓말'쟁이들이라고 비난해야겠지만 꼭 그렇게 일방적으로 좁은 의미로 해석하고 판단할 문제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북한에는 없는 남한만의 문화입니다. 남한 문화를 이해하면 다 이해됩니다.


아마 한국분들의 입장에서도 북한에서 오신 분들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들이 그렇지 않게 느껴져서 의아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저와 같은 당황함과 배신감과 이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과 북의 집단과 집단이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특히 우리 한반도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어쩌면 그래서 많은 부분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같을 수 도 있는 상황이기에 오해가 쉽게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대화가 필요하고 이해가 필요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볼 필요가 있겠지요.
지금은 당신과 나, 우리겠지만 나아가서는 남한과 북한 우리 한반도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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